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전 논설위원 psj@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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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부] 동아시아 경제 패권

    [야고부] 동아시아 경제 패권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침체의 그늘에서 좀처럼 빠져나올 기미가 없는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이러다가 동아시아 경제 패권국은커녕 우리만 선진국 대열에서 탈락하는 처지에 놓이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경기 회복 기대감 속 수출·내수 경기 양극화' 보고서에 따르면 회복을 노렸던 우리 경제는, 지난해에도 실망스러운 성적을 받아 들었다. 수출이 소폭 반등했으나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불안 요인이 여전했다. 보고서는 특히 '금리에 따른 실질 구매력이 위축되며 내수 시장의 회복력이 기대보다 미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내수 침체는 구매력 감소가 원인인데, 소득이 감소한 반면 물가가 크게 올라 소비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는 기대했던 'V자형' 반등은 고사하고 'U자형' 반등도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반면 이웃 나라인 일본과 중국의 경제 상황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은 닛케이 지수가 4만 선을 돌파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탈출 선언을 예고했다.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의 침묵을 깨고 상승 곡선에 올라탔다. 이는 2012년부터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 정책과 기업 지배구조 개혁 등의 효과가 누적된 데 따른 결과다. 중국 경제의 반등도 예사롭지 않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중국의 수출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으며, 이는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기반을 찾는 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올 초 두 달 동안에만 수출이 7%나 급증했고, 국채 수익률이 덩달아 상승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8개월 만에 반등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에서 벗어났다. 부동산 위기와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베이징시는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5%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자리 잡으려면 동아시아권 경제 패권에서 밀리면 안 된다. 경제 훈풍을 타고 성장 반열에 재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 주체의 과감한 투자와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이 조속히 실현돼야 한다. 정치권의 협조와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제고도 필요한 시점이다.

    2024-03-12 20:05:50

  • [야고부] TK 음식은 짜다?

    [야고부] TK 음식은 짜다?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리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두 옛 조리서 가운데 상·하편으로 된 수운잡방은 1552년 이전에 작성,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민간에서 쓴 최초의 요리책이자 가장 오래된 조리서이다. 음식디미방은 장계향 선생이 1670년에 한글로 쓴 조리 전서다. 음식과 술을 만드는 방법, 저장법 등이 담겨 있다. 10여 년 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음식디미방에 적힌 요리를 그대로 재현했는데, 이를 심사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 시대 최고의 웰빙 음식"이라고 극찬했다. 2021년 기준 세계 식품 시장 규모는 7천400조원에 달했다. 같은 해 세계 자동차 시장이 1천600조원이고 철강 산업이 970조원인 것과 비교하면 식품 시장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음식의 경우 경제 상황에 따라 출렁이는 다른 산업과 달리, 인간의 본능인 먹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볼 때 불황이 따로 없다. 2017년부터 5년간 식품 시장은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유럽과 북미보다 두 배 이상 성장했다. 한국이 급성장하고 있는 세계 식품 시장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오래전 미국 영부인이던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김치를 담가 먹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레시피를 살펴보니 젓갈과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일본식 '기무치'였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와 영양 고춧가루, 의성 마늘 등으로 담가야 진짜 한국식 김치라는 홍보가 부재했기에 발생한 결과다. 철저한 홍보가 이뤄지고 스토리텔링이 이어졌다면 우리의 식자재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국내산 배추가 세계 곳곳으로 팔려나가 배추 파동이 사라지고, 한우와 한돈이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이 되는 일은 상상만 해도 기쁘다. 홍보는 스토리를 담아야 하고, 스토리는 '신화'와 같은 기원이 필요하다. 두 조리서는 K-푸드의 신화와 같은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대구경북이 K-푸드의 본산지로 부상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당장은 '대구 음식은 맵고 짜서 먹을 게 없다'는 선입견을 털어내는 데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지역의 음식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유구한 식품 역사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조금 소홀했을 뿐이다.

    2024-03-03 21:05:27

  • [세풍] 말뿐인 정치 개혁

    [세풍] 말뿐인 정치 개혁

    테슬라의 돌풍으로 내연기관 자동차가 하락세지만 페라리의 세계 판매량은 2019년 1만131대에서 지난해 1만3천363대로 증가했다. 페라리를 이끄는 베네데토 비냐 CEO가 최근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200개가 넘는 특허를 출원한 비냐 CEO는 가장 인상 깊은 특허를 하나 꼽아 달라고 하자 "답은 간단하다. 바로 다음에 출원할 특허"라고 답했다. "최고의 페라리는 다음에 나오는 페라리"라고 말한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개혁과 혁신적 기술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자신감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시즌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개혁과 혁신이다. 두 단어는 선거마다 공통의 화두였으나 번번이 국민들의 실망만 불러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가 개혁의 아이콘을 자임하지만 평가는 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시스템 공천을 빙자한 시스템 사천을 진행 중"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을 통진당화하고 있다"고 반격했다. 서로 정치 퇴행의 주인공이라며 삿대질 중이다. 복잡한 산식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면서 "국민은 정확한 방식을 몰라도 된다"는 정치인의 등장은, 우리 정치를 문맹률이 낮았던 과거로 되돌려 놨다. 위성정당 등 신당의 난립으로 50㎝에 달하는 투표용지가 재연돼 유권자의 혼란을 부추기는 점도 개선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21대 국회의원 10명 가운데 3명이 전과자다. 위법 경력이 있는 이들이 법을 만들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정치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따른다. 전과 4범인 원내 1당 대표를 두고 '별을 달아야 출세한다'는 비아냥거림은 귀가 아플 정도로 들린다. 우리 정치가 퇴보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로 '30%의 정치론'을 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충성도가 낮은 40%의 국민이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치면, 나머지 유권자의 30% 마음만 얻어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게 '30% 정치론'의 핵심이다. 이러면 어느 정당이든지 자기편이 아닌 70%의 국민은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10명 중 3명만 챙기면 정치생명 연장이 가능해지므로 국민 전체가 잘 사는 개혁과 혁신은 필요치 않게 된다. 이 같은 정치 행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보수와 진보, 양극으로 갈린 정치의 발전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변화를 불러오겠다'며 제3지대 등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으나 현재로선 기대를 걸기 힘들다.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대신 친정집 비난에만 몰두하면서 오히려 양극화 정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부 신당은 정부의 지원금을 타 내려 '꼼수 입당' 사태를 벌이는 등 기존 정당보다 구태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세계 스포츠 시장 점유율 1위인 나이키가 경쟁 업체로 아디다스와 푸마가 아닌 일본 게임 회사 닌텐도를 꼽았다. 사람들이 집에서 게임만 한다면 야외 활동을 수반해야 하는 나이키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진단에서다. 우리 정치가 장기적 발전을 이루려면 경쟁 상대를 주변에서만 찾으려 들면 안 된다. 경쟁 후보보다 1표만이라도 더 받아 당선만 되자는 정치공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30%'가 아닌 전체가 잘 사는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치철학적 고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으로 돌리는 편협한 사고 구조는, 구태의 씨앗이 되고 개혁의 걸림돌로만 작동할 뿐이다.

