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배우면서 즐기는 답사여행] 정조의 염원 깃든 수원화성·화성행궁

비통하게 아버지 잃은 정조, 겹겹이 쌓아 올린 애틋한 효심

수원화성 화홍문.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시원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수원시청 제공
수원화성 화홍문.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자는 무지개를 뜻한다.시원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답다. 수원시청 제공

찬바람이 남아 있지만 볕이 따스해졌고 코 끝에 와 닿는 부드러운 봄 기운이 밀려오고 있다. 대지의 기운은 봄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여파로 야외활동이 크게 위축된 요즘, 도통 계절의 변이를 느끼기 힘들다는 게 이구동성이다. 하지만 마냥 실내에만 있기도 아닐 듯 싶다. 대자연의 기운과 역사의 향기가 숨 쉬는 곳은 어떨까?

이번 답사기행은 대구 달성군 문화해설사와 함께 성곽에 둘러싸인 역사 도시 경기도 수원(水原)을 찾았다. 경기도 수원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꿈이 깃든 도시다.

정조의 꿈이 깃든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를 죽인 세력들이 가득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궁궐을 수원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정조의 꿈이 깃든 수원화성은 정조가 아버지를 죽인 세력들이 가득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궁궐을 수원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정조의 한이 서린 수원화성

아버지 사도세자를 비통하게 잃은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가 가까이 있는 수원에서 그를 기리는 뜻으로 거대한 성을 지었다.
근대 성곽의 백미로 꼽히는 수원화성은 정조의 명을 받은 다산 정약용이 활차와 거중기를 활용해 정조 18년(1794) 2월에 시작, 2년 6개월만에 완공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근대성곽이다.
수원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문 팔달문, 동문 창룡문, 북문장안문, 서문 화서문을 통해 성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성곽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했다고 여긴 정조가 아버지를 죽인 세력들이 가득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궁궐을 수원에 만들고자 한 것이다. 보통 읍성은 2km 내외이나 수원화성은 둘레가 무려 6km나 되는 큰 성이다.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수원시청 제공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수원시청 제공

수원화성에만 있다는 공심돈은 서북·동북공심돈 2개가 있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돼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화성 성곽에서 가장 특징 있는 건물 중 하나다. 공심돈은 멀리 있는 적의 상황을 관측할 수 있는 초소이며, 공격과 수비가 가능한 구조물이다.

또한 비밀문이라 할 수 있는 암문은 팔달산 정상과 화홍문 방향에 있다. 유사시 적에게 노출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된, 문루가 없는 석축 모퉁이 사잇문이다. 문을 닫으면 성벽처럼 보인다. 성곽 모퉁이에는 전망과 감시초소 역할을 하는 각루 등을 갖추고 있다.

팔달문은 화성의 4대문 중 남쪽 문으로 남쪽에서 수원으로 진입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정조대왕과 당대 국왕들이 현륭원을 가기 위해 이곳을 통과했다고 한다. 팔달문은 모든 곳으로 통한다는 '사통팔달'에서 비롯한 이름이며 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제402호로 지정됐다. 성문의 바깥에는 성문을 보호하고자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듯한 반달 모양의 옹성을 쌓았다.

수원화성 성곽 위에서 바라본 수원 시가지와 서북각루의 모습
수원화성 성곽 위에서 바라본 수원 시가지와 서북각루의 모습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등재 세계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고 파괴됐지만, 다산은 화성의 공사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을 남겨 원형과 똑같이 복원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해설상의 오차를 줄이고자 간단한 글씨와 그림으로만 설명돼있다.

성곽을 둘러보는 동선은 동문 쪽 주차장에 주차 후 성곽 위를 도보로 답사하는 방법과 창룡문에서 화성열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화성행궁은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겨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건립했다.수원시청 제공
화성행궁은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겨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건립했다.수원시청 제공

◆드라마 배경으로 유명한 화성행궁(華城行宮)

행궁은 왕이 전란을 피하기 위해 머물거나 지방의 능에 참배하러 갈 때, 잠시 휴양삼아 지방으로 나들이 할 경우 머무는 곳이다.
정조의 원대한 꿈과 효심이 느껴지는 화성행궁은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 화산으로 옮겨 수원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건립했다.

달성군 문화해설사들이 화성행궁 봉수당을 둘러보고 있다.
달성군 문화해설사들이 화성행궁 봉수당을 둘러보고 있다.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여러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로 손꼽힌다. 평상시에는 수원부 관아로 사용되다가 정조가 행차 시에는 행궁에 머무르며, 진찬연 및 과거시험 등 여러 행사를 했다. 그러나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일제의 민족문화·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 이후 화성행궁은 복원돼 '대장금', '왕의 남자',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 세트장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입구에 오른쪽 끝 깊숙한 곳에는 정조의 어진을 모신 사당인 화령전이 있다. 검소하면서도 품격을 갖춘 영전(影殿)이다.

달성군 문화해설사들이 융건릉을 둘러보고 있다.
달성군 문화해설사들이 융건릉을 둘러보고 있다.

◆정조의 효심 깃든 융건릉(隆健陵)

융릉은 장조, 즉 사도세자와 경의왕후(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며 그 왼편에는 있는 건릉은 사도세자의 아들 조선 22대 왕 정조와 효의왕후의 합장릉이다. 같은 영역에 있으므로 두 능을 합쳐 융건릉이라 부른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부부와 정조 부부 능이다.
융건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부부와 정조 부부 능이다.

사도세자의 능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남쪽 중량 배봉산에 있었다. 정조가 즉위하면서 곧바로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으로 추상하고 묘호를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바꾸고, 이어서 현륭원으로, 다시 융릉(장조)으로 올렸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릉 40여 개(북한지역 4기 제외)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
융릉의 원찰인 용주사

◆국보·보물 가득 담은 용주사(龍珠寺)

융건릉 오른쪽 1.7km 거리에 위치한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갈양사로 창건됐다. 그 후 조선 제22대 정조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님의 크고 높은 은혜를 설명한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 받아 아버지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융릉의 원찰로 1790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꿈을 꿨는데,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했다고 절 이름을 용주사라 지었다.

이 절은 대중포교를 통해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고 정조의 효심을 계승하기 위해 효행교육원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일주문은 보이지 않고 다른 사찰에는 없는 솟을대문에 행랑채가 붙어 있으며 행랑채 앞에 홍살문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웅보전 왼쪽에는 고려 범종으로는 처음으로 삼존불이 조각돼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결가부좌한 삼존불과 비천상이 정교하게 조각된 국보 제120호인 범종이 있다. 또한 부모님의 은혜가 중함을 기록한 '부모은중경' 목판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웅보전(보물 제1942호)에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인 '삼세여래후불탱화'가 있다.

글 ·사진=대구답사마당 이승호 원장(leesh0601@hanmail.net)

tip:

*가는 길:대구→경부고속도→북수원 IC→수원화성(소요시간 약3시간)

*화성열차 요금은 성인 4천원, 어린이 1천500원이다.

*화성행궁 주차료는 유료이며, 입장료는 성인 1천500원이다.

*융건릉은 주차료는 없으며, 입장료는 성인 1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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