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가사의 인도] 인도영어 Hinglish가 본토 영어를 위협하다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이도수 경상대 명예교수

필자와 만났다 하면 무슨 논쟁거리든지 들고 나와 토론을 즐기는 인도인 친구 토마스 싱에게 필자는 늘 토론에서 밀렸다. 그 이유는 논리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두 사람 간의 공용 언어인 영어 구사력에서 필자가 밀렸기 때문이었다. 명색 영어교육이 주전공인 필자가 동북아시아 역사 전공자인 인도인 친구에게 영어 구사력에서 밀리니 자존심이 상했다. 그 원인을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필자는 영미 본토인들의 정확한 발음과 문법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토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취약점이었다.

반면에 인도인 친구는 인도식 발음과 인도식 변형 영문법으로 거침없이 지껄이는 배짱 덕분에 늘 토론을 주도했다. 발음을 두고 말하자면, 인도인들은 영어의 'p' 발음을 'ㅃ'로 발음하므로 'pretty pajama'를 '쁘리띠 빠자마'라는 식으로 발음한다. 인도인들이 구사하는 영어 Hinglish에서 한국인들을 당황시키는 더 심각한 요인은 영어 정통문법을 무시하고 인도식 어법을 배짱 좋게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The girl over there is your sister, isn't it?"이라는 표현은 한국에서라면 중학생쯤만 되어도 'isn't she'를 'isn't it'으로 잘못 쓴 문법적 오류를 당장 지적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인들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힌두 언어에는 남녀 구별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 인도인 친구는 내가 완벽한 본토 발음과 정확한 문법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국어식 발음과 한국 문법과 절충된 영어를 겁 없이 쓰는 배짱이 필요하다는 솔직한 충고를 해주었다. 나는 그 충고가 상당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려 애썼지만 생각만큼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인도식 영어를 Hinglish라 칭하듯이 한국식 영어를 Konglish라 칭한다. 인도인들은 Hinglish 구사를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는데, 한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식의 옹고집으로 Konglish 구사를 꺼리기 때문이다. 영어권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쓰는 영어를 'survival English'라 칭한다. 양반도 물에 빠지면 개헤엄이라도 쳐야 살아남듯이 한국인들이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환경에 처해서 한국식 발음 티가 묻어 있고 한국어법 냄새가 풍기는 영어라도 거침없이 쓰는 태도로 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이 어려웠다. 물에 빠지면 우선 개헤엄이라도 쳐서 살아남아야 하고, 일단 살아남게 되면 저절로 모양새 있는 표준 수영 스타일로 발전하게 되는데 말이다.

Konglish를 비하하는 한국인들은 그 고정관념 때문에 한국이 세계에서 영어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비용이 최대인데 능률은 최하라는 오명을 쉽게 벗어 던지지 못한다. 이런 중에 최근 인도 영어 Hinglish에 대한 평가가 크게 높아졌다. 국제통상이 점차 확대되는 글로벌 시대에 국경 개념이 없는 글로벌 기업들은 Hinglish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 소위 영어권 6개국 인구를 다 합해도 인도 인구에 못 미친다는 계산 때문이다.

인도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 30%를 제외한 인도 인구만도 영어권 6개국 인구를 합한 수를 능가한다. 이들을 소위 '수동적 Hinglish 구사 인구'라는 것이다. 국제통상용어인 이 말은 'Hinglish로 상품 광고를 하면 본토 영어로 광고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잘 먹혀드는 현상'에 착안해서 생긴 용어이다. 이 점을 간파한 국제전자상거래기업 Amazon은 인공지능 Alex에게 Hinglish를 가르치고 있고, 이에 질세라 Apple도 인공지능 Siril에게 Hinglish를 더 열심히 가르치고 있단다.

영어권 6개국은 인구 감소 현상으로 고민 중인데 꾸준한 인구 증가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인도는 이들 나라의 인구 감소분을 채워주기에 서로 찰떡궁합이다. 언젠가는 Hinglish가 본토 영어보다 위세가 강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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