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관운이 좋기로 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1972년 세상에 나온 유신헌법은 그의 출세길의 출발점이었다. 유신헌법 제정자로 알려진 한태연 전 헌법학회장이 훗날 "신직수·김기춘이 초안을 만들었다"고 밝힌 것에서도 그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유신헌법에 이어 1974년 '문세광 수사'로 고속 승진을 시작한 그는 이후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거쳐 15대 국회 이후 3선 의원을 지냈다.
하지만 2013년 8월, 73세의 나이에 마주한 역대 최고령 대통령비서실장 낙점은 그 좋던 관운이 오히려 그를 나락으로 몰아넣는 수렁이 됐다. 청와대에 입성하자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은 "섬뜩한 공안정국 조성용 인사"라고 평가했다.
그는 1년 6개월 남짓 비서실장직에 있으면서 '기춘대원군' '왕실장'으로 불렸지만 정치 상황이 촛불 정국으로 바뀌면서 이내 추락하고 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특검 수사를 받고 구속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보수단체 지원 혐의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줄줄이 문제가 되면서 '법마'(法魔)라는 오명과 함께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수의를 입고 재판정에 나서는 그의 초라한 말년의 모습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요즘 일본 정가가 블랙리스트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신임 스가 정권이 일본학술회의 신규 회원 6명의 임명을 거부한 것이 발단이다. 각 분야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마치 썩은 사과 도려내듯 배제한 것은 "정치적 잣대로 학문의 자유마저 재단하는 도전 행위"라며 각계의 비판 목소리가 거세다.
1949년 발족한 일본학술회의(SCJ)는 '과학이 국가의 모토'라는 정신으로 생명과학, 물리·공학 전 분야의 과학자 84만 명을 대표하는 정부 자문기관이다. 현재 210명이 회원으로 있는데 스가 정부가 지난달 105명의 회원을 새로 임명하면서 6명의 과학자를 제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임명이 거부된 이들은 아베 정권 때 안보보장법이나 공모죄법 제정에 반대한 것으로 드러나 '일본판 블랙리스트' '아베-스가(安菅) 리스트 파동'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이번 사건은 아베를 추종하는 스가 정권의 정체성을 보여준 동시에 '극우의 사상 테러'로 일본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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