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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마에스트로!”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2016년 11월에 쇼스타코비치 재단으로부터 필자의 두 번째 오페라인 '춘향'을 파리에서 공연하자는 제안을 받고 파리의 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Garde républicaine Orchestra)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방문은 러시아의 대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미망인인 이리나 쇼스타코비치 여사의 추천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특히 이 일정은 세계적인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엘레나 바실리에바와 바리톤 김보람 선생과 함께한 방문이었다. 지금은 친구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엘레나와 필자는 독일어로 서로 존칭을 쓰면서 대화하던 사이였다. 그녀와 오케스트라 관계자는 항상 필자를 "마에스트로"라 부르며 깍듯한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그 호칭이 한국적 정서상 그리 편하지 않았다.

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와 업무를 마친 후 점심식사 자리에서 필자는 엘레나에게 "서로 이름(First Name)을 부르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그녀는 필자가 당황할 정도로 정색을 하며 "마에스트로, 나는 한 사람의 성악가일 뿐인데 어떻게 오페라를 작곡한 마에스트로에게 존칭을 쓰지 않을 수 있느냐"며 거절하였다.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은 서구 사회에서 최고의 존칭이며, '예술가는 만인의 지도자'라는 인식을 포함하고 있는 호칭으로 통한다. 그만큼 예술가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문화 선진국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였다.

결국 필자가 "내가 불편하고, 진심으로 당신과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고 허심탄회하게 권하고서야, 하루가 지난 뒤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며, 현재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작곡가인 그녀의 남편 알렉산더 라스카토프(현재 파리의 쇼스타코비치 재단 대표이며, 개인적으로 '사샤'라고 부른다)와도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지난 2019년 11월에는 그 내외와 서울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포함한 3인 작품발표회를 가졌고, 현재는 사샤와 공동작품을 진행하고 있다.

그 당시 공화국 수비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오페라 '춘향'을 우리말 원전대로 파리와 마시(Massy)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도록 계약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탄핵정국과 정권교체, 지난해 터진 코로나 사태 등으로 미뤄진 채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이 프로젝트는 유효하며 성공적 개최를 서로 기다리고 있다.

"마에스트로!"라는 존칭의 힘은 참으로 대단했다. 그 후에도 작품으로 서로를 인정한 관계로 친구로서 서로를 믿고 같이 일구어가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로나가 끝이 나면 쇼스타코비치 재단과의 합작 행사가 대구에서 이루어질 것이 이미 약속되어 있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이리나 여사도 대구를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철우 대구콘서트하우스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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