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측근과 공신 사이

박상전 논설위원
박상전 논설위원

"임진왜란 때 사대부들이 의병을 일으켜 본분을 다했으나 조정은 의병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일부 관련자들을 처형했다. 정묘·병자호란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싸워 봤자 공신 책봉은커녕 역모로 몰리고 집안이 박살 났던 임란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조선왕조실록2(저자 박시백)의 내용이다. 총선을 앞둔 여야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호란 때와 닮았다. 지난 대선을 치른 공신들에 대한 박대가 난국상의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론이 혼란의 진원이다. 영남권의 뭉치 표가 아니었으면 대선 승리는 어려웠으나, 지역 의원에 대한 포상은 또 다른 '희생' 요구다. 물론 그러다가 요직에 발탁되거나 기관장에 등용될 가능성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공신의 등용은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현재 347곳 공공기관장 가운데 188명이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으나, 기관장 10명 가운데 6명을 마음대로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사정은 더 골치 아프다. 졸지에 배고픈 야당 신세로 전락한 데다 사법 리스크를 끌어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논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을 막기도 쉽잖다. 이재명 대표의 당내 입지가 굳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낙연 전 대표에게 요직을 주며 당내로 끌어들이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관조한다면 신당의 영향력에 따라 총선 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사대부 의병'을 자처하던 이상민 의원은 현역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탈당했다. 비명계의 추가 탈당 시사 발언 수위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문재인계 의원들은 촛불 혁명으로 다져 온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가 불쑥 나타나 채 가려 한다고 난리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보여준 파괴력으로 민주당의 수장까지 올랐다. 화려하고도 뛰어난 언변과 지지층(개딸)을 활용한 처세술은 지금까지 역경을 피해 온 동력이다. 대선 승리 전리품도, 요직 임명권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남은 것이라곤 공천권 하나다. 측근과 공신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누구일지, 또 그 선택이 낳은 결과는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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