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명이 넘는 바이올리스트들이 하나가 된 것처럼 활을 움직이고, 현악기와 관악기가 풍성한 색채감을 드러내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가는 것이 오케스트라의 묘미다. 이 환상적인 연주는 연주자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100명이 넘는 단원들을 이끄는 지휘자가 좌우한다.
이처럼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의 손에는 지휘자의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지휘봉'이 들려 있다.
지휘봉은 각양각색이다. 사용 여부를 비롯해 길이와 재질도 모두 지휘자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휘봉은 가늘고 기다란 막대 부분인 케인(cane)과 손잡이 부분인 핸들로 이뤄져 있다. 나무, 탄소섬유,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케인 끝에 알루미늄이나 코르크로 된 핸들을 더한다. 지휘자에 따라 길이부터 재질, 굵기도 다양하다. 지휘자 정명훈은 올리브 나무의 나뭇가지로 직접 지휘봉을 만들어 사용한다. 자신에게 맞는 무게와 균형감을 지닌 지휘봉을 갖기 위해서다.
이런 모양의 지휘봉은 19세기가 되어서야 등장했다. 이전에는 작곡가가 악보를 둘둘 말아 박자를 세는 경우가 많았다. 17세기에는 긴 막대기로 바닥을 내리치며 박자를 맞췄고, 18세기에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바이올린 활로 지휘하기도 했다.
대다수 지휘자들은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들지만 왼손으로 지휘봉을 잡는 왼손잡이 지휘자도 드물게 있다. 어떤 지휘자는 지휘봉을 과감히 버리고 맨손만 사용하는 이도 있고, 곡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지휘봉과 맨손 지휘를 섞어 쓰는 지휘자도 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맨손 지휘', '이쑤시개 지휘'로 유명하다. 그는 음악적 표현을 섬세하고 자유롭게 하기 위해 주로 손가락으로 지휘했다. 특정 악기군에 좀 더 정확히 지시해야 할 경우엔 이쑤시개처럼 생긴 길이 10㎝의 '초미니 지휘봉'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 밖에 쿠르트 마주어는 교통사고로 새끼손가락을 다친 뒤부터는 지휘봉 없이 맨손 지휘를 했다. 구스타보 두다멜 역시 평소 지휘봉을 사용하지만 춤곡을 지휘할 때는 맨손으로 지휘했다.
관객은 지휘자의 극적이고 격렬한 제스처를 보고싶어하기도 하지만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환상적인 선율에 가장 크게 감동한다. 어떤 지휘봉을 쓰고 어떤 포즈로 지휘대에 서는 것보다는 연주자를 잘 이끌어 훌륭한 연주를 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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