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 전 아들로부터 TV 시청을 권유받았다. 종편 TV에서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일전에도 한번 시청했던 기억이 있던 프로그램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면 상금을 지급하는 매우 단출한 포맷이다. 퀴즈 정답의 성공 여부보다 출연자의 소소한 개인사에 관한 그들만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펼쳐주는 삶의 모습은 지나치게 무겁지도 또 그리 가볍지도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시청을 권유한 그날의 프로그램 주제는 '이거 내가 만들었어'였다.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인기를 구가하는 발명품에 관한 이야기다. 현업이 변리사인지라 마땅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 발명 이야기는 노면 색상 유도선이다.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해줘도 초행길 운전 중 갈림길에서 순간 망설여 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목적지에 따라 그저 분홍선과 초록선을 따라 주행만 하면 될 뿐이니 편리함이 아주 그만이다.
선 하나로 교통사고를 50%나 감소시켰다고 하니 실로 그 효과가 대단하다. 반면 효과에 비해 기술사상은 지극히 간단하다. 만일 발명자가 특허출원을 했다면 등록요건 소위 진보성을 인정받아 손쉽게 등록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다. 이처럼 유익한 발명은 기술의 난이도보다 관심과 열정의 산물이다.
두 번째 발명품은 움직이는 토끼모자이다. 변리사 입장에서 가장 특허등록을 추진하기 용이한 발명이다. 기술사상이 명료하고 기구적 구조에 관한 내용인지라 발명의 성립성 또한 명확해 공지된 유사 기술만 존재하지 않는다면 등록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발명이다.
미국의 최대 유통회사로부터 100억원 상당의 물량 공급을 의뢰받았으나 제작 능력이 부족해 주변 공장을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본 발명품으로 5천만원 정도의 수입만을 올렸다고 하니 시청 내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발명의 대가치고 부족함이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양념치킨 조리법을 개발한 발명자이다. 노년의 신사인 발명자는 인터뷰 내내 지난했던 양념 개발 과정을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 놓았다. 직접 창업한 회사명과 제품명도 귀에 익숙하였으니 사업화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던 듯하다.
프라이드 치킨으로 유명한 미국의 글로벌 기업까지는 아니었어도 적어도 국내에서는 양념치킨의 지존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것이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임직원들이 독립해 다수의 새로운 양념치킨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니 가히 원조임에 틀림이 없다.
해당 프로그램이 주인공들을 특별히 초대한 이유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공전의 히트 상품을 개발한 주인공들이니 응당 상당한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프로그램의 반전이었다. 주인공 모두 특허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위 독점권이 없었으니 법적으로 시장의 선두 주자를 유지할 수 없었다.
후발 주자라도 자본력이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으니 소기업 수준의 주인공들은 그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명예 이상의 대가는 얻지 못했던 듯하다. 방송 후기를 찾아보니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사실에 대한 안타까운 댓글이 대부분이다. 필자 역시 내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런데 '지식 독점에 반대한다'(Against Intellectual Monopoly)의 저자인 미셸 볼드린과 데이비드 러바인 워싱턴대학 교수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전했을까.
양념치킨에 독점권이 부여되지 않았기에 다양한 입맛의 양념치킨이 시장에 선을 보일 수 있었고, 토끼모자에 특허권이 없었기에 저렴한 제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고 하지 않을까. 또한 노면 색상 유도선에 특허권이 존재했다면 제한적 활용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감소했을 것이라고 항변했으리라.
지식재산권의 적극적 활용과 제한적 적용은 항상 논쟁의 화두이다. 혁신에 대한 보상으로 출발하여 순기능적 역할이 돋보였던 특허권은 이제 독점과 공유라는 이념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결국 지식재산권은 누구나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는 사안이기에 관련 제도의 변화를 항상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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