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자치 30주년] '지방분권의 꽃'으로 우뚝 선 지방의회

지방정부의 눈부신 성장
해외연수의 내실화
지방분권의 현실적 한계

지방자치 30년을 이어오는 동안 지방의회의 위상은 눈부시게 높아졌다. 특히 한동안 보수색이 짙어 특정 정당이 싹슬이했던 대구경북 의회에서도 최근에는 여러 정당 소속 의원들이 진출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선순환적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장치는 10년 넘게 관련 법들이 국회에서 잠자면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국회 못지않은 지방정부 감시자

경북도의회가 지난해 초 개원 이래 처음으로 교섭단체 구성을 마무리했다. 장경식 도의장과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경의동우회(무소속·바른미래당) 대표단이 교섭단체 등록을 마친 뒤 본회의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북도의회 제공
경북도의회가 지난해 초 개원 이래 처음으로 교섭단체 구성을 마무리했다. 장경식 도의장과 자유한국당, 더불어민주당, 경의동우회(무소속·바른미래당) 대표단이 교섭단체 등록을 마친 뒤 본회의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북도의회 제공

경상북도의회는 11대 도의회에서 최초로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그 외 정당과 무소속 등으로 구성된 경의동우회가 정식 교섭단체로 등록했다.

이전까지는 다수당에서 상임위 등의 의장단을 독점해왔지만 이제는 교섭단체 대표의 의견을 반영, 본회의 추천·의결을 거쳐 선임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그만큼 소수 의견까지 존중한다는 의회 정신이 반영됐다.

주민들을 위한 제도 개선 노력도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시의회의 경우 시의원이 직접 안건을 발의하는 비율이 제8대 의회 들어서 전체 의원의 54%를 넘어섰다. 4대 13%, 5대 37% 등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시정 견제 방편인 시정질문과 5분발언도 급증했고, 질의 분야와 내용도 다양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구시의회가 민생현장 탐방 일정의 하나로 지난해 9월 대영코어택을 방문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대구시의회 제공
대구시의회가 민생현장 탐방 일정의 하나로 지난해 9월 대영코어택을 방문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대구시의회 제공

민생현장 점검과 간담회, 세미나 등 시민들과 직접 만나고 호흡하는 생활정치 역시 지방의회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주민과의 SNS 소통은 필수가 됐다. 그만큼 시민의 필요와 요구를 빨리 파악하고 대처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 지방의회의 양분인 기초의회 구·시·군의원이 내실을 다져 한 단계 상위인 광역의회로 정치적 무대를 옮겨가는 것이 시대적 트렌드가 됐다. 초기 지방의회는 특정 정당·다선 의원이 주를 이뤘지만 의원 스스로 역량을 갖춰 상위 의회로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는 선거마다 신인 발탁으로 메워지고 있다. 아직까지 대구경북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성장한 사례는 없지만 올해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수 지방의원이 유력 후보로 떠오른 점을 감안하면 이런 사례도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전망된다.

◆위기가 기회…성숙한 의회로

지난해 지방의회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식적 꽃놀이'로 불리며 실효성을 두고 끊임없이 논란이 일었던 지방의회 해외연수에 대한 대대적 개편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2월 지방의원 해외연수 관련 규정과 관련해 해외연수 '셀프 심사' 차단과 부당지출 환수방안 마련, 정보공개 확대, 페널티 적용 등 개선안을 담은 '지방의회의원 공무 국외여행 규칙' 표준안을 전면 수정해 각 지방의회에 권고했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기초·광역의회들은 이후 개선안을 제정, 실행에 들어갔다.

박종철 전 예천군의회 군의원이 해외연수 기간 중 가이드를 손으로 폭행하는 CCTV 영상 캡쳐화면. 매일신문DB
박종철 전 예천군의회 군의원이 해외연수 기간 중 가이드를 손으로 폭행하는 CCTV 영상 캡쳐화면. 매일신문DB

아이러니하게도 이같은 개편은 경북 예천군의회 가이드 폭행 사건이 계기가 됐다. 예천군의회는 2018년 12월 20일부터 29일까지 7박 10일 일정으로 미국, 캐나다 등지로 해외연수를 떠났다. 박종철 전 군의원은 연수 나흘째인 23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에서 현지 가이드를 폭행, 얼굴에 상처를 입히면서 큰 물의를 빚었다. 이후 이 사건이 전국적 이슈가 되면서 지방의회 해외연수에 대해 비판이 쇄도했다.

지방자치 발전과 함께 지역 시민사회 성장도 두드러졌다. 지난해에는 대구경북 최초의 지방의회의 주민소환투표가 포항에서 실시됐다. 포항 생활폐기물에너지화시설 폐쇄와 이전을 요구하는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결국 오천읍을 지역구로 둔 이나겸·박정호 시의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대구경북에서 몇차례 주민소환이 진행된 바 있지만 마지막 관문인 주민투표까지 진행한 것은 포항이 처음이었다. 지난해 12월 18일 치러진 투표는 투표율 21%에 그쳐 개표 요건 미달로 자동부결됐으나 지방 시민사회의 정치 참여의식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제도적 뒷받침은 '깜깜 무소식'

지방의회가 지방분권 현실화를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방의회가 지방분권 현실화를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매일신문DB

지방의회의 발전에도 지방분권은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수이지만 정부의 지방분권에 대한 소극적 의지 등이 가로막고 있다.

이에 따라 2007년 이후 13년 동안 지방분권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지방분권 5개년 종합실행계획'이 발표·추진되면서 2007년까지 949건의 중앙정부 권한이 지방정부로 이양됐다. 2008년에는 '지방분권특별법'을 개정해 '지방분권 촉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시행했고, 이 특별법에 따라 그해 12월 '지방분권촉진위원회'가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실질적 개선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인구 대비로 나눠진 국회의원 정원 대부분이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탓에 자신의 표심이 미치지 않는 지방분권에는 힘을 실어주지 않는 분위기다. 행정구역 개편이나 광역권 발전계획 등 실질적 지방분권 관련 법률안은 기약없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지방분권 동력이 떨어진 정부 역시 손을 놓으면서 지방은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 바로 '지방 소멸'이란 벼랑 끝에 서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젊은이들이 지방에 머물지 않고 비생산인구인 노인들만 지방에 남겨지면서 지방 자체가 사라질 위기이다.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이 개정안을 통해 정책지원 전문인력제 실시,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이 실현된다면 지방자치는 꽃을 피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도 "인구 감소로 지방 소멸 위험성이 높아져가고 지역 경제의 어려움으로 일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며 "실질적 지방분권 실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지방의회 참여가 더욱 넓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시의회의 경우 현재 7명의 여성의원이 활약하고 있지만 남녀 성비로 볼 때는 턱없이 미약한 상태다. 경북도의회 또한 여성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