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신라 이명미 개인전

이명미 작
이명미 작 '걸어 갔어요'

"작가의 본분은 창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그림의 반복은 고문이다. 내 예술의 정신에는 아방가르드(척후병)의 피가 흐르고 있다. 척후병은 늘 전선의 맨 앞에서 활동하는 것 아니냐?"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의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77년 '놀이'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반세기 가깝게 화업(畵業)에 매진해 온 현대미술작가 이명미가 이달 29일(토)까지 갤러리 신라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27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통해 특유의 작품세계에 대한 조명을 받고 있는 작가가 10여 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내 그림은 처음부터 단순하고 유희적이었다. 초기엔 현학적이고 관념적 혹은 불교적 작업요소가 없지 않았지만 천성적으로 세밀하거나 정치한 그림은 스스로가 답답해서 못한다. 왜 그림이 꼭 엄숙해야 하는가? 예술은 무게감이 있어야 하고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무게감이 있다."

이명미 특유의 화론(畵論)이다. 그렇다. 그의 작품을 보면 첫 인상이 '어린이 같은' '치기 어린'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연주황과 노랑이 섞인 바탕색에 아래에 찻잔과 작은 집이 그려져 있고 '그 집 갔어요 걸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어찌 보면 화면 구성은 참 단순하기까지 하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도심 거리를 한 번 걸어봐라. 간판 없는 건물이 어디 있느냐? 작가가 지향하는 대상이 자연물이라면 도심 속 간판 역시 이제 자연물이 아니냐? 그러니 간판에 있는 글자도 자연물이고 그 자연물을 내 작품에 드러낸 것이 무엇 이상한 것인가?"라고 항변한다.

마치 동양화의 화제(畫題)처럼 이명미 작품의 글자들은 서양화 속 화제이다.

단순한 조형, 글자, 절제된 색감 등등. 이를 두고 작가는 "장난기"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이번 개인전 타이틀도 '놀이'이다. 결국 이명미의 '장난기'는 '놀이'이며 그 놀이는 '그리는 행위'이면서 작가로서 '삶의 원천'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신작 회화 이외 오브제 작업, 드로잉을 중심으로 문자, 선, 묘사 등 회화적 이미지를 벗어난 작업도 선보인다.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체험한 기억과 감흥을 갖가지 다양한 연출의 나무 미니어처 작품이 있는가 하면 푸른 물감을 바닥에 잔뜩 부어 굳힌 것을 스테이플러로 고정시킨 소품도 눈에 띈다. 가히 실험적이고 유희적이랄 수 있지만 작가 특유의 열정이 가득한 예술세계를 재미있게 조명해 볼 기회도 된다. 마치 낙천적 소요유(逍遙遊)를 통한 이명미의 놀이의 행적은 자연에의 합일이라는 동양 정신성을 의미하고 굳힌 물감을 그대로 패널에 고정시킨 작품은 무위를 통해 예술 의욕을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수용되고 있다.

철학자 데리다는 그림이 그림의 진리를 스스로 말해온 것이 아니라 그림의 진리는 액자 서명 표제 미술관 담론 시장과 같은 그림의 경계 밖에서 규명되어 왔다고 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명미의 '이미지-문자'놀이는 회화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불러오는 향수를 느끼게 한다.

문의 053)4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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