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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 숨은 이야기] ⑦ 푸른 하늘을 향하여…바실리 칸딘스키, '하늘의 푸름'

바실리 칸딘스키,
바실리 칸딘스키, '하늘의 푸름', 100 x 73cm, 캔버스에 유화, 1940년, 파리 퐁피두센터 소장

'삼한사미', 이번 겨울 내내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신조어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겨울 날씨인 삼한사온 대신 3일은 추위, 4일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기후 탓이다. 미세먼지와 황사로 하늘이 부옇고, 너도나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일상은 우울하지 그지없다.

청명한 하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푸름'이란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20세기 초반, 추상미술의 탄생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가 말년에 그린 이 작품에서는 맑은 하늘색이 지배적이다. 그림 가장자리에서 올라오는 우유빛과 융화된 부드러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형상들이 자유로이 떠있다.

현실세계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형상들은 새, 거북이나 물고기 혹은 아메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는 연이나 목마를 닮은 것들도 보인다. 여덟 개의 큰 형상들과 좀 더 작은 크기의 뿔, 촉수 달린 해저생물, 깃털처럼 보이는 다양한 형상들이 푸른 공간에서 평화로이 공존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형상들은 병치되기도 하고 은밀하게 서로 당기면서 몽환적인 세계로 관람자들을 이끈다.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공간에서 형상들은 상승도 하강도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고정돼 있지도 않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미세한 진동상태로 형상들이 떠있는 무중력의 공간 표현을 통해 작가는 우주적인 감성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듬해 1939년 6월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이후에 이 그림이 제작되었다. 1933년, 칸딘스키가 교수로 재직하던 건축과 디자인, 조형예술에서 가장 창의적으로 혁신적이었던 바우하우스는 나치에 의해 폐교되었다. 칸딘스키를 비롯해 파울 클레 등 바우하우스 교수진이었던 모던아트 거장들의 작품은 퇴폐미술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해 칸딘스키는 아내와 함께 독일을 떠나 파리 근교에 살기 좋은 주택가로 이름난 뇌이쉬르센느에 정착했다. 칸딘스키 부부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할 무렵 몇 달간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소도시 코트르트에 은둔했다가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연합군에 의해 프랑스가 해방된 해 12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칸딘스키는 세상과 단절한 채 작품제작에만 매진했다.

칸딘스키는 비록 현실은 나치의 폭압으로 인해 암울했지만 작품세계는 평화로움과 몽환으로 충만하길 원했다. 파리에 정착할 무렵, 그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미세포 생물의 세계에 감동해서 생물형태(biomorphic)를 연상시키는 신기한 형상들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작업실 창문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린 이 그림에서는 공간의 순수함과 자유로움이 묻어나온다.

칸딘스키는 내면의 울림과 정신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와 선을 어떤 대상을 묘사하는 수단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색채와 선 그 자체의 조형성을 강조한 추상회화를 탄생시켰다. 특히 색채를 관람자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두드리는 매체로 여겼던 그에게 파랑은 전형적으로 성스러우며 정신적인 색채였다. 고국인 러시아를 떠나 1911년 뮌헨에 정착한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결성된 '청기사' 그룹의 이름에도 순수하게 고양된 정신을 상징하는 파랑이 들어있지 않은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칸딘스키는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까지 몇 년 간 고향인 모스크바에서 머물게 된다. 그때 일생동안 화가에게 평온한 안식처가 되었던 니나를 만난다. 처음 그녀를 본 순간, 칸딘스키는 젊은 그녀의 반짝이는 푸른 눈에 풍덩 빠져버렸다고 자신의 '회상록'에서 밝힌다. 칸딘스키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니나 또한 첫 만남에서부터 운명적으로 이끌리게 돼 둘은 30년이란 나이차를 극복하고 1917년에 결혼한다. 칸딘스키 사후에도 니나는 남편의 작품관리에 헌신하며 죽을 때까지 파리를 떠나지 않았고, 1973년에 '칸딘스키와 니나'라는 회고록을 출간한다. 그녀는 남편의 주요 작품 다수를 1977년, 개관을 앞둔 퐁피두센터에 기증한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관이자 문화・정보센터가 된 이곳에서 칸딘스키의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관람자들에게 영혼의 공명을 선사하고 있다.

박소영(전시기획자, PK Art & Medi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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