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오프닝 2023’, 다채로운 단막극만의 매력

tvN×티빙 프로젝트 ‘O’PENing(오프닝) 2023’ 다양성에 완성도까지

tvN×티빙 프로젝트 'O'PENing(오프닝) 2023' 포스터. tvN 제공
tvN×티빙 프로젝트 'O'PENing(오프닝) 2023' 포스터. tvN 제공

매일 같은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단막극은 어떤 의미일까. tvN×티빙 프로젝트 'O'PENing(오프닝) 2023'은 그저 신인들의 등용문 정도로 인식되던 단막극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만든다. 다양성은 물론이고 완성도까지 단막극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서다.

◆이순재의 '산책', 단막극이어서 가능한 감동

항상 내 옆에서 함께 걸어왔던 누군가의 존재감은 그가 부재할 때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오프닝 2023'이 내놓은 두 번째 작품 '산책'은 갑작스레 사별한 아내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힘든 차순재(이순재)가 아내가 생전에 뜬장에서 구조해 집으로 데려와 키웠던 반려견 순둥이와 함께 지내면서 그 빈자리를 채우고 나아가 아름다운 이별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렸다. 처음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 집밖 마당에서 지내던 순둥이와 함께 산책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순재는 자꾸만 생전의 아내와 함께 지냈던 일들을 떠올리고 함께 걸었던 길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이 들고 병든 노견인 순둥이에게서 아내를 보기도 하고, 때론 자신과의 동질감을 찾아내기도 한다. 생전에 아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주지 못한 부채감은 순둥이에 대한 더 강한 애착으로 이어진다.

1시간 10분 남짓의 짧은 단막극이고 순재가 순둥이와 산책을 다니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서사구조를 가진 작품이지만, 이 압축적인 서사에 겹쳐지는 풍경들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우리네 삶의 단면을 '반려'라는 키워드로 포착해낸다. 어려서는 아픈 아들을 업고 맨발인 줄도 모르고 뛰던 순재는 이제 나이 들어 그 아들의 등에 업히게 됐고, 아내와 함께 투덜대면서도 걷던 산책길을 이제 순재는 순둥이와 걷고 순둥이마저 먼저 떠나게 되자 이제는 손자와 함께 걷는다. 자식들이 다 떠나가 반려견과 함께 보내는 현재의 노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반려'의 현실을 담고 있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부모의 끝없는 사랑을 감동적으로 또 긍정적으로 담는다. 보고나면 고향의 부모님에게 전화하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작품이다.

'산책'을 보면 어째서 단막극이 그 고유의 가치를 갖는가를 긍정하게 된다. 미니시리즈로는 그리 길지 않은 호흡의 이야기인데다, 다채로운 서사보다는 묵직한 삶의 단면을 포착해내는 '산책'은 단막극이 갖는 형식적 틀에 가장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단막극이 그리 주목받고 있는 형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드라마 신인 발굴의 차원에서 매해 제작방영되고 있는 추세다. KBS '드라마스페셜'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매해 단막극 제작을 이어왔고, tvN과 티빙이 함께하는 '오프닝'과 JTBC의 '드라마 페스타'도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신인들의 등용문처럼 치부되는 경향은 여전한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산책'은 그것이 그저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얘기해주는 작품이다. 완성도도 높고 분명한 메시지와 재미까지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니까.

'산책' 스틸컷. tvN 제공
'산책' 스틸컷. tvN 제공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스틸컷. tvN 제공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스틸컷. tvN 제공

◆오펜(O'PEN)이 해온 시도와 '오프닝'이라는 결실

'산책' 같은 작품을 탄생시킨 오펜은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있는 신인작가 발굴 육성 시스템이다. CJ ENM이 만들어낸 이 시스템은 보다 실질적으로 공모전에서 뽑힌 창작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상암동 오펜 센터에 위치한 개인 집필실은 물론이고 창작 지원금 1천만 원을 제공받고 나아가 연출자, 작가의 멘토링은 물론이고 현장 취재, 비즈매칭까지 연결해 이들이 직업 작가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지금껏 '오펜 스토리텔러' 7기까지 총 199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오프닝'은 이런 과정을 거쳐 신인 작가들의 첫발을 내딛는 결실인 셈이다.