    2024-02-26 20:02:38

  • [야고부] 돈값 좀 해주길

    [야고부] 돈값 좀 해주길

    정부가 정치권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은 크게 정당 운영에 필요한 경상보조금과 선거가 있는 해에 주는 선거보조금으로 나뉜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치러진 지난해 1천420억원이 투입됐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600억원 이상 받았고, 정의당도 100억원을 수령했다. 보조금은 우리나라만 있는 제도가 아니다. 현재 OECD 37개 회원국 중 36개국이 정당 국고보조금제를 운용 중이다. 우리의 국고보조금 총규모는 유권자 수에 비례해 책정된다. 정당 운영에 지원되는 경상보조금만 따져 보면 1989년 유권자 1인당 400원이 지원됐는데 1994년에는 800원으로 두 배 늘었다. 관련 법은 2008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계상하기로 변경됐고, 이에 따르면 현재 적용되는 유권자 1명당 보조금 기준은 1천85원이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총경상보조금은 3천380억원(2021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고, 유권자 1인당 지원 금액도 250엔에 달한다. 늘어난 보조금 탓에 정당들은 국고 지원에 매달리는 분위기다. 정당의 수입은 당비, 기탁금 등으로 다양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정당들이 정치 활동만을 통해 얻은 수입 비중은 연평균 23.6%로, 국고보조금 비중(29.4%)에 못 미쳤다. 보조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독일의 경우 기부금 1유로당 0.45유로를 지원한다. 매칭펀드 형태를 채택하면서 자체 수익 증가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거액의 돈에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국고보조금은 혈세라는 점에서 더욱 민감하다. 그런 면에서 지원금을 늘려 받기 위해 '꼼수'를 쓴 개혁신당이 지탄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가 이어지자, 보조금 제도 유지에 대한 의문도 나온다. 국회의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통제받지 않는 거액의 국고보조금 지급은 정당에 대한 불신을 높일 뿐 아니라 정당 스스로의 자생력마저 잃게 한다"고 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당비와 후원회비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국고보조금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보조금 폐지 주장은 정치권의 이익에 반하고 있어 큰 반향을 얻지도 못했고, 폐지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국민들 입장에선, 부디 정치라도 잘해 주길, 제발 돈값 좀 해 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2024-02-25 19:36:57

  • 매일 탑 리더스 20기 수료

    매일 탑 리더스 20기 수료 "총동창회서 다시 만납시다"

    매일탑리더스 아카데미 20기 수료식이 21일 그랜드호텔 2층 다이너스티 홀에서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지난해 3월 교육 과정을 시작한 20기 회원 72명의 졸업을 축하하고 정식 수료를 공인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정창룡 매일신문사 사장은 축사를 통해 "설레는 마음과 긴장된 표정으로 입학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흘렀다. 강의를 들으며 넓어진 시야가 졸업생들에게 행운과 번영을 가져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동관 매일탑리더스 교장 겸 매일신문사 이사는 "20기 회원들은 이제 70여명의 기수 동기이면서, 2천여명이 가입된 매탑 총동창회 회원으로 다시 시작하게 됐다"며 "더 큰 무대인 총동창회 활동은 졸업생들이 지역의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돼 줄 것"이라고 했다. 박병욱 매일탑리더스 총동창회 회장은 "많은 기수 가운데 유독 20기 회원분들의 눈망울이 또렷하고 맑아 보인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매탑의 긍지를 불러올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떠나는 20기와 보내는 21기의 송별사와 환송사가 이어졌다. 김태영 20기 회장은 "지난 1년간의 매탑 교육은 깊은 사고를 끌어내고 보다 성숙한 인격체로 살게끔 이끌어 줬다"며 "이제는 혼자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총동창회와 함께 길게 가는 세상을 꿈꾸겠다"고 했다. 이에 강길호 21기 회장은 "반년 동안 수업을 함께 하며 얼굴을 익힐 만하니 보내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섭섭하다"며 "물줄기가 바다에서 만나듯 매탑 총동창회에서 재회를 고대하고 있겠다"고 했다. 강 회장은 20기 선배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별도의 축하 선물을 마련해 김 회장에게 전달했다. 20기 회원들은 이날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총동창회 발전기금(1천만원)과 지역 언론 발전 기금(500만원)을 조성해 전달했다. 20기 졸업식 수상자로는 매일신문사장상에 김태영 회장, 대상에 김영곤 수석 부회장이 선정됐다. 개근상을 수상한 김효주, 양인숙 회원은 부상으로 황금열쇠를 전달받았다.

