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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한 이불'…각방 쓰는 부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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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각방은 절대 쓰지 마라. 서로 살을 붙이며 살아야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 결혼식 주례사로 스킨십을 멀리하면 부부 사이도 멀어진다는 내용이다. 최근 들어 각 가정의 필요와 편의에 따라 각방을 쓰는 부부가 늘고 있다. 건재한 부부 사이를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말하는 이들도 있다. '부부는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불문율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각방 예찬'을 쓴 장 클로드 카우프만도 "더 잘 사랑하려면 떨어져서 자야 한다.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일 수 있다"며 "각방을 쓰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고 정신-육체 건강을 다 챙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각방 생활해도 부부관계 이상 무"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크게는 배우자의 외도, 성격 차이, 경제적 문제부터 작게는 출산 후 수유, 육아, 생활패턴 등 생활습관의 차이로 각방을 쓴다. 미국 국립수면재단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방은 한 방을 쓰지만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전체의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예 침실을 따로 쓰는 각방 부부도 10%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한 여성 포털이 조사한 결과을 보면 '현재 각방을 쓰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52%로 집계됐다.

이희정(가명·33) 씨는 2살 연상인 남편을 만나 3년을 연애하고 2014년 결혼했다. 각방을 쓴 지는 3년째. 잠만 따로 잘 뿐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좋은 편이다. "아직도 어떨 때는 신혼 같아요. 평소에는 따로 자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거실이나 안방에서 같이 잔다. 한 번씩 옆에 와서 같이 자자고 그러면 연애 초기 때 같은 로맨스 무드가 잡히더라고요."

각방을 쓰자고 제안한 건 희정 씨였다. 부부의 생활패턴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를 가져서 일을 쉬고 있지만 신랑이 밤에 근무를 했거든요. 신랑이 잠자리에 예민한 편인데 서로 시간대가 안 맞다 보니 각방을 고민하게 됐다. 결혼하고 1~2년 정도는 매일 같이 잤다. 부부는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서로 힘들어도 참았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서로 불편한데 꼭 같은 방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

안방은 희정 씨가 쓰고 아직 아이가 없어 하나 남아 있던 방을 남편만의 공간으로 꾸며줬다. "남자들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여자는 친구도 만나고 커뮤니티 형성도 잘하니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가 다양한데 남자는 친구를 만나도 속 이야기를 잘 못 하고, 가족들 앞에서도 자기 기분을 숨기고 감정을 컨트롤해요. 그래서 혼자서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그렇게 방을 만든 다음 하루 이틀 따로 자게 됐다"고 했다.

부부 간 대화 부족에 대해 희정 씨는 "우리 부부는 통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며 "대화가 조금 없었다 싶으면 남편이 출근하는 길에도 전화하고 퇴근하는 길에도 전화를 한다"고 했다.

아들 둘을 둔 40대 김정수·이미란(가명) 씨도 각방을 쓴다. 혼자 안방을 차지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이 씨는 "'안방은 남편 전용'이라며 '코골이가 너무 심해 아들도 도망간다'"고 했다. 김 씨는 "살이 찌면서 코골이가 심해 같이 못 자겠다고 해서 안방으로 쫓겨났다"고 했다.

50대 이재민·박수경(가명) 부부가 각방을 쓰는 이유는 두 사람의 체감온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벌써 20년이 됐다. 이 씨는 "집사람과 나는 온도가 잘 맞지 않아 아내는 안방, 나는 거실에서 잔다. 특히 여름에는 더워서 정말 같이 잘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번씩 함께 자려고 해도 결국 새벽에 거실로 나가게 된다"고 했다.

◆세대별로 달라

부부들이 각방을 쓰는 원인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있다. 결혼 10년 미만의 부부들은 특별히 부부관계가 좋아도, 갓태어난 아기나 어린 유아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합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간혹 배우자의 코골이와 상대를 힘들게 하는 잠버릇 등으로 아침기상과 출근에 지장을 막기 위해 각방을 쓴다.

30, 40대 부부의 각방쓰기는 대게 부부관계가 이상 없으나 다만, 한 침대에서 두 사람이 같이 자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체형이 인체상으로 불편할 때, 나쁜 잠버릇으로 상대의 수면을 방해할 때, 한 방이나 또는 각각 다른 방에 개인이 각각 싱글침대를 놓고 자는 경우가 있다.

50, 60대는 아예 각방을 큰 갈등 없이도 편의와 독립적 자세로 당연시해 서로의 눈치를 안 보며 편의적으로 사용한다. 그 반대로 오랜 세월동안 갈등을 심리적 이혼으로 대체해오는 부부들의 각방 사용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효제가족부부상담센터 김미애 원장은 "각방 쓰는 부부들을 보면 갈등부부의 갈등원인에 따른 현상의 하나로 각방 부부들의 실태를 부가적으로 보여준 예와 함께 특별히 갈등이 크게 없는 부부들도 필요에 따라서 각방을 사용하는 상황은 종종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부 잠자리, 침대시장까지 영향

부부생활의 잠자리 변화는 침대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킹 사이즈 침대를 없애고 싱글 침대 두 대를 놓아 트윈 룸으로 만드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한 가구업체는 수면 패턴이 다른 부부가 함께 사용해도 서로 방해 받지 않는 '싱글 침대' 제품을 비롯해 분리할 수 있는 '분리형 침대'를 내놓았다. 침대업체 관계자는 "연령대가 좀 있으신 분들이 싱글침대를 두 개 놓고 사용하려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수면 습관과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하고자 하는 부부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각방 쓰기, 전제조건은?

부부 사이가 소원하거나 배우자 한쪽이 불만을 가진 상태에서 각방 생활을 지속한다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장기간 각방을 써오다 다시 방을 합치고 싶지만 어색해 고민이라는 부부들도 있다.

각방 쓰기의 전제조건으로는 코를 심하게 곤다든지, 잠버릇이 고약하다든지, 일하는 배우자가 단잠을 자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라든지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에서의 각방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에 대한 존중의 의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효제가족부부상담센터 김미애 원장은 "부부 간 친밀감과 유대감이 충분하다면 필요에 따라 각방을 쓰는 것으로 관계를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며 "각방이냐 한 방이냐는 본질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부부가 평생 같이 잘 수 있다면 더 없는 축복이지만 각방을 쓰게 됐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며 "대화와 성관계, 취미생활 등 다른 소통을 통해 친밀도를 높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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