이번 '오프닝 2023'은 총 7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충한 작가의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천세은 작가의 '산책', 서현주 작가의 '여름 감기', 이가영 작가의 '우리가 못 만나는 이유 1가지', 박선영 작가의 '복숭아 누르지 마시오', 박연옥 작가의 '2시 15분', 정지현 작가의 '나를 쏘다'가 그 작품들이다. 7월 16일부터 매주 일요일 밤 한 작품씩 tvN에서 방영되는 '오프닝 2023'은 이미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산책'이 방영됐는데, 티빙에서는 이미 전 작품이 공개돼있어 몰아볼 수도 있다.

각 작품마다의 색깔이 확연히 달라 다양한 취향의 시청자들이 골라볼 수 있는 구성 또한 돋보인다. 예를 들어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 같은 작품은 중년의 쇼핑몰 사장 이수(고수)와 재수생 드림(아린)이 과외와 알바를 나누는 코믹한 일상극과 로드무비적인 색채를 가진 작품이다. 물론 이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의미를 묻는 묵직한 질문이 담겨 있지만, 접근 자체는 기분 좋은 건강함과 경쾌함이 특징이다.

반면 '여름 감기' 같은 작품은 대부업체에서 일하며 절망의 늪에 헤매던 차인주(엄지원)가 건강하고 밝은 남자 강진도(박지환)를 만나 겪게되는 감정의 파고를 마치 한 편의 누아르처럼 그린 작품이다. '여름 감기'라는 제목처럼 열병 같이 감정이 몰아치는 사랑이야기가 취향인 분들에게는 이만한 작품이 없다. 물론 삶의 비의를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바라보고픈 분들에게는 '산책' 같은 잔잔하지만 끝내 눈물을 참기 흔든 감동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추천한다.

'2시 15분' 스틸컷. tvN 제공
'2시 15분' 스틸컷. tvN 제공

◆대본만이 아닌 연출, 연기의 향연

작품은 대본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특히 신인들의 작품들은 혹여나 부족한 지점들을 채워주는 연출과 연기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이번 '오프닝 2023'은 캐스팅부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앞서 언급한 '산책'의 경우, 이순재의 아우라는 절대적이다. 노년의 쓸쓸함을 뒷모습만으로도 잡아내면서도 동시에 이순재 배우 특유의 톡톡 쏘는 츤데레적인 연기는 이 작품이 갖는 반전의 감동을 더 배가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여름 감기'의 엄지원과 박지환도 마찬가지다. 거친 삶을 표현해낸 엄지원과 착하고 성실한 순정을 보여준 박지환은 지금까지 해왔던 연기와는 완전히 상반된 역할에 도전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썸머, 러브머신 블루스'에서 '아모르 파티'에 맞춰 막춤을 추는 고수나 성인용품을 천연덕스럽게 소개하고 파는 오마이걸 아린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작품을 보는 맛을 높였다.

또 열 살 아이 현수(박소이)가 집안에 갇혀 있는 여섯 살 아이 민하(기소유)를 발견하고 조금씩 집밖으로 나오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2시 15분'에서는 최근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 출연해 차세대 아역 천재들로 꼽힌 박소이, 기소유의 연기가 돋보인다. 이처럼 새로운 도전을 아끼지 않는 연기자들 역시 단막극이 갖는 도전정신과 실험성과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 연기에는 이를 디렉팅하는 연출자의 공 또한 빠질 수 없다.

단막극. 한 때 지상파에서도 계속 이를 존속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던 형식이지만, 요즘처럼 OTT 등으로 다채널화된 환경 속에서 단막극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대중적이지 않아 신인 발굴 차원에서 시도되는 그런 형식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미학과 재미를 갖춘 형식이 바로 단막극이라는 것이다. '오프닝 2023'은 바로 그걸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하나하나의 단막극들이 짧지만 저마다 완결성 있게 내놓고 있는 이야기들은 보고난 후에도 꽤 긴 여운을 남겨주기에 충분할 게다. 때론 길게 늘여놓은 미니시리즈보다 더 긴 여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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