    2024-02-22 14:45:44

  • [야고부] 냄비 속 개구리

    [야고부] 냄비 속 개구리

    손흥민 등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 중인 축구 선수들은 국내에서 헌혈을 할 수 없다. 인간 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낳은 결과다. 대한적십자사 혈액본부에 따르면 인간 광우병이 발생한 지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한 사람은 국내에서 평생 헌혈을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 이상의 규제는 '수박 꼭지'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0여 년 전까지 수박은 반드시 꼭지를 남겨 두고 출하를 해야 했다. '꼭지 없는 수박은 신선하지 않다'는 비과학적 근거 때문이다. 꼭지를 유지하기 위해 일손 투입이 늘었고, 유통 과정에서 꼭지 때문에 난 상처로 손상되는 물건도 많았다. 꼭지 유지에 따른 손실은 그대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됐다. 'B형 간염 바이러스' 사례는 좋지 않은 규제가 얼마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故) 김정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1973년 B형 간염 바이러스 항원을 혈청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 최초 백신 개발 국가가 됐으나, 해당 항원을 활용한 백신은 1983년이 돼서야 자체 생산이 가능했다. 정부의 생산 허가 기간이 무려 10년이었고, 그 사이 미국과 프랑스가 백신을 출시하면서 세계 시장을 선점했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자유도는 세계 최하위권이다. 러시아, 중국, 멕시코, 터키 수준으로, 정부 규제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는 지적이다. 이 가운데 노동시장과 노동자유도 분야는 최저점에 가깝다. 세계적 컨설팅 그룹인 '매켄지&컴퍼니'는 지난해 내놓은 '개구리 보고서 2탄'에서 "한국 경제가 들어 있는 냄비는 규제라는 인화물질 때문에 뜨거워지고 있다. 달궈져 가는 냄비 속에서 개구리(한국 경제)를 빨리 탈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철 전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실장 주도로 '좋은 규제를 위한 시민포럼'이 발족한다. 나쁜 규제를 없애고 좋은 규제를 생산하기 위한 민간 주도의 첫 규제 감시 기구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유효기간이 지난 규제는 과감히 폐기해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목표를 반드시 이뤄내길 기대한다. 규제 개혁을 위해 시민이 나선 만큼 정부와 국회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장벽이 된 규제는 없애고, 디딤돌 규제를 쌓아 올려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2024-02-18 18:35:24

  • [야고부] 몽둥이 든 도둑

    [야고부] 몽둥이 든 도둑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금품 제공 혐의로 구속돼 1심 선고를 앞둔 송영길 전 대표가 옥중 창당을 선언했다. 신당은 지난 3일 광주 발기인 대회를 시작으로 다음 달 1일 서울에서 창당한 뒤 총선 일정에 돌입한다. 당명은 '정치검찰해체당'이다. '처벌 대상이 사법 주체를 없애겠다'는 기괴한 발상이 놀랍다. 송 전 대표는 창당 선언문을 통해 "검찰에 맞서 최전선에 있는 동지들과 함께 창당해 제2의 3·1운동 정신으로 싸워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제 치하를 벗어나기 위한 거룩한 민족해방운동을, 개인의 범죄 혐의를 모면하기 위한 사익에 비유한 것을 보면 무모함을 넘어 과대망상 환자처럼 보인다. 송 전 대표에 대한 범죄 혐의 입증은 점점 뚜렷해졌다. 그는 2020년 1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본인의 외곽 후원 조직인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를 통해 후원금 명목으로 불법 정치자금 7억6천3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별건으로 불법 의혹 선거자금 5천만원을 수수하고, 윤관석 의원에게 국회의원 교부용 명목으로 300만원씩 든 봉투 20개를 제공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 의원은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송 전 대표의 보좌관 출신 박용수 씨의 구속영장에서 검찰은 '돈봉투'를 받은 민주당 현역 의원 규모를 20명으로 특정했다. 이 가운데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지난 7일 불구속 기소 처분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추가로 송 전 대표 측으로부터 돈봉투를 받은 현역 의원들을 계속 조사한다는 방침이나, 당사자들은 사전에 입을 맞춘 듯 '총선 일정이 바쁘다'는 핑계로 예봉을 피하려는 분위기다. 송 전 대표 재판은 개인의 비위를 넘어, 공당의 선거 활동에도 '공신력 상실'이라는 결과를 불러올 전망이다. 검찰 조사를 미루는 의원들에 대한 혐의가 드러나고, 이들이 공천받은 상태라면 민주당은 물론이고 민주제도 전체에 대한 심각한 혼란이 예상된다. 송 전 대표와 관련자들은 더 이상 혐의를 부인하지 말고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그게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정치인의 자세다. 범죄 혐의자가 사법 조직을 해체하겠다고 덤비는 무모한 자세도 버려야 한다. 도둑이 몽둥이를 드는 격이다.

    2024-02-08 20:05:21

  • [야고부] 파렴치한 ‘악의 축’

    [야고부] 파렴치한 ‘악의 축’

    세계 동물보호 제도의 시초는 1933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이다. 법안은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것을 금했다. 유기하거나 귀·꼬리 등에 고통을 가하는 주술 행위까지 불법으로 간주했다. 이는 나치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이 주역이다.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켰고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했다. 괴링은 비밀경찰 '게슈타포'를 창설해 암살과 살인을 일삼던 나치의 2인자다. 동물보호에 앞장섰던 두 사람의 이중적 태도를 보면 '사람을 개·돼지 취급도 안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은 최근 출산 장려 운동을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노력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지난해 11월 열린 어머니의 날 행사에선 "자식을 위해 모진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들의 강직한 모습이 항상 나를 다잡아 준다"며 눈물을 흘렸고, 감동한 참석자들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가족과 생명을 강조한 인간적인 모습을 연출한 셈이다. 대외적으로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밝혔듯 '보통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악의 축' 이미지 개선에 노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한껏 띄우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겐 존경한다고도 했다. 북한의 이중성은 나치를 능가한다. 방송·통신 단절로 대중의 의식을 구속한 채, 6개의 정치범 수용소를 가동해 적대 계층 학살을 60년째 진행 중이다. 또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부터 백령도 포격까지, 우리 국민 피해쯤은 우습게 여겼다. 최근엔 인류가 발명한 최악의 살상 무기인 핵폭탄 사용을 공식화하며 5천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고 나섰다. 북한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국가로 우리를 비하하면서도 월등한 한국 기술에 대해선 부러움을 넘어 도적질까지 일삼는다. 김 위원장이 식량난 해결을 지시하면 국내 농수산 기관을 해킹해 공격하고, 해군력 강화를 강조하면 국내 조선업체 도면을, 무인기 생산을 언급하면 국내 무인기 엔진 관련 기관을 해킹해 필요할 때마다 자료를 빼갔다.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적대 국가를 '무상 마트'쯤으로 여기며 강탈해 가는 수준이다. 살해 위협과 강도질을 자행하면서 부끄러움도 모른 채 당당하다. 북한은 결국 파렴치한 '악의 축'으로 회귀했고, 그게 본래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2024-01-30 19:59:31

