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주 건천탕 최석문 씨 "30년 넘게 목욕비 3천원 받는 이유는요…"

市로부터 '착한 가게' 선정 돼…90년대부터 한 번도 올리지 않아
"손님 모시면서 얻는 것 많아"…가격에 놀라 사진 찍고 가는 분도
"어르신들 위해서 올릴 생각 없어, 커피숍 위층에 문화강좌 생각 중"

"우리 가족들도 고생하는 데 가족 모두가 신문에 나왔으면 좋겠네요." 최석문(사진 왼쪽 아래) 건천탕 대표 가족이 접수부 앞에 모였다. 이화섭 기자.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며 가을 티를 내고 있다. 이때쯤 되면 목욕탕에 가서 뜨끈한 온탕에 몸을 지지려는 사람들이 슬슬 늘어난다. 하지만 요즘은 고물가시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9월 대구지역 목욕비는 평균 8천250원, 경북지역은 7천269원으로 조사됐다. 목욕도 만 원 한 장으로 해결하기 빠듯해졌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에 있는 '건천탕'은 경북지역 목욕비의 평균을 내려주는 '착한 가게'다. '건천탕'의 목욕비는 성인 3천원, 소인 2천원. '건천탕'을 운영하는 최석문(56) 대표는 이 곳의 3대 사장이다. 말 그대로 할아버지 때부터 운영해 온 목욕탕이라는 말이다. 목욕탕 가격 3천원도 90년대부터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최 대표는 젊은 시절에는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건천탕'을 물려받았다.

"대부분 건천읍 내의 단골손님들이 찾아오시지만 소문을 듣고 오시는 분도 있고, 가격을 보고 놀라서 사진 찍고 가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앞에서 '진짜 목욕탕에 가서 목욕해도 괜찮을까?'라는 눈빛을 보내는 손님은 "한 번 목욕하고 가세요"라고 권유하기도 하죠."

아무리 3천원을 받는다고 시설이 낡았거나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부는 최 대표가 "목욕하고 가시라"는 말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건넬 만큼 늘 깨끗한 상태로 유지한다. 3층에는 간단한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도 갖춰놓았다. 목욕탕 입구 옆에는 커피전문점이 있는데 아메리카노 3천원부터 시작하는 개인 커피전문점 치고는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을 모시고 있다.

"손님들의 눈이 참 무서운 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오시던 분들이 많고, 또 이 지역 손님들의 눈높이 또한 높기 때문에 이를 맞추려면 계속 시설을 조금씩이라도 좋게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3천원이 큰 돈은 아니라지만 결국 '자신의 돈'을 쓰시는 거잖아요. 당연히 어느 한 부분도 소홀할 수 없죠."

그렇다면 3천원으로 목욕탕 운영이 될까? '건천탕'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을 듯한 이 질문에 대해 최 대표는 웃으며 답했다.

"지금껏 3천원 받고도 잘 운영해 왔기 때문에 더 올릴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가족 모두 목욕탕을 소중한 장소로 여기는데다 검소하게 살아가면 목욕비 3천원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주시로부터 '착한 가게'로 선정된 뒤부터는 시로부터 물품부터 방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어 숨통이 조금은 트였기도 합니다."

'3천원만 받아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해서'라는 이유 외에도 최 대표가 목욕비를 더 올리지 않은 이유는 목욕탕을 찾는 어르신들 중 정말 목욕시설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서라고.

"살고 계시는 주택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목욕탕을 매일 오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 분들은 저희 '건천탕'을 집처럼 생각하고 오시죠. 만약 가격을 올리게 되면 그 분들이 씻는 횟수가 줄어들테고, 당연히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시겠죠. 덕분에 주변에서는 '최 대표 덕분에 경주 지역 어르신들 삶의 질도 높아지고 건강도 잘 유지하시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종종 합니다."

최 대표는 '건천탕'을 통해 받은 지역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여러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것들을 실현시켜가면서 주민들과 함께 '건천탕'을 운영하는 것이 그의 소박하지만 큰 꿈이다.

"지금 커피숍 공간 위층을 이용해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강좌를 작게나마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요. 또 가까운 시일 안에 '건천탕'을 찾아주신 손님들을 위한 '고객 감사 행사' 같은 이벤트도 열어볼까 합니다. 목욕비 3천원으로 손님들을 모시면서 인생에 얻은 것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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