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말을 못하게 한다.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을 쳐놓고 어떤 얘기도 들어가지 못하게한다."
김명현(60·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탈원전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탈원전(脫原電) 주장이 있었지만 많은 토론과 논의 과정에서 나온 얘기를 노무현 정부는 귀 기울여 들었고 결국 정책 선회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에 대해 외면하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고 이 때문에 너무 답답하다고 김 회장은 하소연했다.
지난 23일 서울 프레스센터 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탈원전 전면포기가 어렵다면 전문가가 아닌 정부가 일방통행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학계의 의견을 듣고 타협안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여당 소속인 송영길 의원의 최근 발언만 봐도 여당 내부에서조차 잘못된 탈원전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김 회장은 분석했다.
-울진 신한울 3·4호기 얘기부터 해보자. 30만명 넘는 사람들이 전면 백지화 위기에 놓인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한다는 내용의 서명안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신한울 3·4호기는 반드시 건설되어야하는가?
▶신한울 3·4호기는 정부가 이미 공고하고 계획한 사업으로 주기기를 만드는 두산중공업 및 관련 중소기업들이 상당 부분의 선투자를 했다. '왜 선투자를 했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통상적으로 원전은 이렇게 사업을 진행해왔다. 지금 이 사업을 접으면 적어도 6천억원~7천억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이 돈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지금 정부가 이 사업을 접으면 앞으로 우리 업계의 국제 무대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 전쟁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경쟁력이 세계 최고인데 이 경쟁력을 그냥 내던지는 셈이다.
수출은 정부가 돕겠다고 하는데 말도 안된다. 우리가 신한울 3·4호기를 안하면 국제시장은 '아, 저 나라는 이제 원전을 안하는구나. 너희와는 사업을 안해야겠구나'라고 받아들인다. 이제 우리가 수십년 쌓아올린 원전 기술력을 국제시장에서 써먹을 수 없다.
-정부는 '탈원전은 60년에 걸쳐서 천천히 하니까 괜찮다'고 한다. 충격이 적을 것이라고 하는데?
▶정부가 이런식으로 가면 더 이상 원전 건설 생태계는 존재하지 못한다. 부품 체인이 무너지고 인력 충원 시스템이 붕괴된다. 인력 공급도 이제 안될 것이다. 어떻게 쌓아올린 기술력인데 너무 안타깝다. 이제 2, 3년안에 우리 원전 기술력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술력이 무너지면 지금 가동되고 있는 원전의 안전성도 엉망이 된다. 국민은 더욱 불안해할 것이다. 엄청난 사태가 일어나는데 전문가도 아닌 정부가 국민들에게 '괜찮다'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원전시장이 치킨시장보다 작다고 폄하까지 하는데 원전산업은 양질의 고급 일자리다. 정부가 틈만나면 양질의 고급 일자리를 만들자고 하면서 실제 쓰는 정책을 보면 이렇게 좋은 양질의 일자리를 발로 걷어차고 있다.
-정부는 원전이 위험하니까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탈원전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보자. 후쿠시마에서 방사능으로 인한 사상자는 0명이었다. 쓰나미로 인한 사상자는 많았지만 원전에서 나온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자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 원전은 일본과 다르다. 우리는 10m짜리 방벽을 쌓아놨다. 쓰나미가 밀려와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다른 안전조치도 4, 5가지를 더 갖춰놨다.
우리 원전은 2001년 미국 9·11테러 이후 대형항공기가 날아와 추락해도 안전하게끔 설계를 해놨다. 우리 원전이 고장은 있었지만 사고는 없었다. 탈원전을 안전 때문에 반드시 해야한다면 중국이 자국 동해안에 100기 이상 원전을 가동할 예정인데 이 부분은 왜 가만있나? 중국도 원전산업을 수출산업으로 보기 때문에 안전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일반 국민들도 원전에 대해 꺼림칙한 입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원전에 대한 안전 우려가 일반 국민들의 정서에도 있지 않을까?
▶방사능물질은 우리 일상 생활속에 항상 존재한다. 우리가 항상 방사선 환경속에서 산다고 보면 된다. 아주 높은산인 히말라야산에 오르면 청정공기로 인해 폐 깊은 곳까지 좋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높은 산에는 우주 방사선이 많다. CT를 여러장 찍어도 방사선에 노출된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환경 자체에 방사능 물질이 많다. 이 분야를 오랫동안 공부한 학자로서 자신있게 하는 얘기인데 우리 원전이 국민들에게 방사능 공포를 줄만큼 허술하지 않다.
-원전 안해도 신재생에너지를 키우면 된다고 하는 것이 정부 입장인데, 어떤가?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전력의 30%가 원전으로 충당된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는 급격하게 늘릴 수 없다. 원전을 대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다. 결국 석탄이나 가스를 이용한 발전을 해야 원전을 대체할 수 있다. 석탄이나 가스 모두 미세먼지나 탄소 배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욱이 석탄은 가격이 싸지만 가스는 같은 전력량을 생산할 때 원전가동비용의 3
배나 많은 비용이 든다. 우리 경제가 그만큼 여유로운가?
우리는 탈원전으로 인해 나쁜 공기를 들이마셔야하고 더 비싼 전력요금을 내야한다. 대한민국은 제조업 기반의 수출주도국가다. 전력요금이 비싸지면 대번에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지금 정부 정책은 정말 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 원자력학계가 밥그릇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장래를 좌지우지할만한 여러 요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학교 밖으로 나와 간절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 학자들의 말을 들어야한다.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독일도 탈원전을 했다"며 우리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독일 사례를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것인가?
