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월의 흔적] <25>고무신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순종황제가 처음 신은 고무신, 광복 이후 6·25때까지 전성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문득 예전에 읽었던 시가 떠올랐다. 목월이 지은 '가정'의 한 구절인데, 간추려서 옮겨 적는다.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나는 초등학교 시절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좋았다. 실용적일 뿐 아니라 값이 비싸지 않아서 더욱 좋았다. 어른들은 가죽신을 신고 다녔으나, 그 시절 아이들은 하나같이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때로는 명절을 앞두고 아버지가 새로운 신발을 사 오면 선반 위에 얹어놓고 명절날이 되기만 고대하였다.

중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었고, 그에 걸맞게 운동화를 신었다. 평생에 처음 입어 보는 교복이며 운동화가 자랑스러웠다. 하루아침에 멋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교복에 때가 묻을까 해서 늘 조심하였고, 신발 또한 닳을까 봐 집에 돌아오면 곧바로 고무신으로 갈아 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 어린 마음에는 귀하고 아까운 물건이었다.

아이들이나 서민들은 검정고무신을 신었다. 그러나 어른들이나 형편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흰 고무신을 신었다. 그런가 하면 여인네는 예쁜 코고무신은 신었는데, 뽀얀 버선과 치마저고리를 갖추어 입고 길에 나서면 인물이 한층 돋보였다. 어쩌다 남의 집에 가서 댓돌 위에 가지런하게 올려놓은 예쁜 코고무신을 보면 멋스러워 보였다.

우리나라에 고무공업이 시작된 것은 기미년 만세운동 무렵이었다. 고무제품으로는 신발류가 유일한 생산품이었고, 처음으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순종황제였다. 그러다가 광복을 맞았고, 육이오 전쟁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운동화의 대중화와 구두의 생활화로 고무신의 선호도가 날로 떨어졌다.

'고무신을 신고 나가자 동무들이 신기한 신발을 구경하려고 나를 에워쌌다. 그리고 코가 널찍하고 물렁한 신발을 서로 신어 보자고 나를 졸라 대었다. 나는 껑충거리며 자랑하였다. 그러나 평생에 처음 신어 보는 자랑스러운 신발을 하루도 못 신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으로 신발을 찾아 헤매는 나의 눈에 비친 달빛은 조금 전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비록 한 켤레의 고무신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린 어린 소년이었다. 바로 잃어버린 것을 찾아 헤매는 원망스럽고 허전하고 안타깝고 서러운 눈에 비치는 달빛은 밝고 푸른 것만이 아니었다.' 목월이 들려주는'달과 고무신' 가운데 한 대목이다.

김 종 욱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육군사관학교에 대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육사총동창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총동창회는 대통령의 발언이 사...
삼성전자 '갤럭시Z 폴드8'의 역대급 사전예약에 힘입어 구미에서 열린 '2026 갤럭시 런칭 페스타 with 구미' 행사에는 200여 명이 ...
경북 지역 지자체들이 인구 방어선 유지를 위해 애쓰고 있으며, 구미시는 40만명 방어선 붕괴 위기를 겪고 있고, 고령군은 인구 3만명 회복을...
필리핀에서 중국인이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위조하여 전력망 사업에 개입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가 안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핀 이민국은 로런..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