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역(逆)천안함 사건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는 러시아의 태평양함대 사령부는 허울이다. 진짜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 사이에 있는 '비밀도시'(closed city) 포키노(Fokino)에 있다. 그러한 포키노에 '더 비밀스러운' 두나이(Dunai)항이 있는데, 태평양함대의 기지는 그곳에 있다.

북한 철도는 표준궤(폭 1천435㎜)이지만 러시아는 1천520㎜의 광궤인지라 바로 열차를 연결할 수 없다. 양측 사이엔 포장도로도 없어 수송은 대개 배로 한다. 그래서인지 양측은 연 5천만달러 이하의 형편없는 교역만 해왔다. 코로나 뒤끝인 2022년엔 5만달러에 불과했다. 북한은 무역량의 95% 정도를 중국과 할 정도로 중국에 경도돼 있었다.

지난해 7월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9월 23일 김정은이 러시아의 보스토치니에서 푸틴을 만나더니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앙가라, 마리아 등의 러시아 상선이 북한의 나진항에 쌓아 놓은 컨테이너를 싣고 러시아의 두나이항을 오가기 시작한 것.

나진항에서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항이 아니라 먼 두나이항으로 들어간 이 배들을 외신은 '유령선'(ghost ship)으로 묘사했다. 세계의 모든 상선은 안전 운항과 사고 시 구조를 받기 위해 자기 위치를 밝히는 트랜스폰더를 켜고 운항해야 하는데, 꺼놓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성 추적은 피하지 못했다. 현재 우리는 항공우주연구원이 띄운 '아리랑-3, 3A, 5'의 세 기와 국방부가 발사한 정찰위성 한 기를 운용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나토 국가들도 많은 위성을 갖고 있다. 돈만 주면 찍어 주는 상업위성 회사도 많은데, 미영 언론은 이들이 촬영한 나진항 입항 러시아 선박 사진을 여러 번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1일 미국 백악관은 두나이항에서 열차에 실린 북한발 컨테이너가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까운 러시아의 티호레츠크 탄약고에 입고됐다며 위성 정보를 공개했다. 국정원은 국회에 북한이 100만 발 이상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했다고 보고했지만, 외국 기관은 200만 발 이상으로 본다.

우리의 155㎜ 포탄을 기준으로 할 경우 100만 발의 거래 대금은 약 30억달러, 200만 발은 약 60억달러에 이른다. 2022년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의 경제 규모는 약 245억달러였으니, 북한은 이 수출로 엄청난 성과를 거둔 것이 된다. 시장조사 기관인 피치 설류션의 북한 경제 전문가 안위타 바수는 2016년 이후 북한은 최대 호황에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 성공에서 보듯이, 북-러는 미사일 협력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다. 북한의 '화성-11가' 탄도미사일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를 모방한 것이다. 북한판 ATACMS로 불리는 '화성-11나' 탄도미사일도 러시아의 '그라드'를 원형으로 한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는 이스칸데르나 그라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북한에서 수입할 것으로 봤는데, 지난 1월 2일 히르키우에 떨어진 러시아 미사일은 화성-11가라는 분석이 있었다.

순항미사일은 대함(對艦)미사일에서 비롯됐다. 러시아가 개발한 대함미사일은 '우란'인데, 북한은 이와 닮은 '바다수리-6형'을 시험발사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순항미사일은 '킨잘'인데, 러시아는 킨잘을 토대로 극초음속 미사일도 개발했다. 북한은 킨잘을 닮은 신형 순항미사일 '화살-2형'과 핵탄두를 붙인 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3형',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극초음속 미사일도 시험발사했다.

이들도 조만간 우크라이나 전선에 전개될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지키기 위해 김정은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란 조국 통일 3원칙을 버리고,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에 간여하지 말라고 강력한 위협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대만해협, 우크라이나, 가자, 후티 등 다른 지역 문제와 함께 보아야 한다.

러-우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9월 러시아의 '돈줄'인 해저 파이프 라인 '노르트 스트림'이 폭파됐다. 그리고 'CIA 작품이다, 우크라이나 특수군 소행이다'는 설만 분분하고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북-러가 역(逆)천안함 사건을 당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어느 날 '앙가라호 등이 실종됐다'는 보도가 나올지도 모른다. 트랜스폰더를 끄고 다니니 이들은 진짜 유령이 될 것이다.

이정훈 명지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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