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책 이사를 했다. 대구시내 범어동에 위치한 내 개인연구소인 '문화분권연구소'의 책을 의성 단촌 시골집으로 옮겼다. 연구소는 지하에 마흔 평 정도의 크기인데, 이곳에서 나는 문화의 중앙집중을 타개할 '문화분권' 이론을 고민하기도 하고, 가끔은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던 다용도 공간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 가운데 가장 큰 기능은 내 개인 장서를 보관하는 책 창고 역할이었다.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가 넓지 않아서 책을 두기에 마땅치가 않았다.
이삿짐센터를 찾았더니, 책 이사라고 업체들이 회피하는 바람에 예상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나는 이번에 이사하면서 난생처음으로 책을 버렸다. 주로 시기가 지난 과월호 잡지와 오래된 낡은 책을 버렸는데도 아까워서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버린 게 1천여 권 가까이 됐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던 1970년대 말경부터였다. 점심을 굶고 라면값을 아껴 가면서 악착같이 책을 사 모았다. 물론 장서 수집가들처럼 희귀본이나 고서적을 산 것은 아니다. 그냥 그때그때 독서인들의 읽을거리로 출판되던 문·사·철 중심의 양서와 잡지 종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겸해 시골집에서 빈둥거릴 때 당시 아래채 내 방에 붙여 놓았던 금언 비슷한 글귀가 '무릎이 썩는 독서'였다. 아마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어느 문장에 나오는 구절로 생각되는데 어린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았던가 보다. 그 후 다산 정약용의 '과골삼천'(踝骨三穿)이란 구절도 알게 됐다. 다산이 꿇어앉아 하도 책을 많이 읽어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났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있었는가 보다. 하기야 그랬으니 연암도 있고, 다산도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가 자신의 재산목록 1호인 수천 권의 책을 이사하기 위해 짐을 꾸릴 때 무겁고 두꺼운 책을 들고 무상무념에 젖어 들다가 책의 먼지를 털고 좀이 슬까 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자기 자식들이나 다른 젊은이들이 봐야 할 텐데라며 탄식하는 1931년도에 쓴 글이 기억난다. 책 읽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뭉클한 장면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종이책보다 영상·문자가 더 유력한 세월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종이책 독서가 무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020년 올 한 해는 전 세계가 재앙 상태에 빠져들었다. 국내에서는 연일 확진자가 1천 명을 오르내리면서 사회 전체가 좌불안석 얼어붙고 있다. 조만간 백신 개발을 통해 이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인류는 물질적, 정신적 후유증에서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를 기준으로 인류사가 나뉘어질 것이라고 예단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도 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한 집합금지와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규제로 사람들이 외출하거나 집단으로 모여서 하는 행사 대신에 집 안에 머물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욕망의 자제와 같은 가치가 갖는 미덕을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물론 독서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올해 7~9월 3개월간 책 판매량이 49%나 늘어났다고 한다. 외출 대신 방안에서 책 읽는 인구가 늘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행사 로고가 새겨진 깃발을 앞세우고 추리닝을 입고 목에 호각을 걸고 미친 듯이 단체로 전 세계를 순례하던 금세기 여행 문화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세계적 대확산에 기여했다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책과 독서가 코로나19와 인간들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백신이라는 사실도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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