  • [야고부] 조국 통일 헌장 기념탑

    [야고부] 조국 통일 헌장 기념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대의 통일 업적을 기리며 세운 대형 건축물(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김 위원장은 몇 주 전 '눈에 거슬린다'며 철거를 지시했고, 최근 한 외신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언제 어떻게 철거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기념탑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조국 통일 3대 헌장은 역대 통일에 대한 원칙·강령·방안을 종합한 북측의 통일 기준이다. 이 기준을 1997년 '조국 통일 3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했고, 이후 통일 실현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재차 강조해 왔다. 북한은 이번 철거를 통해 자기들이 만든 통일 원칙을 스스로 휴지통에 버린 셈이 됐다. 통일을 위한 원칙 따위도 사라졌으니, 통일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하면서 적화 의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김 위원장이 기념탑 하나 정도 없애는 일은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전쟁 도발로 이어지는 길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긴장감은 지워지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기념탑 철거는 김일성-김정일,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통일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행위다. 선대를 부정하면서까지 돌발 행동을 주저 없이 하는 것을 보면 북한이 얼마큼 위기 상황을 맞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친의 유지를 버린 마당에 남한과의 약속은 휴지 조각쯤으로 여긴 듯하다. 2000년 남북 평양 정상회담 이듬해 완공된 기념탑 철거를 통해 첫 정상회담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북한은 2020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사무소 건설에 공동으로 나섰던 문재인 전 대통령을 '소 대가리' 취급하기도 했다. 기념탑 철거는 단순히 건축물 파괴의 의미가 아니다. 이제부터 대놓고 무력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북측에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있다면 자성이 절실하다. 군의 대응 태세를 강화하고 힘의 균형을 위해 화력 증강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북한이 스스로 폐기했기에, 우리도 조국 통일 3대 원칙 전제 조건(국가보안법 철폐, 안기부 해체, 합동군사훈련 중지)으로 내걸던 사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강화하는 자세로 돌아서야 함이 마땅하다.

    2024-01-25 20:01:29

  • [야고부] 산업의 분담(分擔)

    [야고부] 산업의 분담(分擔)

    우리나라 6대 첨단산업 수출시장의 점유율이 지난 4년 동안 25%나 줄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보고서(경총)에 따르면 6대 산업의 수출액은 총 1천860억달러로 2018년 대비 1.2% 감소했다. 우리 전체 산업에서 6대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31.1%에서 27.2%로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이 기간에 6대 산업의 수출시장 점유율은 8.4%에서 6.5%로 뚝 떨어졌다. 경쟁국과의 순위도 역전됐다. 2018년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하던 점유율 순위가 2022년 5위로 추락했다. 독일과 대만, 미국이 우리를 추월했다. 첨단산업 위축은 향후 국내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주요 징후다. 선진국 대열로 들어선 수출 주도국 입장에서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는 문제다. 경총 조사 기간 동안 세계 6대 산업 수출 전체 규모는 24.2%나 늘어났음에도 우리만 고전했다. 전망은 더욱 어둡다.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은 2.7%에 불과해 팬데믹 이전 3.4%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1년 버블 붕괴 이후 가장 낮은 성장세가 전망되는 세계 경제 탓에 전체 수출 시장도 크게 위축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등 핵심 산업 발전을 위해 550조원의 투자안을 발표했다. 투자안의 핵심은 반도체다. 550조원 가운데 300조원이 수도권에 위치한 대규모 반도체 메가시티 클러스터 조성에 투입된다. 6대 핵심 산업에는 반도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미래 차, 바이오, 로봇도 포함된다. 대부분 전국 지자체가 앞다퉈 차세대 동력 산업으로 유치를 희망하고 있는 분야다. 대구의 경우 이차전지와 미래 차, 로봇이 강점이고 경북은 바이오 분야까지 노하우를 축적해 놨다. 교통난과 주거난에 시달리는 수도권은 과밀화에 따른 막대한 기회비용 증가로 미래 핵심 산업 전체를 감당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첨단산업도 원전 하나 없는 수도권이 혼자서 감내하긴 어려운 현실이다. 수도권 부담 완화를 위해서라도 지방의 잠재력을 적극 발굴해 분담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도권 일극 중심 구조에서 탈피하고 지역이 골고루 첨단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때, 비로소 나라 전체가 세계 일류 첨단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2024-01-23 20:02:41

