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달해의 엔터인사이트] 男 중심 예능계, 女 예능인 위주 재편

지난 연말 시상식은 여자 예능인들이 휩쓸었다. 시상식에서 수상한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안영미. 송은이 인스타그램
지난 연말 시상식은 여자 예능인들이 휩쓸었다. 시상식에서 수상한 송은이, 신봉선, 김신영, 안영미. 송은이 인스타그램

강호동과 유재석 등 남자 예능인 중심으로 돌아가던 예능계 경쟁구도가 싹 바뀌었다. 지난 2018년 연말 지상파 예능 시상식에서 입증된 것처럼, 분위기는 여자 예능인 위주로 재편됐다. 이영자가 KBS와 MBC 연예대상을 휩쓸며 2관왕이 됐고, 아쉽게 대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박나래가 이영자의 뒤를 바짝 쫓았다. 사실 MBC의 경우 박나래가 대상을 받아도 무관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둘의 경합이 치열했다. 두 사람 외에도 김숙, 안영미, 송은이 등 2018년은 유독 여자 예능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반면, 강호동과 유재석을 비롯해 김구라-김성주-전현무 등으로 이어지는 주요 남자 예능인 라인은 여자 예능인들의 상승세에 슬쩍 자리를 비켜주는 모양새를 보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 남자 MC들이 여전히 예능계에서 많은 '일자리'를 차지하며 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수년에 걸쳐 꾸준히 이어지던 여자 예능인들의 상승세가 2018년 말에 최고점에 달하면서 더 이상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지난해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영자가 MBC와 KBS 두곳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MBC 연예대상 수상 후 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매니저 송성호 씨와의 기념촬영. MBC 제공
지난해 예능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이영자가 MBC와 KBS 두곳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MBC 연예대상 수상 후 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한 매니저 송성호 씨와의 기념촬영. MBC 제공

#이영자, MBC-KBS 연예대상 2관왕

2018년 지상파 연예대상은 과거에 비해 긴장감 없는 상태에서 진행됐다. JTBC와 tvN 등 비지상파의 기세에 눌려 히트작 수가 드물었고, 당연히 상을 줄만한 예능인의 수도 제한적이었던 상황이다. 게다가 가장 잘 된 프로그램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예능인이 아닐 경우엔 상을 수여하는 방송사의 입장이 더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SBS가 딱 이와 같은 경우였다. 지난 한 해 동안 SBS에서 가장 화제가 된 예능 프로그램은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미운 우리 새끼'다. 그중에서도 화제성은 단연 '골목식당'이 뛰어났다. 골목 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 하에 백종원의 리얼한 식당 갱생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식당 주인의 태도와 음식의 맛까지 바꿔 '경쟁력 있는 업체'로 거듭나게 만드는 과정이 매번 숱한 이슈를 만들어냈다. 애청자들 사이에서 이 프로그램에 나온 식당들을 직접 돌아보는 트렌드가 만들어졌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그렇다면 SBS의 연예대상은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잘 된 '골목식당'의 '원톱' 백종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자신이 연예인은 아니라는 이유로 연말 시상식 무대에 오르는 걸 고사했던 백종원에게 상을 준다는 것이 쉽진 않았을 터. 그래서 결국은 앞으로 인연을 이어가야 할 스타에게 상을 주는 고전적인 방식을 택했고 대상을 '집사부일체'의 이승기에게 수여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이승기 본인이나 SBS 양 쪽에 독이 됐다. 논란을 예상하면서도 진행한 건이겠지만 실제로 '집사부일체'는 시청률이나 화제성 양 면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던 프로그램인데다 이승기의 존재감 역시 크게 눈에 띄지 않았기에 대중의 반발이 컸다. 심지어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승기의 대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로 '오버'하는 이들까지 눈에 띄었다.

상대적으로 KBS나 MBC는 이영자에게 대상을 안겨주면서 '그래도 이해할만한 수상'이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MBC 연예대상이 끝난 이후 박나래를 대상감으로 지지했던 일각의 반발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만큼 이영자를 두둔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만큼 지난 한 해 동안 두 사람이 두각을 보였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영자는 박나래에 비해 대선배인데다 '전지적 참견시점'을 MBC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띄워 놓은 일등공신이라 대상 수상자로 손색이 없다. 오랜 시간 침체기를 가지다 다시 예능계 주류로 올라섰으니 대상 수상의 의미를 받쳐줄만한 '스토리'까지 갖춘 셈이다. 이영자는 MBC 뿐 아니라 KBS에서도 8년 간 진행했던 '안녕하세요'로 대상을 받았다. 여자 예능인으로 한 해 연예대상 2관왕을 휩쓴 건 이영자가 처음이다.

