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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라언덕-채정민] 진짜 루저(real lo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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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민 체육팀장
채정민 체육팀장

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의 장'이다. 동·하계를 가리지 않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그렇게 말한다. 지구촌 사람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듯하다. '정치적 중립'이란 얘기도 늘 따라붙는다. 한데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은 '유독' 안 그래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탓이 크다.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됐다. '올림픽 휴전'도 이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올림픽 기간 선수와 관중이 안전하게 대회를 즐길 수 있게 한 조치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이 전통이 부활하는 듯했다. IOC가 제안, 말 그대로 '평화의 제전'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이 전통은 실현된 적이 없다. 특히 러시아는 이번을 포함해 4차례나 전통을 어겼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기간엔 조지아를 침공했다. 자국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 올림픽 때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때도 휴전을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도 우크라이나와 싸우고 있다.

지난해 말, 이번 올림픽 기간 휴전을 요청한 결의안이 유엔(UN)에서 공동 발의됐다. 하지만 포성은 지금도 들린다. IOC는 러시아의 국제 대회 참가를 막았다. 이번에 러시아 선수는 13명만 출전했다. 올림픽의 평화적 사명 등에 서약 후 '개인중립선수' 자격을 얻어 참가했다. 이들은 러시아 국기도 달 수 없다.

그럼에도 전쟁의 여파가 빙판으로 번졌다.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대표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가 훈련 때 쓴 헬멧이 문제. 헬멧에는 전사한 우크라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헤라스케비치는 "전쟁을 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며 대회 기간 이 헬멧을 계속 쓰겠다고 했다.

IOC가 제동을 걸었다.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올림픽 헌장 제50조에 위배된다는 게 이유. 그 대신 추모 완장을 차는 건 허락했다. 하지만 헤라스케비치는 절충안을 거부했다. 다른 나라 선수단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IOC는 12일 실격 처분을 내렸다. 화약 냄새가 '평화와 화합의 장'에까지 스며들었다.

논란은 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얘기다. 어디 안 끼는 데가 없다. 관심을 좋아한다지만 이 정도면 진짜 병이다. '관세 전쟁'으로 지구촌을 들쑤시더니 올림픽도 흔든다.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을 밀라노에 파견한다고 한 게 문제. 미국 조지아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과잉 단속해 갈등을 빚은 그 집단이다. 밀라노에선 연일 반대 시위 중이다.

반발은 미국 대표팀 내에서도 나왔다. 프리스타일 스키의 헌터 헤스가 시발점. 이민자 단속을 강화해 혼란이 가중된 것을 두고 "성조기를 달고 뛴다고 해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가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늘 그렇듯 악담으로 응수. 헤스를 응원하기 힘들 거라며 "진짜 패배자(Real Loser)"라 비난했다.

그래도 헤스가 외롭진 않아 보인다. 대표팀 동료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스노보드의 클로이 김은 "사랑과 연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낼 자유가 있다"고 했다. 알파인 스키의 미케일라 시프린은 넬슨 만델라의 말을 인용해 "포용의 가치, 다양성과 친절과 나눔의 가치를 대표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다. 평화와 화합을 거리낌없이 깨는 이들이 '진짜 루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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