  • [세풍] 위기를 모르는 게 진짜 위기

    [세풍] 위기를 모르는 게 진짜 위기

    30년 전 해외에서 티본스테이크를 처음 맛봤다. 부드러운 안심과 기름진 등심을 한입에 넣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컸다. 귀국 후 다시 찾았으나 허사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소고기를 11개 부위로만 도축해야 한다'는 규제 때문에 안심과 등심은 분리 정육 했다. 5년 전에야 관련 규제가 사라지고 한우 티본을 맛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맛과 달랐다. 귀동냥으로 맛보게 된 미군 부대의 티본이 추억의 맛과 비슷했다. 맛의 비결을 물었다. '한국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아서'라는 동문서답이다. 설명은 이렇다. 한국은 현재 종전국이 아닌 휴전국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전쟁 중이어서 전장의 사기 진작을 위해 특별 식자재를 제공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이다. '육류 선진국'의 최상급 고기가 특별기를 통해 신선한 상태로 공수되다 보니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직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깜빡 잊고 살 때가 적지 않다. 우리보다는 주변국의 우려가 더 커 보인다. 미국은 주한 미군에게 별도의 생명 수당을 지급하는데 전쟁 지역이라서 그렇다. 미국이 느끼는 한반도에 대한 체감 긴장도는 최근 북핵 연구 기관인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연구진의 한 기고문이 보여 준다. 연구진은 "북한의 전쟁 준비 메시지는 더 이상 허세가 아니다"며 "김정은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북한의 독재자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징후가 많다'는 제하 기사를 통해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는 대가로 북한은 식량과 석유, 첨단기술을 지원받고 있기에 한·미·일 경제 제재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도발 가능성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 중국과 대만 간의 긴장 고조,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태평양 전선의 전술 변화 등 한반도에 드리운 적신호는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켜지고 있다. 최근 북한이 보여 준 호전성도 유례없이 강하다. 남한을 주적으로 명시한 데 이어 헌법에서 '한민족' 개념을 삭제하면서 무력화 기도 의사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백령도 사태'를 재현하듯 서해상에 포사격을 하는가 하면 핵탄두 대량 생산을 공언했다. 우리 측 기술로선 요격이 불가능한 극초음속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개발까지 완료했는데 여기에 핵탄두가 실리면 한반도 전역이 '1분 사정권' 안에 든다. 특히 이번에 발사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은 고체 연료를 사용하기에 사전 징후를 포착하기도 어렵다. 수중 핵무기 체계를 완료했다는 노동당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망망대해에서도 북한의 핵 공격은 가능하다. 위중한 상황에서 우리 정치권은 '안보 불감증'의 극치를 보여 준다. 원내 1당 대표는 '우리 북한'이라는 용어를 써 가며 '6·25 남침 주역인 김일성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다. 국방부 장관에게 '참수 작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며 북한의 심기 경호에 나선 한심한 국회의원도 있다. 북핵 문제에 머리를 맞대야 할 여야는 휴전선보다 더 뜨거운 대치 상황을 연출 중이다. 여야 내부에서도, 반발하는 인사들은 신당을 꾸리겠다면서 뛰쳐나가 대통령과 정부 흠집 내기에만 혈안이다. '남남 갈등이 극에 달해 남파 간첩이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코미디 대사가 웃을 일만은 아닌 듯싶다. 시급히 국내에 멈춰 선 시선을 유라시아와 태평양 쪽으로 돌려야 한다. 현실 직시는 우리가 처한 안타까운 안보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첫걸음이다.

    2024-01-22 20:01:18

  • [야고부] 입법부의 방기

    [야고부] 입법부의 방기

    영호남 14개 지방자치단체장이 달빛철도특별법(이하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건의서를 국회의장과 여야 양당에 전달했다. 특별법 발의에는 국회의원 261명이 참여했다. 본회의 통과는 재석 의원 수 과반이면 된다. 대통령이 거부할 경우 3분의 2 이상이다. 만에 하나 거부권 행사가 있더라도 현역 의원 87%가 동의한 법안은 처리가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결국 해를 넘겼다. 전국 지역구(243개) 의석수보다 많은 의원들이 참여했으나 본회의 상정조차 못 한 것이다. 전적으로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면서 스스로 모순에 빠진 입법부 탓이다. 기다리다 지친 지자체들이 법안을 제출한 주체에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의원은 193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234명이었고, 최근 '쌍특검법' 처리를 위해선 180여 명이 찬성했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정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한 매머드급 이슈들의 찬성 규모는 특별법 참여 의원 수보다 훨씬 적다. 모두 현재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국론 분열적이면서도 소모적 사안으로 볼 수 있다. 반면 특별법은 동서 화합, 지방 소멸 위기 극복, 수도권 과밀화 해소, 국토균형발전, 신성장동력 창출, 국가경쟁력 향상 등 미래를 위한 사업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결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기에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특별법 통과는 시급하다.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신년 화두로 제시했다. 대통령은 심각한 저출산 사태를 균형발전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담론을 제시했다. 국무총리는 지역특화형 비자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데 이어 각종 규제의 주체를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재 직면한 총체적 위기가 균형발전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을 기저로 했다는 점에서 기존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다만 지방이 원하는 정책부터 도입하려는 전향적 자세도 필요한 시점이다. 모든 정책이 중앙에서 수립돼 일방적으로 지방에 하달되는 수직적 구조와 구시대적 정책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상향식 지방화 정책 구도의 성공적 첫 사례로 특별법을 꼽아도 좋을 듯하다.

    2024-01-04 19:11:44

  • [야고부] 마약 오염(汚染)국

    [야고부] 마약 오염(汚染)국

    마약 투약 의혹을 받던 유명 배우가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혐의의 사실 여부를 떠나 커리어 정점을 찍던 한 명의 '스타'가 비극적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관련 소식은 실시간으로 지구촌 곳곳에 퍼졌다.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던 우리나라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영화 '기생충'에 쏠렸던 눈들이 국내 마약 현실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마약 문제는 최근 들어 심각한 수준으로 전락했다. 투약자들이 급증 추세인데, 특히 젊은 층의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이대로라면 마약 사범은 물론이고 관련 범죄도 크게 늘어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마약사범은 매월 2천500명씩 발생했다. 이는 지난 2018년 매월 676명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젊은 층 증가세가 눈에 띄게 늘었는데, 10, 20대 마약류 사범은 지난 2015년부터 4년간 2.6배 증가해 전 연령 중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올해는 10, 20대 마약 사범이 전체의 33%를 차지하기도 했다. 마약은 폐쇄된 군대에서도 성행했다. 국군 장병 가운데 마약 범죄로 입건된 인원은 2020년 9명, 2021년 20명, 2022년 33명으로 꾸준한 증가세다. 폭증하고 있는 마약 사범 때문에 내년도 마약 관련 범죄는 올해보다 13%나 증가할 것이란 게 경찰청의 빅데이터 분석이다. 이쯤 되면 마약 오염국 수준이다. 유명 배우가 떠난 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내년부터 경찰청과 검찰청, 지방자치단체, 보건복지부 등과 함께 마약류관리법 위반 사항을 통합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여성가족부, 전국 교육청과 손잡고 청소년 대상 마약 예방 교육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실효성을 강화해서 이번 기회에 뿌리 뽑을 각오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 소멸 시대에 접어들었고 개인 생산성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더 이상 국민의 건전한 심신을 마약이 위협하게 둬선 안 될 일이다. 마약 근절은 이제, 개인의 생명은 물론 국가경쟁력까지 달린 문제다.

