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총선 무협지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출마자 입장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무협지(武俠誌)에 비유하자면 '무'(武)를 수련하는 과정(선거전)과 초절정 고수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당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무협소설은 '무(武)와 협(俠)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무'는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한 수단(힘)이고, '협'은 목적이다. 무협지는 무라는 수단으로 협(의기로울 협)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무협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협, 즉 목적이고, 무는 부차적이다. 무는 부족해도 훌륭한 무협소설이 될 수 있지만 협이 분명치 않으면 '3류 폭력물'에 불과하다. 진융(金庸)과 함께 신파 무협소설의 비조(鼻祖)로 통하는 량위성(梁羽生)은 '무협소설이란 무를 통해 사람과 국가가 원하는 바(협)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무협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기껏 무협지'라는 평가를 종종 받지만, 무협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량위성을 '대문호' 반열에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까닭이다.

량위성이나 진융 무협지 이상으로 스케일이 큰 소설을 쓰지만 대문호는커녕 3류 작가로 평가받는 무협소설가들이 많다. 이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색(色), 살(殺), 기(奇), 이(異)가 (돈 벌이를 위해) 독자들의 말초적 신경을 자극할 뿐, 무협지의 궁극인 협(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 같이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루는 처참한 장면이 등장하더라도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한쪽은 심금을 울리는 문학작품이 되고, 한쪽은 '3류 폭력 포르노'가 되는 것이다.

무협소설이 '문학작품'이 되느냐, '3류 폭력 포르노'로 전락하느냐는 주인공들이 무엇을 위해 무를 닦고, 무엇을 위해 무를 행사하느냐(앞뒤 맥락에 맞게)에 달려 있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과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해 출마하고, 무엇을 위해 공천하느냐에 따라 그들이 펼치는 '총선전'은 감동을 주는 문학 또는 3류 포르노로 갈린다. 유권자들도 자문해 봐야 한다. 어떤 정치인과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면 본인이 심금을 울리는 문학작품을 좋아하는지, 3류 포르노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국회의원 배지가 목적이기에 당선 안정 지대만 찾는 후보, 그런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는 '3류 포르노'를 찾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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