▶독일 사례는 우리와 다르다. 독일의 탈원전은 정치적인 반핵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 독일에서는 농축·재처리 등 핵무기 제조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핵운동이 본격화했다. 우리는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없다. 근본적으로 독일과 우리나라의 반핵운동에 대한 시각은 다르다.
더욱이 독일은 석탄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나라다. 때문에 석탄산업을 키우려는 시도도 탈원전을 부르는 데 한몫했다. 또 한가지, 독일은 우리와 지정학적 위치가 다르다. 독일은 발전역량이 좋은 프랑스, 스위스 등과 붙어있다. 전력이 모자라면 이웃 나라에서 받아가면 된다. 전기 수급에서 큰 걱정거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독일처럼 이웃나라에서 받아올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 전력예비율이 높아서 원전을 추가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요지의 주장을 최근 내놓은 바 있다. 전력총량을 관리하는 정부가 전력이 남아돌아 이제 더 이상 새 원전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봐야하나?
▶지금 우리나라 전력예비율이 25%라서 높다고 하는데 전력예비율이 높은게 나쁜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전력예비율이 높으면 과잉투자라는 이유로 정부 관계자들이 혼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전력예비율이 높은 것이 좋다. 지난 여름에 얼마나 더웠나? 지난 여름에 냉방복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엔 폭염이 너무 심하면 냉방기를 작동 못하게 했다.
왜 그런가? 전력예비율이 냉방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냉방복지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된 것은 풍부한 전력예비율 덕분이었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50기 가까운 원전이 섰다. 그런데 나라가 망하지 않고 공장이 돌아갔다. 일본 정부가 미래를 내다보고 충분하 전력예비율을 갖춘 덕분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은 우리보다 전력예비율이 더 높다. 왜냐하면 독일은 탈원전에 대비해 신재생에너지를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불안정한 전력공급원이다. 전력예비율을 높여놓지 않으면 비가 많이 오는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여건이 나빠지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원전을 줄이는 이유로 전력예비율 얘기를 자꾸하는데 이는 탈원전의 명분이 될 수 없다.
-원전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원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키우는데 폐기물도 심각한 문제아닌가?
▶미국 등 선진국은 고준위 폐기물의 97%까지를 재활용하고 있다. 재활용하면 희귀한 원소를 뽑아낼 수 있다. 일본도 재활용을 통해 폐기물을 크게 줄인다. 우리는 재처리 기술 개발을 본격화하다가 한미원자력협정 때문에 중지한 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잘한 것이 있는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재활용 기술에 대한 연구가 허용됐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향후 우리 스스로의 기술 개발을 통해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이 넓어질 것이다. 폐기물 걱정 때문에 원전이 안된다는 논리는 성립이 안된다.
-정부와 학계가 타협할 수 있는 안은 없을까? 어떤 타협안이 나올 수 있다고 보는가?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본도 원전비중을 20%로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일정 비율로 원전을 유지해나가야한다. 원전과 석탄, 가스, 신재생에너지가 공존하는 비율을 만들어야한다. 정부가 탈원전을 굳이 해야겠다면 노후 원전을 없애고 신규 원전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원자력산업의 붕괴를 막고 수출시장도 지키는 것이다.
신한울 3·4호기, 영덕 천지원전 등 신규 원전은 계속 만들어나가야한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세울 때 원자력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데 이래서는 안된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달부터 산업부, 과기부와의 대화창구가 열렸다. 만나자는 합의가 있었다. 타협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앞으로의 전망을 어떻게 보는가?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기존 정책을 일부 수정할 가능성이 있을까?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보면 너무 이상적이고 현실을 외면한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원전 정책이다. 원전을 그냥 없애버려야하는 것으로 단순화해서 본다. 국민들의 부담이 되고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미세먼지와 탄소배출을 늘릴 공기질 악화의 주범이 될 것인데 탈원전을 할려고 한다. 그러면서 원전 수출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엉뚱한 얘기를 한다. 우리가 원전을 안 지으면 어떤 나라도 우리 기술을 받아가려하지 않는다. 원전 수출이 아예 안된다.
대만을 한번 보라. 안전에 대한 걱정이 있긴 하지만 원전을 유지해야 경제에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국민투표를 통해 정책을 수정했다. 문재인 정부도 이웃나라를 잘 들여다봐야한다.
이런 연장선에서 최근 여당 소속인 송영길 의원이 한 발언은 용기 있는 것이었다. 신한울 3·4호기만큼은 해야한다고 소신 있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는 원전해체산업을 키우면 탈원전 충격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면서 원자력해체연구원을 국책사업으로 하려 하는데?
▶해체산업은 큰 사업이 아닌 것은 물론, 미래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 해체 산업은 건설의 10분의1 규모에 불과하다. 더욱이 우리는 이 분야에 뛰어들 기술력이 떨어진다. 세계적 기술과 격차가 많이 벌어져 있는 것이다.
탈원전을 먼저 한 독일은 해체나 제염 기술이 굉장히 앞서 있다. 일본도 후쿠시마에서 해체와 제염을 해봐서 세계 최고 기술력이다. 우리가 이제 시작해서 세계 일류가 될 수 없다. 내가 볼 때는 승산없는 싸움이다.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정부가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1등을 하는 기술을 접어두고 잘 모르는 것을 이제부터 시작해보라는 얘기와 다름이 없다. 원해연에 대한 정부 발표를 보면 정부가 탈원전에 대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엉뚱한 제스쳐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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