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20 세상 읽기] 나훈아 vs 조르바 vs 이백

셋의 공통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
나훈아 “꿈이 고갈돼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노라”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 3인방.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 3인방.

'역대급' 화제를 남겨놓고 그는 사라졌다. 10여년 만에 홀연히 나타나 온 국민 마음을 설레게 해놓고 또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래도 유튜브에서는 온 종일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30여년 전 흑발의 젊은 얼굴이 낯선듯 반갑다.

나훈아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다소 격하게 생긴 모습도 그렇고, 이빨을 드러내는 특유의 웃음은 느끼했다. 비음 섞인 꺾기 창법도 촌스럽게 여겨졌다. 차라리 남진의 '새카만 눈동자의 아가씨~' 같은 경쾌한 노래에 더 끌렸다.

그런데 지난 추석, 주변에서 하도 들썩거리길래 재방송을 봤다. 어느새 머리에 하얗게 서리내린 70대의 나훈아가 혼신을 다해 노래 부르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 참…. 10여년의 세월을 건너뛰었음에도 오히려 더 멋스러워진 예인(藝人)에게 나는 그만 속절없이 빨려들어갔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자연의 섭리를 잊은 성대였다. 목소리는 탱글탱글했고, 노래는 누군가의 표현처럼 오케스트라 같았다. 한결 인자해진 눈빛에서는 녹록잖은 세월의 이끼가 느껴졌다.

세상 명리(名利)에 그다지 얽매이지 않는 듯한 모습도 보기 좋았다. 비상하는 독수리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빙그르르 춤추는 장면은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우연히 만난 막노동꾼 조르바에게 호감을 느낀 '나'는 갈탄 광산이 있는 크레타섬에 함께 가서 인부들을 감독해 달라고 부탁한다. "저녁이면 다리를 뻗고 앉아 먹고 마십시다. 그때 당신은 산투르를 켜도 좋고요." 그러자 조르바는 이렇게 답한다. "일은 당신이 바라는대로 하지요. 하지만 산투르는 좀 다른 문제요. ~만일 당신이 나한테 연주를 강요하면 그땐 끝장이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걸 인정해야 한다 이말이오" "인간이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유라는 거요" (『그리스인 조르바』 중)

무대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받는게 싫어 북한 공연을 거부한 나훈아에게 조르바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꿈이 고갈돼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노라"고 나훈아는 말했다. 당(唐)나라의 방랑시인 이백(李白: 701~762)을 떠올리게 했다.

방랑 시인 이백
방랑 시인 이백

이백은 평생 방랑벽이 있었다. 아버지가 서역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해 부유하게 자랐지만 공상(工商) 계층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규정이 이백의 관직 진출 꿈을 앗아가 버렸다. 호탕한 기질에 그 울울한 기분을 참기 어려웠을 것 같다. 20대초에 집을 나와 산에 들어가 한동안 도가적 삶을 살기도 하다가 장강(長江)을 따라 각처를 유람했다. 협객·도사 등과 조우했고, 시인 맹호연도 여행길에서 만났다. 술잔을 나누고 시를 읊으며 훨훨 살았다. 돈 아까운줄 모른탓에 무일푼이 됐지만 방랑생활은 이백의 시야를 확 트이게 해주었다.

가정도 꾸렸지만 수시로 방랑벽이 도졌다. 42세때 현종의 부름을 받아 미관말직의 궁정 시인이 됐지만 늘상 저잣거리 주막에서 고주망태로 발견되곤 했다. 고관이자 시인 하지장(賀知章: 659~744)이 '적선인(謫仙人: 천상에서 귀양온 선인)'이란 별칭을 붙여주었듯 이백은 관행이나 권위에 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

그러다 결국 현종의 명으로 지어올린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시의 한 구절이 문제가 돼 궁에서 쫓겨났다. 관직생활 2년도 채 안된 때였다.

다시 오랜 방랑에 나선 이백은 그 무렵 뜻을 펼 길 없어 역시 방랑길에 올랐던 두보(杜甫: 712~770)와 조우해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정치적 풍랑에 휩쓸려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친구들의 구명 덕분에 유배가던 도중 사면되는 등 시련도 겪었다.

나훈아의 추석 특별방송 공연 중 한 말을 칠판에 써놓은 한 회사원. 책임 크레텍 제공
나훈아의 추석 특별방송 공연 중 한 말을 칠판에 써놓은 한 회사원. 책임 크레텍 제공
언론인 전경옥
언론인 전경옥

나훈아는 "꿈이 고갈돼서 11년간 세상을 여행했다"고 털어놓았다. 평생을 방랑했던 이백! 유달리 사랑했던 술과 달과 시로도 채울 수 없었던, 그 어떤 꿈을 찾아 헤맸던걸까. 두 사람 모두 보헤미안적 분위기가 닮았다.

"어떤 가수로 남고 싶은지?" 담당 PD의 물음에 나훈아의 답이 긴 여운을 남긴다. "난 흘러가는 노래 유행가를 부르는 가수, 뭘로 남는다는 말 자체가 웃기는 얘기요. 그런거 묻지마소"

이리저리 둘러봐도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시절이다. 권력 앞에서 바짝 오그라들거나 비겁해지는 사람들만 버글거린다. 코로나로 지친 국민의 등을 따스하게 다독여주는 '유행가 가수' 나훈아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전경옥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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