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으로 알레르기 검사만 했을 뿐인데 병원비가 700달러(원화 80만원) 넘게 나왔어요." 지난해 미국의 한 대학병원을 참관했을 때 목격한 환자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보다 10배 넘게 비쌌지만, 의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병원 담당자와 상담해 보세요."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00년 미국은 의료비가 가장 비싼 반면, 의료 제도의 수준은 191개국 중 72위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선진국 중 '전국민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각자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보험료도 비싸다. 그래서인지 5천만명이 '의료보험' 없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미국에는 우리나라에 없는 '영리병원'도 적지 않다. 병원 수익을 '시설 확충'이나 '연구비' 등에 써야하는 '비영리병원'과 달리 '영리병원'은 아픈 사람에게서 번 돈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주식회사병원'이다. '환자'보다 '주주의 이익'이 우선이다 보니 병원비는 비싸고 의료 인력은 적다. 실제로 병원비가 비싼 미국의 50개 병원을 뽑아보니 그중 49개가 '영리병원'이었다.
우리나라의 '자본'도 집요하게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판매를 요구해왔다. 1990년 전후, 마침내 재벌의 대형병원이 등장했다.'비영리병원'임에도 '의료 상업화' 무한 경쟁이 다른 병원으로 퍼지고 말았다. 10여 년 전부터 '민간의료보험' 상품도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왔다.'과도한 검사' 및 '불필요한 처방' 등 '의료의 왜곡' 현상을 불러왔다.
'건강할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이기에 의료마저 상품화되면 안 된다. 의료가 '의학적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해 행해진다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도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도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말았다. '돈벌이'가 목표인 '영리병원'의 의료행태가 다른 병원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울러 부유층이 '건강보험' 혜택이 없는 '영리병원'을 주로 이용하면서 '국민건강보험'에서 '민간의료보험'으로 이동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어 걱정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압권은 간호사들이 침상을 밀며 등장해 영국의 의료제도인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자랑한 장면이었다. 영국인들이 'NHS'를 '왕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니 부러웠다. 우리의 '국민건강보험'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보장 수준을 높이는 등 '건강보험'을 더 보완해야 할 이때 '영리병원'이라는 '괴물'이 등장해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몇 년 전 서귀포에 출장을 갔다가 머리를 다친 환자를 119 대원과 함께 이송한 적이 있다. 가까운 공공병원인 '서귀포 의료원'이 열악해 제주 시내 병원까지 40분을 달려야 했다. 지금도 서귀포의 산모들은 분만을 위해 '한라산'을 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제주도에 절실한 것은 '영리병원'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하는 '공공병원'이 아닐까?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교수(이비인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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