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졸업한 지 오래됐으나 연말이라고 학부생 후배들이 술자리에 초청한 적이 있었다. 자리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앉자마자 후배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선배는 워너원이에요, EXO(엑소)예요?"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했더니 내가 오기 전까지 한 시상식에서 불거졌던 논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제1회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상식(KPMA)' 인기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매년 2월 말에 열리는 '한국대중음악상'과 헷갈리게 이름을 붙여 놓은 KPMA는 대한가수협회,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 대중음악 관련 6개 단체가 '가장 공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대중음악상'을 모토로 올해 처음 만든 시상식이다. '한국대중음악상'이 국내 대중음악 평론가와 방송국 PD 등을 선정위원으로 위촉, 철저히 전문가들의 심사로만 이뤄지는 데 반해 KPMA는 여느 시상식과 마찬가지로 온라인 투표가 선정 기준에 포함돼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인기상은 100% 온라인 투표로만 수상자가 선정된다. 그 온라인 투표 또한 '올레TV모바일' 앱에 로그인하면 부문별로 2회씩 투표가 가능하며, 유료로 투표권을 20장까지 구매해 투표할 수 있다고 공지사항에 나와 있다.
인기상 투표 결과 워너원이 151만7천900표로 1위를, 엑소가 149만6천101표로 2위를 했다. 그런데, 시상식 당일 인기상은 워너원과 엑소의 공동 수상이었다. 당연히 양쪽 팬덤은 폭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2만5천여 표 차이 나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워너원이 가져가는 게 맞는 인기상이었다. 여기에 KPMA 조직위원회 측의 사과문이 걸작이다.
KPMA 측은 사과문에서 "투표 마지막 순간까지 1, 2위가 근소한 표 차로 서로 순위가 뒤바뀌는 등 투표 마감까지 예측이 불가능한 박빙의 순간이었다"며 "조직위원회는 '모두의 축제'로 만들자는 의미에서 인기상 부문의 차점자인 엑소에게도 시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불난 데 기름을 붓는 사과문이라 할 수 있겠다.
KPMA 조직위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데에는 요즘 시상식이 가지는 '잿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한다. KPMA 유료 투표권 20장의 가격은 4천원이다. 워너원과 엑소의 표만 합쳐도 300만 표가 넘어가는데, 다른 아이돌 팬덤의 참여 숫자까지 합치면 유료 투표권 판매액은 수십억원대로 불어나게 된다. 거기에 시상식 입장권도 9천900원에 판매했다. 이만하면 챙길 떡고물은 다 챙겼으니 상의 권위쯤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조직위에 묻고 싶다.
이런 생각도 든다. 상 주는 사람들에게 시상식에 참가한 아이돌은 그저 상만 받으면 허허허 좋아하고 끝나야 하는 존재일 뿐인가. 아이돌을 좋아하는 우리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제대로 심사하고 선정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을 받는다고 그저 좋아하면 그뿐인가. 도대체 아이돌과 팬들에게 '상'이란 무슨 존재인가.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이다.

지난 25일 SBS 가요대전에 참석한 워너원과 EXO. 두 팀은 지난 20일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상식(KPMA)에서 인기상 부문 1, 2위를 차지했다. 워너원이 1위를 기록했지만, KPMA는 '모두의 축제를 만들기 위해'라는 이유로 두 팀 모두에게 인기상을 수여해 양측 팬덤으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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