매일신문

월성동서타운 웃음꽃 피운 '국화꽃 선생님'

전직 초등교감 김상래 씨가 조성한 1천여 송이 국화꽃 화단, 주민 교류 키우는 촉매 역할

대구 달서구 월성동서타운은 지난 2010년부터 한 주민이 키운 국화꽃 화분과 화단 덕분에 단지 내 주민 교류가 늘었다. 국화꽃을 키운 김상래(왼쪽부터) 씨가 다른 주민 변성수, 조상길 씨와 박점수 관리소장, 최재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국화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홍준헌 기자
대구 달서구 월성동서타운은 지난 2010년부터 한 주민이 키운 국화꽃 화분과 화단 덕분에 단지 내 주민 교류가 늘었다. 국화꽃을 키운 김상래(왼쪽부터) 씨가 다른 주민 변성수, 조상길 씨와 박점수 관리소장, 최재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국화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홍준헌 기자

가을이면 대구 한 아파트 단지에는 1천여 송이의 국화꽃이 만발한다. 주민 한 명이 아파트 곳곳에 심은 꽃 덕분이다. 이 주민이 심은 꽃은 이웃들에겐 웃음을, 조그마한 아파트는 따뜻한 정의 향기가 진하게 풍기는 동네로 변하게 만들었다.

◆전직 초등교감 주민, '단지 내 국화꽃 키웁시다'

대구 달서구 아파트 4개 동, 300가구 규모의 월성동서타운에서 입주자대표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상래(76) 씨는 지난 2010년부터 9년째 아파트 곳곳 화분과 화단에 국화를 심어 키우고 있다.

1999년 왜관초등학교 교감으로 퇴임한 김씨는 임용 초기 발령받은 한 초등학교의 선배 교사로부터 국화 가꾸는 법을 배운 뒤 학교를 옮겨다닐 때마다 교내 국화를 심어 가꾸곤 했다. 에쁜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학생들 모습에 보람을 느끼고 수십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

퇴임 후 한동안 잊고 지내던 국화 키우기를 다시 시작한 건 전국 아파트에서 성행하던 주민 모임 반상회가 2010년 전후 '일제 잔재, 주민모임 강제에 따른 피해' 등을 이유로 사라졌을 때쯤이었다.

소규모 아파트인 이곳 주민들이 반상회 폐지로 교류의 맥이 끊긴 것을 아쉬워하던 무렵, 다른 아파트 단지에서 국화꽃 화분을 본 김씨는 그 길로 입주자대표회의에 "아파트에서 국화 화단을 조성했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주민들은 아파트 폐지를 팔아 모으는 '잡비'로 비용을 지원하는 데 동의했다.

국화를 키우려면 기둥을 세워 줄기를 묶고, 개화 직전 꽃받침대도 설치해야 한다. 순을 치고 물을 주는 등 수시로 관심을 기울여야만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김씨는 하루 서너번 아파트 단지를 돌며 모든 꽃의 생육을 돌본다. 관리소장도 그의 활동에 힘을 보탠다.

국화를 심은 지 9년 만인 올해 월성동서타운에는 220여 개 화분, 1천여 송이 대국·소국이 피어났다.

월성동서타운 아파트 단지 내 국화 화단 모습. 홍준헌 기자
월성동서타운 아파트 단지 내 국화 화단 모습. 홍준헌 기자

◆국화가 불러온 웃음꽃

주민 사이에선 '꽃을 심은 게 누구냐'는 궁금증이 이어졌고, 꽃밭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교류가 확대되면서 소모임 활동도 활성화했다.

김씨가 사는 103동에서는 주민 모임 '동삼이'(동서타운 103동 3라인 사람들)가 수시로 만남을 이어간다. 천주교 신자 모임 '8구역 2반 소공동체 모임'도 매달 이어진다. 지난달 전남 순천으로 떠난 부녀회 단합대회는 평소 몇 자리씩 남던 45인승 버스가 가득 차 회원 일부가 참석을 포기하기도 했다.

주민끼리 알고 지내니 한 가정 기쁜 일도 동네 경사가 됐다. 주민 자녀의 사법고시 수석 합격, 유소년 축구 국가대표 발탁 등 소식이 들리면 내 자식 일인 양 현수막을 걸고 전화해 축하하는 일이 늘었다.

이런 분위기가 소문나면서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도 이 아파트 관리소에 국화 가꾸는 법을 문의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동삼이 회장인 주민 조영래 씨는 국화밭을 조성한 김씨를 위해 감사패 제작, 회식비 지원 명목의 성금 100만원을 자비로 내놨다. 월성동서타운은 앞서 과거에도 관리소장·경비원을 장기간 직고용하는 등 도심 속 아파트답지 않게 정이 깊은 편이었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키운 국화꽃 덕분에 아파트 내 화목한 분위기가 더욱 커졌다는 평가다.

김씨는 "처음엔 20년 만에 국화를 심었더니 기후 변화와 병충해가 심해 꽃을 마음먹은 대로 피우지 못하는 등 힘이 많이 들었다. 끝내 멋진 화단이 생겨나고 주민 교류도 확대된 것을 보니 뿌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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