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의 부모님 고 김연수(아버지)·고 이미자(어머니) 씨

"두 자식 남편 보내고 고달픈 삶, 손자 생기자 환한 미소 되찾으셨는데…"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의 어머니 고 이미자 씨가 생전에 손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김동영 여행스케치 대표의 어머니 고 이미자 씨가 생전에 손자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가족 제공.

어머니는 '내 땅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다'는 경산 진량벌 부호의 8남매 막내딸로 태어났다.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오냐오냐하며 응석받이로 자랐다고 하셨다. 농번기가 되면 수십명에 달하는 식솔들을 거느리며 뒷치닥거리를 해주는 유모들의 보살핌 속에 물튕기며 자랐다고 하셨다.

어느날, 어른들이 미리 맺어놓은 인연이 있었던 탓에 나의 아버지를 만났고 순식간에 혼례를 치르셨다. 신혼 생활도 잠시, 그 남편은 6.25전쟁터에 끌려나가 오른쪽 다리를 잃은 상이군인으로 처참하게 돌아왔다. 놀란 가슴에 울며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몇번이나 도망쳤지만 '죽어서 그 집의 귀신이 되라'는 어른들의 단호함에 눈물많은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누나가 태어나고 내가 태어났다. 또 두 살 터울로 여동생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리 한 쪽을 잃은 울분을 술과 노름에 의지하며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막내를 들쳐업고 허드렛일을 해가며 근근히 생계를 꾸려나갔다.

1960년대 말, 딱히 놀거리가 없던 아이들은 열차 선로를 놀이터삼아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어귀에 열차가 멈춰섰다. 누군가 소리쳤다. "아이가 열차에 치였어!" 그렇게 나의 동생은 주검이 되었고 어머니는 눈물이 마를 날 없이 목놓아 울었다. 누나와 나도 따라 울었다.

세월이 지나 내가 가장 사랑했던 누나가 새색시가 되었다. 아리따움도 잠시, 누나는 급성 임신중독증으로 새 생명을 채 잉태하지도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거의 실성한 사람이 되었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가야 했기에 어머니는 하나 남은 나만을 바라보며 척박한 삶을 이어갔다.

또 수 년이 지나 한많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대전 현충원 묘비앞에서 어머니는 주마등같은 회한의 눈물을 훔쳤다. 두 자식을 앞세우고 남편을 보내고, 삶은 고달팠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손자가 생기자 어머니는 다시금 환한 미소로 돌아왔다.

십 수년동안 새벽이면 정갈하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하나뿐인 아들과 세 손자를 위해서 두손을 모았다. 그리곤 늘상 입버릇처럼 되뇌이곤 하다. "자는 잠결에 조용히 생을 마감했으면…." 코로나19가 기승을 피우던 작년 이맘때 정말이지 꿈인듯 어머니는 다른 지병으로 병원 문턱을 들어서신지 하루만에 세상을 달리하셨다. 평화로운 모습으로 마치 웃는 듯 마무리하셨다.

다시 대전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살아생전 아웅다웅하던 아버지옆에 "배위(賠位) 이미자"의 이름이 또렷이 새겨졌다. 가수 이미자보다 5년이나 언니뻘이 되지만 노래는 그 분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신 듯했다. 1주기가 되는 지난달 다시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이제는 모든것을 내려놓으시고 아버지와도 토닥토닥 재미지게 지내시라고 소원드렸다. 그리곤, 그렇게 애지중지했던 손자들의 앞날을 하늘에서 지켜주시라고 기원드렸다. 현충원 아버지 어머니 비석을 두손으로 감싸드렸다. 다시금 환한 미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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