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 년 전 미국인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안의 늑대를 몰살했다. 가축을 해치는 골칫덩이라는 생각에서였지만 큰 실수였다. 천적인 늑대가 사라지자 초식동물 개체수가 너무 많이 불어나면서 초목들이 남아나질 않았다. 생태계 축이 무너지자 들쥐, 곤충, 독수리, 올빼미, 곰들도 자취를 감췄다. 늑대가 사라진 지 불과 6년 만에 옐로스톤은 황량한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
1995년 미국인들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회생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캐나다에서 늑대 30마리를 구해 옐로스톤에 방사한 것이다. 늑대가 돌아오자 놀랍게도 옐로스톤은 빠른 속도로 옛 모습을 되찾아갔다. 숲이 다시 울창해지고 새, 비버, 오리, 독수리, 올빼미, 곰도 돌아왔다. 옐로스톤은 푸른 숲, 맑은 호수, 다양한 동식물이 어우러진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자고로 세상에 나쁜 벌레, 나쁜 동물은 없다.
동종(同種) 교배로 비슷한 유전자만 남은 단일식생 생태계는 건강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요즘 대구경북 정치판을 보면 늑대가 사라진 옐로스톤이 떠오른다. 견제하고 경쟁하는 다양한 정치세력 구도의 부재 탓이다. 대구경북은 소위 '보수의 본산'이다. 대구경북민은 역대 선거에서 보수 정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표를 줬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우와 지분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압도적이고, 일방적인 지지 결과로 돌아온 것은 지역 홀대다.
당만 보는 묻지마식 투표가 횡행하니 후보들은 지역 유권자들보다 중앙당 권세가들만 쳐다본다. 지역을 아무리 챙기고 열심히 뛰어봤자 중앙당 핵심 실세의 눈밖에 나면 다음을 기약할 길 없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국회의원이 불과 한두 달 전에 공천 성은(聖恩)을 입고 날아든 서울TK에게 더블 또는 트리플 스코어로 밀리는데 누가 유권자들을 무서워할까. 막장 공천, 공천 농단이라며 목청 높여봤자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이대로라면 4년 뒤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도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집토끼와 잡힌 물고기에겐 모이를 주지 않는 법, 너무 넘치는 사랑을 주면 도리어 우습게 보고 가벼이 여기는 게 이 바닥이다. 그래서 정치적 선택에도 적당한 '밀당'(밀고 당기기)이 필요하다. 대구경북이 주주총회(선거)에서 매번 압도적인 표를 줘놓고도 지분 예우를 받기는커녕 푸대접을 받는 데에는 공천권을 보수 정당 지도부에 사실상 헌납한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총선에서 지역 일꾼론은 정권 심판론 못지 않게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 유권자들이 정권 심판론에 워낙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여론조사를 보면 대구경북에서의 보수 정당 후보 싹쓸이 현상이 더 심화될 것 같다. 컷오프돼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역 의원들도 당선 후 '친정' 복귀를 진작부터 선언한 만큼 대구경북 전 선거구를 보수 정당이 석권하는 '25대 0' 스코어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특정 정당의 싹쓸이 현상이 대구경북의 미래에 어떤 '손익계산서'를 제시할지 지역민들은 한 번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표 쏠림 또한 민주주의적 절차에 의한 유권자 선택이니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다. 하지만 다른 정치세력에게도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실리적 선택도 지역으로선 나쁘지 않다. 대구경북 정치판에도 옐로스톤 늑대 같은 존재가 있다면 정치판이 더 풍성해지고 지역 지분을 챙길 여력도 생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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