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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김원길 시인 소장 문인 육필 편지 전시회…피천득, 모윤숙 편지 등 150여 편 공개

김원길 시인이 상주 출신의 김구용 선생이 쓴 편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김원길 시인이 상주 출신의 김구용 선생이 쓴 편지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영진 기자

안동의 원로문인 김원길 시인이 희수(77세)를 맞은 기념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받아둔 문인들의 육필 편지를 공개했다.

김 시인은 "사람들은 이제 붓이나 펜으로 편지를 종이에 써서 주고받지도, 우체통에 넣지도 않는다. 메시지 대부분을 휴대전화로 주고받는다"며 "종이에 육필로 쓴 옛 편지는 고문서가 된 시대에 옛 문인들의 친필 편지로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공개된 편지 중 가장 오랜 것은 1965년에 시인 설창수 선생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가장 고령이 보낸 편지는 동요 '따오기'의 작사자 한정동 시인(1894년생)의 것이다. 가장 긴 것은 시조를 써서 보낸 김상옥 선생의 편지, 가장 짧은 편지는 김구용 선생이 '福'(복) 자 한 자만 쓴 엽서다.

이 밖에도 김광섭, 모윤숙, 피천득, 이원수, 김구용, 임옥인, 정한모, 박완서, 박용구, 조병화, 김종길 등 작고 문인과 이어령, 허영자, 이일향, 유종호, 나태주 등 현역 원로들, 대구경북의 옛날 문인들 등 총 106명의 문인이 쓴 150여 통의 편지가 공개됐다.

육필 편지 공개가 있기까지 많은 고민도 있었다. 유명 문인의 문장이나 서체를 전시하면 일반인과 연구자, 학생들에게 많은 볼거리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사적인 내용을 닮은 편지를 공개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대부분의 편지 내용이 감사와 축하, 칭송 일변도여서 공개하기가 몹시 고민이 되고 쑥스럽기도 했다"며 "그러던 중 지인들이 이를 교육적 취지에서 전시를 추진하자고 하면서 부끄럽지만 공개하게 됐다"고 했다.

1971년 등단한 김 시인은 1974년 첫 시집 '개안'(開眼)을 출판했다. 이후 영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로 각각 번역된 시집을 내놓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시인의 시는 외국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향을 얻어 2009년 처음 번역된 영어·일어판이 5판 인쇄를 했고 프랑스에서 출판된 시집은 절판이 돼 재판을 찍었으며 중국관광객을 겨냥한 중국어판도 펴냈다.

이처럼 한국 시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돼 외국인에게 읽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그것도 개인의 힘으로 시도된 점이 특이하다.

김 시인은 촌장이라는 독특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가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현 지례예술촌 촌장인 김 시인이 1986년부터 수몰지에 있던 의성김씨 지촌파의 종택과 서당, 제청 등 건물 10채를 마을 뒷산 자락에 옮겨지었다.

이 마을은 1990년에 문화부로부터 예술창작마을로 지정받아 예술인들의 창작과 연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 다목적댐이 건설된 곳이 많지만, 개인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문화재도 보존하고 문화 공간도 만들어 낸 경우는 이곳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육필 편지 공개를 시작으로 장편 소설을 쓰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김원길 시인은 "옛 편지들은 지난 50년간 나 개인의 발자취와 더불어 아득히 잊고 있던 기억들을 되살려 줬다"며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장편소설에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방문객들의 호응에 힘입어 당초 12일까지 예정된 기간이 이달 31일까지 연장됐다. 전시 장소는 안동시 대안로 동남새마을금고 3층 대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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