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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나이 마흔 일곱에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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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친정어머니는 년초만 되면 신수를 열심히 보러 다니신다. 어릴 때는 그만그만하시더니 생각지 않게 내가 대학입시에 떨어지고, 또 한 점쟁이가 그걸 용하게 예언한 후로는 맹신하다시피 점이며 사주를 보시는 듯 했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습관 혹은 취향에 대해 흔한 젊은이들이 그렇듯, '역시 어른들이란…' 조금은 무시하는 태도였다. 책임질 것 없고, 1+1이 2로 딱 떨어지는 세상에 살았던 어린 날에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는 정작 침묵하고, 신수를 보며 걱정을 만들어 사는 것 같은 어른들이 바보같아 보였다.

하지만 '멋있는 어른으로 살겠노라' 자신만만하던 내게 펼쳐진 세상은, 1+1이 10도 되고 100도 되고, 때로는 –100도 되는 게 다반사였다. 그랬다. 어른들의 세상은, 딱 떨어지는 하나의 해석이 불가능한 그런 거였다. 책임을 지는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고 때로는 버거웠다. 신수를 보러가는 어머니를 빈정대던 나도, 결혼을 하고 생각지 않은 일들이 뻥뻥 터지는 하루하루를 살면서는 불안한 마음에 '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하고 신수를 보러가게 되었다.

어제도 아이 학원 선생님이 사주를 잘 본다는 얘기를 듣고 봐주십사 졸랐던 참이었다. 건강은 어떨지, 사고는 없을지. 1시간쯤 사주에 대한 얘기를 끝내면서, 심하게 다친 적도 있고, 걱정되는 일도 있어 여쭙게 됐다는 말을 하는데, 선생님이 그런 말을 툭 던지시는 거였다. "그런데 어머님, 일어나지 않은 일이예요.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주는 통계지 100%는 아니예요. 우리 인생이 그렇죠. 인생에 100%라는 게 어딨겠어요." 갑자기 머리를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 일어날 지 확실하지 않은 일.

나는 소아재활을 전공으로 하는 의사라서 보호자들에게 이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교수님, 치료하면 100% 좋아질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를 키우는데 100%의 확률이 없듯이 아이의 치료 또한 100%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나도 그랬다. 나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두려워 하고, 플랜(plan) B, C, D를 세워가며 실패없는 100%의 대비를 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시간은 가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고 대비하느라, 나의 시간은 흘러가고, 나의 현재도 저멀리 지나가고 있었다.

많은 어른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 성적 걱정을 하고, 남편 직장 걱정을 하고, 부모 건강 걱정을 하고, 나의 노후 걱정을 하고.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일어난 일은 없다. 내가 다칠 수도, 아이가 아플 수도,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더구나 일어날 지도 확실치 않은 일. 그러기엔, 오늘의 햇살은 너무 보드랍고, 하늘은 너무 파랗지 않은가.

오늘, 숙제부터 하고 노느냐고 아이에게 다그치기보단, 이번에는 승진할 수 있냐고 묻기보단, 책임지고 대비하느라, 정작 소중한 오늘을 흘려보냈던 내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오늘 하루도 행복하라고 하트를 날려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하트를 날리자. 나의 마흔 일곱, 1월의 오후는 소중하니까. 나는 살아있고, 그거면 됐다. 하늘도, 바람도, 햇살도 그리고 어쩌면 나와 친한 부엌의 밥통도 모두 그대로인 오늘이니까. 참 행복한 오늘이네 ㅎㅎ

손수민 영남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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