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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어느 정월 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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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정월 대보름. 보름의 으뜸으로, 한가위 대보름과 쌍벽이다. 특히 어릴 적 언 손을 불며 들판에서 뛰놀며 하던 쥐불놀이와 멀리서 봤던 달집태우기 연기와 불꽃은 정월 대보름에 절로 떠오르는 정경이다. 손꼽아 기다려 소원을 빌거나, 기리는 이들도 많은 정겨운 날이다.

경북 군위군 효령면 고곡리 월리봉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이곳의 천제는 1876년 할아버지(이규용) 때부터 손자(이세우)까지 3대(代)를 이어 군위 마을지(誌)에 오를 만큼 소문이 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19일 정월 대보름, 나라의 안녕을 빌었다. 물론 대구향교도 이날 대보름 기원제로 대구 발전과 시민의 안녕, 풍요를 바랐다.

그런데 대구에는 이와 좀 다른 일이 있다. 대구의 향토 역사 특히 대구의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의 마음속 정월 대보름이 그렇다. 이들에게 이날은 다른 기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밤 깊도록 눈이 펑펑 내리던 1915년 정월 대보름, 대구 앞산(대덕산) 안일암에서 몰래 이뤄진 비밀결사 결성을 기리는 일이다.

바로 조선국권회복단이다. 일제 감시를 피하느라 시(詩) 짓는 모임, 시회를 가장해 한 해 첫 보름날 안일암에서 대구의 윤상태(회복단 통령) 등 전국 여러 지사(志士)들이 만든 단체다. 이 모임은 6개월 뒤 7월 보름, 달성공원에서 박상진 단원과 우재룡 등 독립투사들의 빛나는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 탄생의 연결 고리가 됐다.

필자도 지난해 광복회 대구지부의 '대구독립운동사' 발간 작업에 낀 덕에 이런 안일암과 달성공원 사연을 알았다. 이를 인연 삼아 눈이 올 정월 대보름을 손꼽으며 옛 지사들이 걸었을, 알 수 없는 숲길도 답사했다. 그러나 정성이 모자란 탓인지 예보와 달리 눈 대신 비로 안일암 결사의 흔적을 더듬는 옛길 걷기는 미뤄야만 했다.

올해는 안일암 결사가 일제의 촘촘한 감시망과 밀고(密告) 그물에 걸려 1919년 3월 만세운동 뒤 들켜 조직이 무너진 지 100년이다. 눈 내리는 정월 대보름 안일암 결사 길을 걷지 못한 일이 그래서 더욱 아쉽다. 내년 정월 대보름, 눈을 바라고 싶지만 이는 하늘의 일이라 그저 속으로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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