    2023-12-29 18:54:47

  • [야고부] 측근과 공신 사이

    [야고부] 측근과 공신 사이

    "임진왜란 때 사대부들이 의병을 일으켜 본분을 다했으나 조정은 의병 활동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일부 관련자들을 처형했다. 정묘·병자호란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싸워 봤자 공신 책봉은커녕 역모로 몰리고 집안이 박살 났던 임란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조선왕조실록2(저자 박시백)의 내용이다. 총선을 앞둔 여야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호란 때와 닮았다. 지난 대선을 치른 공신들에 대한 박대가 난국상의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경우 영남권 중진 험지 출마론이 혼란의 진원이다. 영남권의 뭉치 표가 아니었으면 대선 승리는 어려웠으나, 지역 의원에 대한 포상은 또 다른 '희생' 요구다. 물론 그러다가 요직에 발탁되거나 기관장에 등용될 가능성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공신의 등용은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현재 347곳 공공기관장 가운데 188명이 문재인 정권 때 임명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으나, 기관장 10명 가운데 6명을 마음대로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 사정은 더 골치 아프다. 졸지에 배고픈 야당 신세로 전락한 데다 사법 리스크를 끌어안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논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을 막기도 쉽잖다. 이재명 대표의 당내 입지가 굳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낙연 전 대표에게 요직을 주며 당내로 끌어들이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관조한다면 신당의 영향력에 따라 총선 판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사대부 의병'을 자처하던 이상민 의원은 현역 의원으로선 처음으로 탈당했다. 비명계의 추가 탈당 시사 발언 수위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문재인계 의원들은 촛불 혁명으로 다져 온 민주당을 이재명 대표가 불쑥 나타나 채 가려 한다고 난리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보여준 파괴력으로 민주당의 수장까지 올랐다. 화려하고도 뛰어난 언변과 지지층(개딸)을 활용한 처세술은 지금까지 역경을 피해 온 동력이다. 대선 승리 전리품도, 요직 임명권도 없는 상황에서 이제 남은 것이라곤 공천권 하나다. 측근과 공신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누구일지, 또 그 선택이 낳은 결과는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2023-12-20 21:20:11

  • [세풍] 당내 핵심에서 ‘빌런’이 된 이유

    [세풍] 당내 핵심에서 ‘빌런’이 된 이유

    얼마 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연대에 대해 "열어 놓고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최근 이준석 전 대표와 친분 있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연대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창당 발표가 아닌 연대 가능성 수준이지만, 눈길 가는 이유는 이들의 상징성에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국민의힘 최연소 당 대표로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보수 정당의 개혁과 혁신의 아이콘이었고, '아재 정당' 이미지를 변화시킬 인물로 주목받았다. 나이를 떠나 홍준표-유승민-안철수 등 여당 내 주요 인사들과도 절친인 핵심 인사였다.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만 국회의원 5번, 지방자치단체장(전남) 1번의 공천을 받아 모두 이겼다. 중간에 열린우리당이 노크했을 때도 '꼬마 민주당'을 지켰고, 국무총리를 지내며 문재인 정권의 안정적 국정 운영에 도움을 줬다. 21대 총선에선 박근혜 정부 총리를 지낸 황교안 후보와 '종로 대첩'에서 승리하며 진보 정권의 자존심을 지켜낸 인물이기도 하다. 추앙받던 인물들이지만 최근 당내 최대 '빌런'(악당)으로 전락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2021년 6월, 이낙연 전 대표는 2020년 8월에 각각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됐기에 불과 2~3년 만의 일이다. 이들의 언변도 180도 달라졌다.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들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존"(이준석), "통합의 정치와 협치를 이뤄 내겠다"(이낙연)고 했다. 하지만 최근 이준석 전 대표는 "당이 고쳐 쓸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고 했고, 이낙연 전 대표는 "민주의 가치와 품격을 떨어뜨렸다"며 내부 총질의 선봉에 섰다. 각자의 생각과 입장을 왜곡하거나 폄훼할 생각은 없으나, 이들의 문제점은 여기서 시작한다. 손바닥 뒤집는 듯한 언행 때문에 정치적 신뢰도엔 상처가 났다. 당무에 불만이 있다면 내부 개혁이나 투쟁을 통해서도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의 탈당은 자칫 학교를 자퇴하면서 새로운 반장이 마음에 안 들고 학교 전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격이다. 교육 시스템 전체를 부정하는 셈이기도 하다. 정치력 회복을 위한 개인적 욕심 때문이라면 더 문제다. 이낙연 전 대표 입장에선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라면 누구라도 당선될 분위기였으나 석패한 이재명 대표를 인정 못 할 수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복당 가능성을 부정하면서도 "만약 복당한다면 신용 거래는 더 이상 안 한다. 이제는 현금 거래만 할 것"이라며 지분 요구 뉘앙스를 풍겼다. 두 사람은 정치적 요구를 하기 전에 자신들이 당의 수장이었을 때 구상했던 숙제를 완수하지 못한 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당 대표 경선에서 수많은 당원에게 했던 약속과 공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작금의 정치판에서 나 아니면 안 된다' 식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개인의 정치적 영달만을 위한 창당이라면 신당을 빙자한 구태라는 점도 금세 간파당한다. '빌런'으로 역사에 남을지 진정한 '어벤져스'가 될지는 지금부터의 행보에 달렸다. 신당 창당을 통해 '어벤져스'로 부상하는 일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변화무쌍한 정치판에서 '절대'라는 단어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가 현실화하는 것보다 가능성은 낮지만 말이다.

