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계신곳에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날씨도 좋고 예쁜공원처럼 잘 정리되어 있어서 나들이 나온 것 마냥 마음 무겁지 않게 다녀왔다. 가을해가 납골당 대리석을 반짝반짝 비춰서 만져보니 따뜻한 온기가 나의 외할머니 온기 같아서 울컥했다.
돌아가신지 벌써 오래되셨는데 순간 할머니 생각에 가슴에 저릿한 소름이 돋았다. 흰머리 성큼 와 있는 오십 줄에 들어선 내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까무룩 10대 때로 돌아가 할머니를 추억하며 웃었다 울었다 했다.
나의 외가댁은 강화도에 있었다. 서울에서도 강화도 외가댁에 가려면 시외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양철지붕의 흙벽인 바닷가 시골집인 외갓집은 머리가 닿을 듯 천장도 낮았다.
외할머니는 황해도 해주에 사시다가 6·25 전쟁 때 배를 타고 남한으로 피난을 오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정착한 곳이 강화도다.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고향을 떠나 낯설고 물설은 곳에서 어떻게 버티셨을까 가슴이 아리기도 한다.
어린시절 겨울방학 때 외갓집에 가면 외할머니는 "야야, 춥다, 춥다"하시며 이불을 어깨 위로 당겨 꾹꾹 눌러주셨고 윗목에는 요강단지를 항상 놓아주셨다. 항상 달력 종이를 펴 놓고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신 뒤 비녀를 꽂은 모습, 커다란 배터리를 검정 고무줄로 칭칭 감은 라디오를 즐겨 들으시던 모습, 분홍색 털 스웨터에 버선 고무신 신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하나하나 꼽아보고 있노라니 보고 싶은 그리움이 훅 밀려왔다.
외갓집에서는 맛있는 것도 참 많이 먹었다. 이른 봄에 가게 되면 첫물 상추에 주셨던 보리밥이 맛있었다. 또 물 말은 밥 위에 강화도 명물이라는 망둥어와 조기를 얹어주시던 기억도 생생하다.
중학교 때 혼자 외갓집에 갈 때면 낮은 천장을 보며 누운 채 외할머니가 가마솥에 삶아 놓은 고구마를 먹고 있노라면 둘째인 탓에 이리저리 치여 항상 뚱해 있었던 사춘기의 마음을 위로받곤 했다. 외갓집 앞은 바로 바닷가였다. 커다란 상수리나무들 아래 서서 물 빠진 갯벌에서 바람이 불면 손바닥만한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보며 어린 사춘기였던 나는 왠지 모를 눈물을 툭 떨구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외할머니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주름 잔뜩 진 손으로 뭐라도 내어주시는 분이었다. 배움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내 기억속에는 참 '어른'이셨다.
외할머니가 연로해지시면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모시게 됐을 때 난 그 때 제일 외할머니를 오래 봤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의 혈육은 외동딸인 나의 어머니 뿐이었는데 하필 아버지가 암에 걸리셔서 아버지를 돌봐야 했기에 외할머니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난 기꺼이 외할머니의 병간호를 맡았다.
아무리 외할머니의 마지막 며칠을 함께 보냈지만 어리석은 이 손녀딸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았어야 했는데…. 할머니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드렸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할 때가 많다. 1년에 딱 하루라도 다시 만나볼 수만 있다면…. 외할머니를 추억하고 외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부족했음을 후회하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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