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0대 총선은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180석 목표'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국회선진화법 극복을 위해서라는 해명이 따르긴 했지만 그만큼 낙관적 전망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진 제1야당과, 정의당까지 각축을 벌이는 1여 3야 구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적장인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김종인 비대위 대표를 삼고초려로 모셔야 했다. 눈앞에 보이던 새누리당의 승리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선거 결과는 다 아는 바이다. 민주당 123, 새누리당 122. 한 석 차로 제1당을 내준 참패였다. 급전직하 과정 역시 아는 대로다. 이한구 공천위원장 주연, 김무성 대표 등 조연들이 벌인 오만방자 '막장 공천극'의 결과였다. 한마디로 자해, 자폭을 통해 패배를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의 시계도 이때부터 돌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김종인 씨를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한 바 있다. 보수와 진보를 각각 선거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20대 총선 민주당 승리를 견인했다는 것은 신화일 뿐이다. 새누리당의 자멸로 민주당에 승리를 헌납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김 전 위원장 폄하가 아니다. 같은 역사를 반복하는 통합당의 행태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마르크스의 경구 그대로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통합당은 야권 통합을 어지간히 이루어냈다. 악화일로인 경제 상황, 북한과 중국에 대한 여권의 저자세, 지난해 후반기를 달군 조국 사태, 명백한 수사 방해로 보이는 검찰 개혁 행보. 현 정부와 여권에 대한 심판의 이유가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었다. 특히 코로나19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처는 국민의 분노를 부른 결정적 변수였다.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를 조기에 차단했다면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퍼지는 사태를 미연에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추진하기 위해 미적거리는 사이 모든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바이러스에 죽기 전 굶어 죽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아무리 정부 여당이 야권 심판론을 제기해도 야권에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던 참이다. 그런 게 아니어도 집권 중반의 총선은 정권에 대한 심판 혹은 평가 성격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야권에 유리한 구도인 것이다.
요 며칠 사이 야당에서 벌어진 소동은 이런 구도를 일거에 반전시켜 버렸다. 한마디로 차려진 밥상을 스스로 걷어차는 모습이다. 통합당의 공천 후유증은 선거마다 겪는 통과의례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른바 보수 텃밭이라는 대구경북(TK)과 서울 강남 지역 공천은 야당을 찍으려던 손길을 머뭇거리게 한다. 이른바 자매정당이라는 미래한국당의 공천은 더 한심하다. 통합당과 이견이 있다면 사전에 조율했어야 한다. 비례대표 명단 발표 이후에 '가소롭다'는 비난을 주고받으며 치졸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대표와 사무총장을 '파견'하여 대표와 공천위원장을 교체한 것은 양측의 정치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다. 더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불법행위가 될 가능성이다. 비례대표 공천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한 개정 선거법에 저촉될 우려가 큰 것이다. 코로나 사태 역시 미묘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 비상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대처를 잘했다고 하는 평가가 먹힐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코로나 블랙홀이 정권 평가 이슈를 완전히 삼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야권이 자멸의 역사를 되풀이한다면 비극일까 희극일까. 근본적으로는 또 한 번의 비극이지만 결국 우스운 희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극적 결말을 뻔히 알면서 이를 방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배우는 게 한 가지 있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이번 주 야당의 행보는 정말 중요하다. 잘못된 공천을 감동을 주는 공천으로 바로잡을 수 있을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날지, 그래도 무언가 배우는 게 있는 세력이 될지 판가름하는 시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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