    2023-12-18 19:19:14

  • [야고부] 후진적 주식 거래

    [야고부] 후진적 주식 거래

    선거철 정치인 테마주의 기승은 이제 시장에서 일상이 됐다. 지난달 26일 '한동훈-이정재' 두 명의 현대고 동문의 저녁 식사가 알려진 뒤 대상홀딩스 주가 총액이 2주 만에 2천300억원이나 불어났다. 대상홀딩스 2대 주주인 임세령 부회장이 이정재 씨의 오랜 연인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해당 주가는 최근 거품이 빠지는 듯하더니 한 장관의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가능성이 보도되자 다시 상승하는 등 춤을 추는 분위기다. 자본시장연구원의 2017년 정치테마주 분석 자료에 따르면 17대 대선에서 10개에 불과했던 테마주는 18대 21개, 19대 25개로 증가 추세다. 굵직한 정치 이벤트나 이슈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테마주들은 소재가 사라지면 대부분 급락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2020년 총선의 경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 테마주로 꼽히던 남선알미늄은 선거 직전인 3월 30일 4천900원에서 선거 바로 다음 날 4천475원으로 보름여 만에 8.6%가 빠졌다. 같은 기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회사 대표가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주가가 급등한 한창제지는 무려 39.5%나 폭락했다. 정치인 테마주가 문제인 이유는 '정치인과 가까우면 득을 본다'는 기저 의식이다. 이는 전근대적 발상을 투자 모멘텀으로 삼고 경제활동과 무관하게 시장 질서를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논란 중인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상품 불완전판매 의혹은 소비자와 은행권 사이에 책임 공방의 여지라도 있다. 반면 '증권방'에서 제공되는 일부 세력들의 불완전한 정보만으로 투자하는 행위는 전적으로 개인 책임이다. '증권방'의 정보들은 실제 시장 상황과 다를 수도 있다. 2021년 초 크라운제과는 윤영달 회장과 대선 후보로 유력해지던 윤석열 검찰총장과 같은 파평 윤씨라는 소문이 퍼지며 이틀 만에 주가가 60% 뛴 적이 있는데, 윤 회장은 해남 윤씨였다. 촌극에 가까운 이 같은 투자 행태는 우리 주식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한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만 될 뿐이다.

    2023-12-15 21:43:34

  • [기고] 재건축에도 수용제 도입을

    [기고] 재건축에도 수용제 도입을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 집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5천169만 명 중 52.4%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총주택 1천916만 호 중 아파트는 1천227만 호로 64.0%를 차지한다. 좁은 국토 면적에 70% 이상이 산지인 나라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시 주변의 산과 들판은 전부 저층 주택으로 빼곡히 채워지고, 철 따라 변하는 마을 뒷산을 오르고 개울가를 산책하는 여유도 없을 것이다. 한가롭게 즐기는 도심 숲 공원도 콘크리트 덩어리로 뒤덮였을지 모른다. 주거지 확장에 따른 엄청난 환경훼손은 물론 각종 기반 시설을 설치하고 유지·관리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을 수도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한정된 국토의 효율적 활용과 국민 주거 편익 극대화를 동시에 실현하는 수단임에 틀림없다. 소중한 아파트가 이제 나이가 들어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태어난 순서대로 점점 낡고 허물어지고 있다. 전체 아파트 중 20년 이상 된 노후 아파트가 절반에 육박하며, 30년 이상 된 경우만 200만 호에 가깝다. 매년 그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선과 현상 유지만 하기에는 비용과 물리적 한계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새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택지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재건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법상 재건축은 재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달리 주변 기반 시설은 양호하나 단지 내 주택만 노후화된 경우에 추진하는 정비사업이다. 그러다 보니 국가나 지자체가 개입하기보다는 단지 내 주택 소유자들의 의사결정에 맡기고 있다.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그때부터 토지 소유자 스스로 조합을 구성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새로운 아파트를 건설하게 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접근한 결과이다. 우리나라 주거문화의 현실을 감안하고 공익적 측면에서 원활한 재건축을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재건축에도 다른 정비사업과 마찬가지로 수용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제63조)에서는 주거환경 정비사업이나 재개발사업과 달리, 재건축의 경우 사업 추진에 동의하지 않는 소유자 등에 대해서는 사법상의 권능인 매도 청구만 가능하며 원칙적으로 수용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매도 청구하는 경우 보상금액에 개발 이익이 포함되나 수용에서는 개발 이익이 배제된다. 같은 법령의 적용을 받는 정비사업임에도 이중 구조의 강제 보상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문제이고, 사적 이익 추구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도 모순이다. 그러다 보니 재건축 사업에 불만이 있는 경우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고, 결국 소송을 통해 강제집행할 때까지 수년씩 걸리게 된다. 지금까지 재건축이 난맥상을 보인 것은 조합의 미숙함도 있지만 제도의 맹점을 이용한 알박기와 한탕주의 영향도 크다. 사업 기간이 길어지면 사업성이 떨어지고 결국 사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경우 그 비용은 나머지 대다수 주민과 시공사가 떠안게 되고, 지역사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다음으로는 공공 부문에서 개별 재건축사업의 진행 상황을 관리하고 갈등을 적극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재건축의 문제 해결을 사적 주체에만 맡기기에는 사회적 손실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재건축사업의 공공성 문제를 정부 의제로 설정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지자체와 공기업이 전문가 조직을 통해 재건축을 비롯한 정비사업 추진을 지원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23-12-15 06:30:00

