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記錄, 역사를 남기다] <상>안동의 유산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중심 도시 '안동' 날갯짓

경북도와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015년 10월 10일
경북도와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015년 10월 10일 '유교책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사진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제막식 모습. 안동시 제공

경북 안동시가 세계기록유산 중심도시로의 도약을 위한 본격 준비에 나선다. 경북 북부지역 유교 문화권의 중심지로 수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한 안동시는 지난 2015년 '유교책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다.

2016년에는 한국의 편액을, 2018년에는 '만인소'(1만 명의 청원)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에 등재시켰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안동시는 한국국학진흥원에 문을 연 '한국 세계기록유산 지식센터'를 중심으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동시는 우선 초기 민주주의 원형을 보여주는 '만인소'의 2023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목표로 그 내용과 가치를 알리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 한국의 편액, 내방가사 등도 등재기반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52만점의 기록유산 가운데 앞으로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성이 있는 자료도 발굴할 계획이다.

◆사라질 위기 민간 기록물이 세계유산으로

안동시는 2002년 경북도와 함께 한국국학진흥원을 설립했다. 이후부터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을 시작했다. 땔감이나 빨래판으로 사용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한 단초였다.

문중에서 수탁한 목판들은 한국국학진흥원이 목판 전용 수장시설인 '장판각'에 보관돼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동안 문중과 종가·종택 등이 관리하면서 멸실이나 훼손 등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소중한 기록유산을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수집하고 관리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0, 7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숱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수백 년 종가·종택을 지켜오던 종손 등 젊은이들도 숙명처럼 여겨오던 문중과 가문의 유산 보존과 종가문화 지키기에 소홀해지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훼손과 멸실, 도난 등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지킴이가 떠나 빈집이 된 종가·고택 방 한 귀퉁이에 쌓여 있던 목판 등은 문화재 전문 절도범들의 표적이 돼 골동품으로 전락했으며, 화재 등으로 불타 없어져 버리는 신세가 됐다.

이처럼 무관심 속에 멸실될 위기에 처했던 유교책판들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설립되고 '목판 100만 장 수집운동' 및 '문중유물 기탁운동'이 추진되면서 체계적으로 분류, 관리되며 빛을 보게 됐다.

한국국학진흥원 법인 설립 20여 년 만인 지난 2015년 10월 10일 새벽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제12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에서 국내에서 12번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름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경북도와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015년 10월 10일
경북도와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은 지난 2015년 10월 10일 '유교책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사진은 세계기록유산인 유교책판이 보관된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내부 모습. 안동시 제공

◆유교책판, 공론(公論) 통해 제작된 공동체 출판

유교책판은 영남 지역 305개 문중에서 기탁한 718종, 6만4천226장의 목판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인쇄·발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유교책판은 공론(公論)을 통해 제작이 결정된 '공동체 출판'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완성된 책판은 개인이나 문중의 소유가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동 소유라는 개념을 가지게 됐고, 보존·관리에도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의의는 내용의 진정성이다. 718종 유교책판의 내용에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했던 선현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후학들은 평생을 통해 그러한 삶을 추구했던 선현들을 현창하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그와 같은 인간상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유교책판을 제작했다.

안동시는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관련해 "잠자고 있던 민간 기록물이 세계적인 문화자산이 됐다. 유교문화를 세계가 인정한 쾌거이면서 책판 수집·관리 등 10여 년이 넘는 노력의 결실"이라 평가했다.

특히, 한국국학진흥원 목판 10만 장 수집운동과 '유교책판'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는 하회 류씨 문중의 충효당·양진당을 비롯해 의성 김씨 학봉 종택, 안동 권씨 가일 문중 등 안동 지역을 중심으로 한 종가·종택들의 적극적인 유물 기탁과 관심이 큰 몫을 했다.

이상일 안동시 문화재연구팀장은 "산업화가 되면서 종가·종택에 보관하던 목판 등이 도난과 분실 우려가 커졌다. 결국 국학진흥원에 수탁·관리하는 방안이 문중마다 논의됐다. 도난 우려가 오히려 목판 수집운동을 쉽게 하는 이유가 됐다"며 "이처럼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목판을 비롯한 유교책판이 세계유산으로서 안동의 정체성을 알리는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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