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초가삼간 다 태우고 빈대 잡는’ 폐기물 대책

강선일 경북부 기자
강선일 경북부 기자

'초가삼간 다 태우고 빈대 잡는다(?)'란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올바르지만 경북 영천시의 폐기물 관리 대책을 보면 그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 곳곳에 남몰래 똬리를 튼 무허가 폐기물 업체와 불법 방치 폐기물에 대한 영천시의 안이하고 느슷한 대책으로 단속의 손길은커녕 환경오염은 물론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화재 등으로 인한 각종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천 일부 지역은 가동이 중단된 공장 부지 등을 악용해 대량의 폐기물을 적재한 후 잠적해 버리는 전국적인 불법 유통조직의 먹잇감이 되면서 거대한 폐기물 쓰레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지만 영천시는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뒷짐만 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지역에선 2019년부터 무허가 업체 등이 방치한 폐기물 야적장에서 매년 3~4회 이상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며 사회적 비용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발생해 3일 만에 완전 진화된 영천시 대창면의 한 폐전선 폐기물 현장의 대형 화재가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화재는 소방 당국 추산 6천900t(면적 2천300㎡×높이 3m) 규모의 폐전선 폐기물에서 치솟은 불길과 시커먼 연기가 30㎞ 이상 떨어진 대구 동구 아양교 부근에서도 관측될 정도였다.

무허가 업체가 불법 적재한 것으로 화재 진화에만 소방헬기와 고가차 등 장비 68대, 소방관 및 공무원 등 300여 명의 인력이 동원됐다. 업계에선 업체 대표 A씨가 폐기물량 반입으로 얻은 수입이 최소 5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영천시는 화재 발생 이전까지 이 업체의 불법 폐기물 적재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기에다 자연발화 또는 방화 여부 등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서 A씨는 행정처분 및 3천만원 정도의 과태료만 물고 폐업 처분하면 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의성의 '쓰레기산'과 함께 전국적 이슈가 된 영천시 북안·대창·고경면 일원에 적재돼 있던 3만t 규모의 불법 폐기물 처리 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영천시는 ▷허용 보관량의 6배로 추정되는 6천여t의 폐기물을 방치한 북안면 A업체 ▷불법 유통 조직이 공장 부지를 임차해 2만여t의 폐기물 쓰레기를 쌓아두고 잠적한 대창면 B공장 ▷10회에 걸친 행정처분 등에도 2천800t의 폐기물을 불법 방치한 고경면 C업체 등 3개 현장에 대해 행정대집행을 추진했다.

처리 비용에 30억원의 시민 혈세가 투입됐으나 영천시가 구상권 청구를 통해 회수한 금액은 A업체 기준 3억6천만원의 이행보증금이 고작이었다. 또 문제가 잠잠해지고 담당 공무원 등이 바뀌면서 후속 조치 여부는 확인조차 되지 않고 있다.

영천시에 등록된 폐기물 처리업체 수는 160여 개이고 수집·운반업체까지 포함하면 300개에 달한다. 업계에선 인허가가 필요 없는 소규모 업체와 무허가 업체를 더하면 4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영천시는 지난달 14일부터 드론 항공 촬영을 통해 불법으로 의심되는 폐기물 적치 현장에 대한 현황 파악과 폐기물관리법 위반 여부를 검토해 행정 조치 및 화재 예방에 선제 대응하기로 했다.

영천시의 이번 조치가 '뒷북 행정'이 아닌 초가삼간은 남기고 빈대만 잡는 효율적이고 신뢰감 있는 행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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