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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질문 받지 않는 대통령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대통령 각하, 귀하는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자본주의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사회주의자이신가요?" "(도대체 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닙니다" "그러면 각하의 철학은 무엇입니까" "철학이라? 나는 기독교인이고 민주주의 신봉자입니다. 그게 다요!"

루스벨트 대통령과 기자의 질의응답 내용이다. 미국의 대통령 기자회견은 이렇게 '살벌한' 장면이 자주 연출된다. 기자들이 질문 대상과 내용에 '성역'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 정부가 기자들을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감시하는 '워치독'(watchdog·감시견)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아리 플라이셔는 백악관 출입기자단은 백악관의 일부이며, 불편하고 긴장된 때가 있을지라도 모든 정부는 워치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기자들에게 한 말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준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쓴 기사를 즐겼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이 관계의 특징이죠…여러분은 저한테 곤란한 질문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칭찬이 아니라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인물에게 비판적 잣대를 들이댈 의무가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를 여기로 보내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말입니다.'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가 건강한 이유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사에 질문 기회를 주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미국 민주주의에 큰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일 뉴질랜드로 가는 전용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국내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외교 문제만 물으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은 받지 않은 것이다.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던 여기자로 2010년 타계한 헬렌 토머스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왕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질문을 받지 않는 대통령은? 마찬가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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