여자 예능인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무대를 선보인 박나래. MBC 제공
여자 예능인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MBC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무대를 선보인 박나래. MBC 제공

#박나래-김숙 등 여자 예능인 전성시대

이영자가 지상파 연예대상 2관왕을 차지하는 동안 박나래는 MBC에서 올해의 예능인상을, 송은이는 같은 방송사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숙도 KBS에서 최우수상을, SBS에서 베스트 MC상을 받았다. 김신영과 안영미도 각각 MBC 연예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과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한 방송사에서 두 명의 여자 예능인이 유력한 대상 후보로 경쟁구도를 갖췄다는 것, 또 그 외에도 많은 여자 예능인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는 건 그만큼 예능계 전반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예능계는 남자 예능인들의 세상이었다. 꽤 오래 지속됐던 강호동과 유재석의 양강 구도가 흐트러진 후에도 이경규-김구라-신동엽-전현무-김성주 등 남자들의 강세가 여전했다. 이후 박수홍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계기를 마련했고 윤정수-이휘재 등 베테랑급 남자 예능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뒤로도 김준현-양세형 등 여전히 남자 예능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전업 예능인이 아니더라도 예능계에서 메이저 급으로 부상한 인물은 안정환과 백종원 등의 인물로 역시 남자들이었다.

여자 예능인들이 프로그램의 메인의 위치에 설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조성되지 않았다고 봐야 맞겠다. 다행히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약 2년 여 기간에 걸쳐 상승기류에 올라서는 여자 예능인들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그들이 안영미와 박나래-장도연-이국주 등 주로 콩트 무대에 오르던 개그우먼들이었다. 개그우먼들은 콩트 쇼에서 벗어나 차츰 스튜디오형 예능과 리얼리티까지 장악하며 활동 폭을 넓혔다. 여기에 대선배급 이영자가 합류하며 여자 예능인 물살이 거세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영자의 대상 수상을, 특히 박나래를 제치고 MBC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지만 분명 이영자는 대상을 받을 만 했다. '전지적 참견시점'이 초반 인기를 견인한 인물이 오롯이 이영자 한 명 뿐이었고, 이후 이 프로그램이 세월호 이미지를 부적절하게 사용하다 폐지 위기에 처한 뒤 되살아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이영자가 견인차 노릇을 했다. 게다가 '전지적 참견시점'은 MBC가 2018년에 내놓은 신작 중 유일한 히트작으로 그나마 방송사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마지노선이 됐다. 이영자는 그 뒤로도 올리브 채널의 '밥블레스유', JTBC '랜선라이프', KBS 2TV '볼 빨간 당신' 등의 프로그램의 메인MC로 나서며 여자 예능인 중심의 프로그램을 확장시키는데 주효한 인물로 활동했다.

박나래 역시 마찬가지다. MBC '나 혼자 산다'와 tvN '짠내투어' '놀라운 토요일'의 핵심 인물로 활동중이며 그 외에도 올해에만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2', JTBC4 '마이 매드 뷰티2' 등 각 방송사의 주요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출연요청이 쇄도했다. 이번에는 이영자에게 밀렸지만 이대로 활동을 이어갈 경우 대상 수상은 따놓은 당상이다.

김신영도 라디오를 중심으로 TV까지 활동 폭을 넓히며 예능계 메인으로 진입중이다. 안영미-송은이-신봉선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를 만들어 큰 재미를 주기도 했다. 신봉선 역시 KBS 연예대상에서 코미디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메이저 급으로 떠오르는 여자 예능인들이 많아지면서 여자 예능인이 진행석의 중심에 서거나 혹은 여자 예능인들로만 채워진 프로그램들도 늘고 있다. JTBC4 '비밀언니'나 tvN '주말사용설명서' 등의 프로그램이 그 예다. 한차례 흐름이 잡힌 이상 당분간 여자 예능인 중심의 프로그램이 연이어 만들어질 확률도 크다. 더 이상 예능계는 남자 예능인 세상이 아니다.

정달해(대중문화칼럼니스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