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훈 작·연출의 2인극 <부재중 만남>(극단 너머,경계없는예술센터, 문래동 스페이스T)은 우진(목소리, 정일심)이 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된 뒤, 남자가 사는 부재중 원룸에서 만나게 된 극중인물 한예지(양현수 분)와 김서영(김현진 분)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삼각관계의 일탈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랑의 고백을 통해 짠하고 아프면서도 로고스적 인간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마주하는 사라져가는 사랑의 전류를 다시 채우고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재중 만남>은 비워져가는 진정한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연극이다.
▷부재(不在)의 공간 '사랑을 바라보는' 채워짐과 비워짐의 치유
무대는 회사원 우진이 살아가는 원룸 공간이다. 너저분한 옷가지와 살림도구, 한켠에는 침대가 놓여 있다. 극은 외국으로 출장을 떠나는 우진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그 소리를 따라 원룸에 놓여 있는 컴퓨터, 비밀번호 1207로 저장된 서류 파일을 찾기 위해 예지가 원룸에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파일은 우진만의 암호투성이이고, 우진을 백마 탄 왕자쯤으로 생각하는 예지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전화 수화기로 사랑을 고백하는 첫 장면부터 "더 크게, 더 크게"를 외치며 두 사람만의 애칭을 부르는 설렘까지, 첫사랑 같은 전류가 흐른다. 원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서영과 마주치면서, 우진이 없는 사이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시작된다.
파일 비밀번호가 서영의 생일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쯤, <부재중 만남>은 '삼각관계 이야기'로 비쳐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쿨하게 털어놓는 고백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의 현실론자처럼 보이는 서영과 여전히 운명적 사랑을 믿는 예지라는 두 인물을 통해 극은 진지해진다. 남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서영의 현실적 사랑론과, 4시 45분 운명적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예지의 대화는 "저럴 수 있을까?",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철없는 남자의 행동이라 단정하는 서영의 시선과 예지의 판타지적 사랑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연극은 채워가고 비워져가는 사랑의 방식을 성찰하게 하는점이 작품에 매력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관한 네비게이션 같은 방향을 안내해 준다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여준다.
극 중 인물 예지는 시침과 분침이 45도를 이루는 유일한 시각, 4시 45분에 멈춰버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9살 연상의 남자 우진을 운명의 남자라고 믿는다. 서영은 "나는 우진 인생에 존재하는 모든 여자들을 알아요. 가족은 물론이고 반 친구, 학원 친구, 학과 동아리,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요."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초월적 운명을 믿는 예지와, 한 남자의 삶을 알고 있는 엄마 같은 서영. 삼각관계를 만들어버린 우진이 살아가는 원룸에서, 부재중 우연히 만나 서로의 사랑을 마주하는 <부재중 만남>은 통속적 치정극의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삼각관계를 모티프로 한 드라마가 죽기 살기로 싸우며 막장으로 치닫는 것과 달리, <부재중 만남>은 사랑의 시선이 어긋난 두 사람을 통해 오히려 관객들은 자신의 사랑의 온도를 측정하게 하고 공연 내내 고장 난 사랑을 치유하는 연극처럼 느껴진다. 4시 30분에 멈춰진 시간 속에서 사랑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할까.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경계없는예술센터'가 20주년을 맞아 '연극이 있는 문래' 2인극 시리즈를 두 달 간격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부재중 만남>은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품은 체홉 원작 소설 <어떤 내기>(이화원 각색, 윤기훈 연출)로 문래동 로데오왁에 위치한 극장을 찾은 관객들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단 너머는 2022년에 출범한 경계없는예술센터 소속 청년예술가들의 극단이다. 2인극 시리즈 역시 대학 졸업 후 청년 연극인들이 전문적 기량을 넓힐 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젝트다. 초년 배우 양현수, 김현진의 연기는 솔직하고 담백하다. 현실적인 인물로 분해 장면을 힘 있게 끌고 가는 감각과 심쿵하게 만드는 타격감도 돋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예지와 언니 동생이 되기로 한 서영이 6년 전 이미 죽은 인물이라는 반전이 드러난다. 두 사람의 만남이 컴퓨터 파일 속 '서영 폴더'에 담긴 일기장 같은 과거와의 상상의 대화였음을 눈치채고 현실로 돌아올 때 쯤, "연극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두 사람의 사랑을 하나로 묶고 채워진다면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치유되고 싱쿵거리게 한다. 반전 이후 예지를 향한 우진의 대사는 이렇다. "솜사탕! 뭉뭉아! 미안해. 울지 마. 지금 당장 할게. 사랑한다, 한예지." 청년예술가들의 작품답게 투명하면서도, 사랑의 온도를 충분히 채워주는 공연이다.
▷국경을 초월한 '경계없는예술센터'는
문래동을 거점으로 활동해온 '경계없는예술센터'는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정년퇴임 후에도 활발히 활동 중인 이화원 교수(예술감독)와 윤기훈 교수가 주축이 된 문화예술 전문 사회적기업이다. 2005년 창단 이후 2006년부터 문래창작촌을 거점화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공연예술을 선보여왔다. 2016년부터는 문래동 스페이스T 극장에 상주하며 대학로와 문래동을 잇는 레퍼토리를 구축했고, 프랑스 파리·오리악·아비뇽,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호주 애들레이드, 일본 도쿄 등 국제 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아왔다.
대표 창작극으로는 <덴빈>(2010),<피아노포르테 1,2>(2012~2016),<태양의 발견>(2023), <시골아빠 상경기>(2024) 등이 있으며, 명작 다시 읽기 시리즈로는 <유리동물원>(2011), <오델로>(2012), <아일랜드>(2014), <질투>(2021) 등 12편을 무대화했다. 이밖에도 '연극이 있는 문래'를 통해 매년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으며, 특히 <경계없는 예술프로젝트>, <비아페스티발>, <비아프린지> 등은 문화예술 전문 사회적기업 경계없는예술센터의 대표적인 축제 브랜드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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