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잡초

임재양외과 원장
임재양외과 원장

마당이 있으면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정말이었다.

봄에는 전쟁이 아니라 놀이다. 쉬엄쉬엄 놀이 삼아 뽑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장마에 접어들면 모기에 물리고 땀 범벅이 되면서 잡초를 뽑지만 돌아서면 또 무성하게 자란다. 오기가 생기고 잡초에 대해 적개심도 생긴다. 바둑 둘 때는 누워서 천장을 보면 벽지 무늬가 전부 바둑판으로 보이더니, 잡초와 싸움을 벌일 때는 어디를 가나 잡초만 보인다. 그리고 적개심으로 뽑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걷다가 도로의 잡초를 보면 나도 모르게 주저앉아 그것을 뽑고 있다. 거리의 잡초는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데 왜 뽑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냥 잡초이니까?

3년 전부터 잡초는 정리만 하고 완전 제거하기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내가 키우는 채소, 꽃을 방해하는 잡초를 그냥 둔다는 것이 속이 상했다. 그런데 잡초 뽑기를 포기하자 또 다른 재미있는 현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잡초의 사전적인 의미는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면서, 농작물 성장에 방해를 주는 풀이다. 그렇다면 잡초를 나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도록 이해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에 대해 적개심을 버리고 관찰을 하고 공부를 하자 잡초의 다양한 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선 꽃이 예쁘다. 민들레의 노란 꽃이 화려하게, 개망초의 흰꽃이 우아하게, 토끼풀의 작은 분홍꽃이 귀엽게 보였다. 정리되지 않고 어지러운 면은 있었지만 따로 돈 들이고 공들일 필요 없이 꽃밭이 되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잡초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개망초 잎을 전으로 구워도 좋고, 민들레 잎을 샐러드에 섞어도 약간 쓴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과거 요리하는 사람이 텃밭에서 금방 따온 허브로 음식을 내면 우선 기가 죽었다. 뭔가 우아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런데 알아보니 지금 허브란 것이 애초에는 들에 피는 잡초였다. 허브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내 텃밭에도 처음 씨를 뿌려 둔 것이 몇 년이 지나자 알아서 자라고 있다. 관리하지도 않는데 매년 넘쳐날 정도로 자란다. 땅을 뒤집고 흙을 갈아도 집요하게 자란다. 손님이 오면 그냥 허브 가지를 꺾어서 유리병에 꽂고, 잎으로 요리만 해도 손님들은 기가 죽는다. 우리가 이용하기에 따라 잡초가 되기도, 음식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대표적인 잡초는 토끼풀이다. 번식력이 놀랍다. 그런데 토끼풀을 뽑으면서 뿌리를 보니 주위에 작은 혹이 보였다. 자료를 찾으니 질소균을 고정하는 뿌리혹이었다. 질소는 식물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하다. 스스로 질소 고정을 못 하는 다른 식물 입장에서는 질소를 공급하는 토끼풀이 꼭 필요한 친구인 셈이다. 농부에게 그런 사연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몰랐지만 척박한 땅에는 먼저 토끼풀을 심으라고 어른들이 얘기한 것이 기억난다고 했다. 땅에 토끼풀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니 토끼풀이 귀하게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잡초는 자기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자연에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닐까?

무엇보다 잡초를 이해하니까 잡초에 대한 적개심이 없어졌다. 이제는 길에 보이는 잡초를 뽑지도 않는다. 어떤 꽃이 피었는지 살피기도 하고, 시멘트로 꼭꼭 눌러도 틈으로 풀이 자라 나오는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땅이라는 생각도 든다.

잡초 때문에 느낀 것들이 있다. 고정관념이나 여론에 사로잡혀 사물이나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대상을 천천히 관찰하고 최종 판단은 나중에 하자.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자. 모든 사람이 해롭다고 생각해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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