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엄마의 손에 잡아끌려 진료실로 들어선다. 무슨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아이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다. '빨간 설사가 났다(초경)'고 말하는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너무 작게 태어난 탓에 통통하게 자라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한다.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챙겨 먹이며 딸 아이를 키웠다. 6살 무렵부터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키도 쑥쑥 자라더라고 했다.
중학생 승우(가명)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던 키가 갑자기 멈춰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자고나면 커는 것 같고 목소리도 굵어지면서 수염까지 나기 시작해 중학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는 자기 보다 작았던 친구들을 올려다 보게 생겼다. 괜스레 엄마한테 화풀이를 해보지만 달라질 건 없다. 답답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사춘기의 특징인 2차 성징이 너무 빨리 나타나는 성조숙증으로 치료받는 아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2007년 성조숙증으로 치료받은 아이는 9천800여 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무려 8만6천여 명에 달했다. 이중에서 여아의 진료가 90%를 넘아 압도적이었다. 남아의 성조숙증이 적다기 보다는 남아의 경우 성조숙증 증상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조기 발견이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가 많다는 뜻이다.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성조숙증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작은 키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어떤 경우가 성조숙증일까?
성조숙증은 사춘기 증상이 여아에서 8세 이전, 남아에서 9세 이전에 나타나는 경우로 정의한다(사춘기 증상이 평균치의 2표준편차보다 빨리 나타남). 여아에서는 유방이 발달하며 급속히 진행하면 월경을 시작한다. 남아는 고환의 크기가 커지고, 음모가 발달한다. 실제 나이에 비해 골 성숙이 빨라지거나 부적절한 체형, 정신 행동 이상 등이 관찰된다. 빠른 치아 발육과 머리나 발·겨드랑이 냄새가 심하게 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성격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여아의 성조숙증은 비교적 눈에 잘 띄는 조기증상을 보인다.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거나 이상한 느낌이라거나 아파하기도 한다. 여아는 신체변화를 잘 표현하기 때문에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반면에 남아는 고환의 크기가 커지는 증세부터 시작하는 탓에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워 무시해버리기가 쉽다. 그래서 사춘기가 상당히 진행한 다음에 이상한 낌새를 채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2010년 자료를 보면 여아의 72.1%가 5~9세 사이에 성조숙증 진료를 받은 것에 비해 남아의 68.8%는 훨씬 늦은 10~14세 사이에 진료를 받았다.
정 과장은 "성조숙증은 발견이 늦을수록 치료 효과가 적고 비용은 많이 든다"면서 "남아의 경우 부모, 특히 아버지가 관심을 갖고 평소에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거나 갑자기 키가 잘 자라고 여드름이 나는 등의 변화를 보이면 즉시 전문의의 진찰과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성조숙증의 원인은?
과체중과 비만인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조숙증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비만으로 체지방이 높아지면 비만 세포에서 방출되는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성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에 사춘기가 빨리 온다는 설명이다. 환경호르몬도 성조숙증에 영향을 미친다. 플라스틱 등에 들어있는 내분비 교란 물질은 성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내분비 교란 물질에 아이들이 많이 노출되게 되면 아이들 몸속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작용을 방해하거나 혼란시켜 성조숙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밖에도 서구화된 식습관과 TV·인터넷을 통한 과도한 성적 자극도 성조숙증의 증가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두유와 콩, 계란, 유제품 등과 성조숙증이 연관되어 있다는 속설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성조숙증은 크게 진성 성조숙증과 가성 성조숙증으로 나눌 수 있다. 진성 성조숙증은 성선 자극 호르몬이라는 것이 많이 방출되어서 이 영향으로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호로몬이 많이 나오면서 증상이 생긴다. 반면 가성 성조숙증은 성선 자극 호르몬의 방출 없이 난소나 테스토스테론과 관련된 호르몬 질환, 성호르몬이 나올 수 있는 질환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가성 성조숙증은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는 특발성 성조숙증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 성조숙증 치료는?
성조숙증이 의심되면 병력을 살펴보고 진찰과 골 연령 검사, 성호르몬 검사 등을 실시한다. 이 때 뼈 나이(골연령)가 실제 나이보다 많고, 활체화 호르몬 농도가 일정 기준 이상(LH>5)이면 성조숙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성조숙증이 나타났다고 모두 치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조숙증이 불임이나 암을 유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뮨이다. 남들보다 빠른 사춘기를 정신적으로 견뎌내기 힘들거나 뼈 나이가 실제보다 2살 이상 앞선 경우, 성장판이 일찍 닫혀 최종 키가 지나치게 작을 것으로 생각되는 경우, 여아 150cm 미만·남아 160cm 미만으로 우려될 때에만 치료를 한다.
치료는 시상하부-뇌하수체-생식기관 축 활성을 억제하고 호르몬제(성선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 유사체)로 기존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한다. 사춘기가 나타나는 평균 나이가 될 때까지 생식기관이 자극 받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이다.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3~6개월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사춘기 진행 속도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정 과장은 "성조숙증을 치료하는 동안에는 성장 속도가 사춘기 이전으로 감소하지만, 치료 하지 않는 것보다 오랜 기간 키가 자라기 때문에 최종 키를 더 키울 수 있게 된다.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일찍 시작하고 관리를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성조숙증 어린이들이 성인이 된 후 유방암이나 조기폐경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일부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고 연구결과 확인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도움말 정명희 대구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예성강 방사능, 후쿠시마 '핵폐수' 초과하는 수치 검출... 허용기준치 이내 "문제 없다"
與 진성준 "집값 안 잡히면 '최후수단' 세금카드 검토"
[르포] 안동 도촌리 '李대통령 생가터'…"밭에 팻말뿐, 품격은 아직"
안철수 野 혁신위원장 "제가 메스 들겠다, 국힘 사망 직전 코마 상태"
이재명 정부, 한 달 동안 '한은 마통' 18조원 빌려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