  • [야고부] 낙후 지역 형평성

    [야고부] 낙후 지역 형평성

    정부가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빠르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력 고속도로화 사업'을 추진한다. 호남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서해안 해저케이블(초고압직류송전·HVDC)을 이용하고, 동해안권 전기는 송전탑을 신설해 추가 공급한다. 사업 규모도 상당해 서해안에 설치할 HVDC 비용만 8조원에 육박한다. 동해안 육상 전력망 구축 사업은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민간 자본까지 끌어들이기로 했다. 영호남 양측에서 뽑아 올린 전력의 최종 목적지는 경기도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클러스터로 예상된다. 2030년 말 가동 목표인 이곳에 필요한 전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생산한 에너지원마저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새로운 '블랙홀' 시대가 도래했다. 자원의 적절한 배분은 국가의 선택 문제지만 전력 상황이 녹록지 않은 지방의 상황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력 소모가 많은 신산업으로 전환한 비수도권 기업들이 많은 데다 생산 인력이 부족한 현실 때문에 자동화 설비 시설을 확충한 지방 기업들이 늘어나, 경북도만 해도 전력 사용량은 증가 추세다. 포스코를 위해 이강덕 포항시장이 전면에 나서서 전력 유출을 적극 방어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번 수도권 전력 공급 계획을 강행하려는 이유는 에너지 낙후 지역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같은 맥락에서, 에너지만큼 중요한 국가 인프라인 도로 건설 문제도 들여다볼 일이다. 전국 고속도로 지도상 '백지' 상태인 경북 북부 지역에 도로망을 투입하는 일과 전력 낙후 지역에 전기 고속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고속화를 포기하고 사업비 축소도 양보한 '달빛고속철도 특별법' 수정안 국회 통과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안은 대구와 광주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사업의 일환이다. 역대 최다 국회의원(261명)이 참여한 '국책' 사업과 같은 일이기도 하다. 여기엔 '전기 먹는 하마, 수도권'의 의견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수도권과 지방은 한정된 국가 재원을 골고루 배분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균형발전 시각에서 살펴보면, 오히려 에너지 낙후 지역에 전기를 보내는 일보다 낙후 지역의 정주 여건을 개선하는 일이 더 시급해 보인다.

    2023-12-04 20:04:21

  • [야고부] 모호한 연령 기준

    [야고부] 모호한 연령 기준

    최근 경북도의 청년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일부 사업 추진에 혼선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단 경북의 문제만은 아니다. 생애 주기별 연령 기준은 중앙 부처나 정책별로 상이하다. 청소년 연령은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9세에서 24세지만, 청소년보호법은 19세 미만이고, 게임산업진흥법상은 고교 재학생을 포함한 18세 미만이다. 청년층은 기본법엔 19~34세로 명시돼 있으나 청년고용촉진법에는 15~29세다. 노인 연령 기준은 더 복잡하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55세 이상이면 되지만 농지연금은 5년을 더 기다려야 하고, 국민연금 대상 기준은 65세다. 법제처가 조사한 '노인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노인 연령'은 70.5세로 주택연금 대상자와 무려 15년 이상 차이 난다. 노인 연령 기준은 1889년 독일의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통일을 완성한 비스마르크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했다. 이를 위해 노인들을 노동시장에서 퇴출하는 대신 연금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한 게 시초다. 당시 연금 연령 기준이 65세다. 이후 젊은 생산 인력 투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세금도 늘어나자, 노인들의 노후를 국가가 보장해 줄 수 있게 됐다. 연령 기준은 정책을 추진하고 효과를 검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잣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정책이 국회의원이나 정부의 개별 입법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아 연령 기준이 제각각이다. 통일시키려 해도 부처 간, 정책 간의 교통정리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니어서 개혁 의지도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국민적 혼란은 뒤로하고라도 정책에 대한 실효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노인 정책을 펴면서 55세부터 65세까지 기준 연령을 다르게 적용한다면 제각각의 해석과 서로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 정책 입안자들로선 유리한 연령 기준을 선택해 호평만 쏟아낼 가능성도 높다. 그러는 사이 정작 국민이 느끼는 정책에 대한 체감도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23-12-01 19:37:18

  • [야고부] 낙동강의 기적

    [야고부] 낙동강의 기적

    삼성과 네이버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상용화에 나선다는 결정은 국내 산업 전반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다. 지난해 기준 593조원에 달하는 신시장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200조원도 안 되는 메모리 반도체에만 집중해 더 큰 시장을 등지고 지내 왔다. AI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메모리 분야는 미세 공정과 양산 능력이 중요하지만 비메모리는 설계 및 소프트웨어 개발이 핵심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상용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샘플 성공에 불과한 현재 단계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의 대량 생산 가능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구가 최근 강하게 드라이브 걸고 있는 파이(π)밸리프로젝트가 제격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2일 대구를 방문해 "경북대 전자학과가 30년 전 배출했던 인재 군단을 활용해 새로운 화합물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매우 참신한 발상"이라며 "이런 구상은 국가가 고맙다고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일"이라고 말했다. 대구를 도와 관련 프로젝트가 조기 가동할수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공론화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약속해 놓은 게 있다. 국립경제과학연구원을 대구에 짓겠다는 대선 공약이다. 여기서 '경제'라는 문구를 '반도체'로 대체하면 '국립반도체산업연구원'이 된다. 도청 후적지에 이 연구원이 들어서고 주변에 설계와 디자인 집적 단지가 생긴다면 안성맞춤이다. 대구가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 중심에 서는 일은 지역을 넘어 국가 경제 전체에 새로운 희망이다.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첨단 기술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게 돼, 제2의 경제 도약기를 맞는 일은 시간문제다. 반도체 생산품이 신공항을 통해 세계 곳곳에 배달되고 유능한 인재들이 대구로 모이는 일은 상상만 해도 좋다. 이제 한강이 아니라 낙동강에서 기적을 이뤄낼 차례다.

    2023-11-2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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