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파일럿(pilot, 시험) 콘텐츠로 '음악 읽어주는 남자'를 연재합니다. 대중가요가 굴곡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내지는 우리의 일상을 어찌 다독여줬는지 주목합니다. 이제는 사라진 매일신문 주간지 '주간매일'에 2014년 연재한 '음반 읽어주는 남자'를 '음악 읽어주는 남자'로 명칭을 바꿔 게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줄임말이 '음읽남'인 것은 똑같습니다.
(1편에서 계속)
▶고양이 노래가 TV, 라디오, 공연장, 레코드 가게(당시 록 밴드 앨범으로는 경이적인 10만장 판매)를 휩쓸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2002년인데요. 대한민국 고양이 노래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기념할 곡은 바로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2002, Made In Korea)입니다. 대중가요 역사 속 고양이 노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곡일 것입니다.
이 곡은 앞서 고양이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쾌활한 낭만의 서사를 썼습니다. 모험을 떠나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한 편의 드라마틱한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면서, 현대인의 고단한 일상을 고양이의 삶에 비유해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내 두 눈 밤이면 별이 되지. 나의 집은 뒷골목 달과 별이 뜨지요.
두 번 다신 생선가게 털지 않아. 서럽게 울던 날들 나는 외톨이라네.
이젠 바다로 떠날 거예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그런데 이후 주류가 된 고양이 노래의 분위기는 흥행을 검증 받은 낭만고양이 류가 아니라서 주목됩니다. 낭만고양이와 같은 해에 발표된 가수 '서영은'의 '고양이'(2002, Kiss Of Breeze)는 무척 밝고 따스하고 여유롭다 못해 늘어지는 곡입니다. 이후 인디음악씬을 중심으로 발랄한 고양이 찬가들이 잇따르는데요. 그 출발점쯤에 있습니다.
이 곡에서 고양이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입니다.(=이 곡에서 고양이에 비유한 상대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보입니다.) 과거 대중문화 속에서 고양이에게 으레 주어졌던 도도한, 앙칼진, 털이 바짝 선 모습이나 도둑고양이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던 불량한 이미지는 찾기 힘들죠.
'뽀얗게 드러난 어깨를 따라서 달빛이 흐르네. 그대는 마치 리본을 목에 단 고양이 마냥 내게 안겨. 무슨일 있나요. 수척해보여. 슬슬 일어나 나갈까요. 밤공기가 싸늘하긴 하지만 괜찮아요. 어디가서 커피할래요.'

▶그러는 한편, 노랫말에서 고양이라는 단어는커녕 고양이와 연관된 요소를 도무지 찾기 힘든 고양이 노래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사만 읽어보면 굳이 고양이라는 제목을 달지 않아도 될 법한. 모던록 밴드 '넬'의 '고양이'(2003, Let It Rain)가 대표적입니다.
이런 게 아닐까요. 고양이를 이야기의 소재로 쓰기 보다는 하나의 이미지로 가져다 쓴 것이죠. 이 역시 다양한 스타일로 분화한 고양이 노래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내가 너는 너무 싫다고,
아무 표정 없는 내게 한 번 웃어 보라고'
'그렇게 넌 그렇게 넌 나를 더 가둬두려. 내가 어떡해야 되는 건데. 울지 못해 웃는 건 이제 싫은데. 한번쯤은 편히 울어 볼 수 있게. 내가 비가 될 수 있음 좋을 텐데.'
제목이 고양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거듭 읽으니 제법 고양이가 연상됩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양이의 표정, 움직임, 생활을 탐구하는 노랫말을 담은 고양이 노래 역시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소규모 아카시아밴드'의 '고양이 소야곡'(2006, 입술이 달빛)은 고양이 특유의 행동 중 하나인 꾹꾹이(등을 아치모양으로 굽힌 채 앞발을 번갈아 가며 리듬감 있게 어떤 대상을 누르는 행동, 출처: 다시 쓰는 고양이 사전)를 실제 고양이 또는 연인의 모습에 비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양이다운 고양이다운 꾹꾹꾹.'
'창가에서 달을 보고선 뭐가 그리 기쁜 것일까. 내게 안겨 고개를 묻고 향에 취해 잠이 드는 너.'
'내게 안겨 편히 잠들던 고양이는 보이지 않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달 옆에 작은 새로운 별 웃고 있네.'

▶고양이에 대한 높아진 관심은 결국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컴필레이션 앨범 발표까지 이끌어냅니다. '민트페이퍼 프로젝트 - 고양이 이야기'(2007)입니다.
'토이(유희열)' '스위트피' '허밍 어반 스테레오' '에스피오네' '뎁' '캐스커' 등 14팀의 뮤지션이 참여한 이 앨범은 '강아지 이야기'와 함께 발매됐습니다. 즉, 두 앨범은 반려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사실도 보여줍니다.
앨범을 기획한 민트페이퍼의 소개 글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고양이 노래~고양이~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잘 정리한 하나의 선언으로도 들립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외로움을 채워줄 소모품 정도로 쉽게 치부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함께 있는 동반자가 그들이 가진 전부일 수도 있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상상 저 너머의 것들을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중략) 애완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김민기' 선생님의 '백구'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였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삶의 동반자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지만 늘 우리 보다 짧은 삶을 보낼 수밖에 없는 착한 그 녀석들에게 이젠 음악이라는 추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사실 2000년대 들어 고양이 노래는 인디 뮤지션들의 전유물이 돼 버린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건 필연이었지 않을까요. 인간의 사랑 또는 이별을 신파의 문법으로 동어반복해야만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오버그라운드의 아이돌 그룹 및 발라드 가수들과 달리, 인디 뮤지션들은 잔잔한 일상부터 파격적 공상까지 보다 넓고 다양한 맥락의 서사를 쓸 수 있었고, 고양이 서사도 그 중 하나였달까요.
물론 오버그라운드에 고양이 노래가 전무했던 것은 아닙니다. 걸그룹들이 꽤 불렀습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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