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고려 33대 왕 창왕이 화제였다. 천만영화 등극 수순을 밟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조선 6대 왕 단종과 연결지은 관심이었다. 영화를 보고 우리 역사 속 다른 사례를 찾다 "단종보다 더 비극적 최후를 맞은 왕"이라는 반응이 쏟아진 것.
단종은 고1 나이 16세 때 죽었고, 창왕은 초2 나이 9세 때 죽었다. 창왕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단명한 왕이다. 단종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거나 삼촌 세조로부터 사사(賜死)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창왕은 아버지 우왕과 함께 참수형에 처해졌다.
죽음 이후도 대비된다. 영월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엄흥도가 수습해 암장(暗葬)했고, 이 묘는 후일 숙종이 노산군으로 불리던 단종을 복권하며 장릉이라는 능호를 얻었다. 엄흥도는 공조판서로 추증됐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천만영화의 바탕이 된 반면, 창왕은 시신과 무덤에 관한 기록 자체가 없다. 단종은 후대가 매년 단종제와 사육신제로 기리지만, 창왕은 그런 거 없다.
두 어린 왕의 공통점은 죽어야 할 정도로 책임질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위 기간이 단종은 3년(세조 즉위 후 상왕 재위 기간 제외), 창왕은 1년이다. 그동안 뭘 할 수 있었을까. 단종은 세조의 야욕으로 쫓겨났고, 창왕은 실정을 저질렀다며 아버지 우왕이 폐위될 때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로 함께 쫓겨났다.
다만, 권력 투쟁이 극단으로 치닫던 고려 말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이성계가 우왕을 끌어내리고 잠시 왕위에 올린 창왕 역시 없애는 건 시대 흐름 앞에선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권문세족의 부패와 수탈이 극에 달한 고려는 어떻게든 당시 힘을 얻은 성리학의 위민(爲民·백성을 위함) 사상을 바탕으로 왕과 신하가 서로 견제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의 교체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바로 조선이다.
개인의 운명은 참 안타깝지만, 창왕은 교체가 반드시 필요했던 시기의 지도자, 단종은 그 반대 맥락의 사례다. 세조가 권력을 얻으려 일으킨 계유정난에 참여한 한명회 등 공신들의 세력이 커지며 조선은 다시 고려 말처럼 퇴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짙어진 붕당정치가 당파싸움으로 변질됐고 왕권이 약해지자 세도정치가 득세해 조선 멸망의 주 원인이 됐다.
지금 지구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은 자유민주주의다. 그 반대는 독재다. 방법이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최근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와 이란의 알리 하메네이 등 주요 독재자들이 잇따라 체포 또는 제거됐다.
그러자 세계인의 눈길이 향하게 된 곳이 북한인데, 우왕처럼 시대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독재자 김정은이 올해 나이 13세의 딸 김주애를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는 소식이 조선중앙통신발로 쏟아지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주애 양의 운명은 창왕이다.
단종의 운명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고모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마치 세조처럼 조카 주애를 치는 권력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반역죄로 숙청되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되는 걸 지켜본 김여정이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주애 양은 어떤 운명에 놓일까. 아니, 실은 또래 평범한 청소년들처럼 살고 싶은 건 아닐까. 앞으로 주애 양이 단종도 창왕도 아닌 운명을 직접 선택할지 여부에 적잖은 시선이 향하게 됐다. 자칫 큰 책임을 질 과오를 저지르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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