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요초대석] 한국 정당정치의 몰락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장)

총선을 한 달 정도 남기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창당한 조국혁신당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3월 5~7일)에서 "어느 비례대표 정당에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조국혁신당이 15%로 국민의힘 비례정당(37%)과 더불어민주당 중심 비례연합정당(25%)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다른 제3지대 정당인 개혁신당(5%), 녹색정의당(2%), 새로운미래(2%)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았다.

조국혁신당이 이렇게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이재명의 민주당'이 비명-친문계 인사들을 대거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에 대한 친문 세력의 저항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나 '명문 정당'을 만들자고 한 약속을 깨고 '멸문 정당'으로 변질시킨 것에 대한 강한 분노의 표출로 보인다.

동시에 헌법재판소가 반국가 세력으로 인정해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린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 인사와 대한민국 정체성이 의심되는 인사들에게 국회 진입의 길을 터준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동의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층이 조국혁신당으로 이탈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정치권은 이번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몰고 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야권에서는 '이재명-조국 반윤 연대'가 식어가던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이고, 민주당 공천 파동과 이재명 대표가 싫어서 투표 열기가 떨어졌던 범민주진보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긍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과연 조국의 강에 빠져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민주당에 조국혁신당이 득이 될 수 있을까?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착시라는 반론이 있다. 실제로 조국혁신당은 새로운 야권 지지층을 만들어내는 '창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민주당 지지층을 분산시키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갤럽 조사에서 확인되었듯이 민주당 지지자의 표심이 민주당 중심 비례연합정당(62%)과 조국혁신당(26%)으로 분산됐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 위성정당과 제로섬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주당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궁극적으로 민주당이 제1당으로 승리하는 것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하튼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지원 세력이 될지, 표심을 분산하는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조국 대표가 강성 지지층에 주력하는 행보를 걸으면서 '중도층 확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조 대표가 행한 입시 비리는 공정을 해치는 중대 범죄다.

앞선 갤럽 조사에서 18~29세 연령층의 조국혁신당 지지가 겨우 1%에 불과하다는 것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반윤석열'이라는 선명성으로 초기 지지세를 결집하는 데 성공한 모습이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이 가져올 가장 위험한 파장은 한국 정당정치의 몰락이다.

조국 대표는 조국혁신당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역주행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은 검찰 독재의 강이고 윤석열의 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무슨 해괴한 주장인가?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사건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이런 사람이 공정과 정의로 상징되는 민주공화국 가치를 들먹이는 것은 몰염치의 극치다. 조 대표는 자신의 죄를 묻는 2심 판결이 나오자 '비법률적 방식의 명예회복'을 들고나왔다.

"판사가 주재하는 사법 판단에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국민이 판단하는 정치적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법적 판결을 정치적 판결로 다시 재단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이다. 조 대표에게 묻고 싶다.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면 명예가 회복되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사라지는가.

조 대표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과 사죄는커녕 '방탄'과 '금배지'를 노리고 정당을 창당했다. 민생을 챙기고 이익을 표출하고 정부와 정당을 연계하는 정당의 기본 기능을 무시하고 오직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사당을 만드는 행위는 정당정치를 파괴하는 그야말로 천벌을 받을 짓이다.

최근 청와대 하명 수사 및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1심에서 3년형을 받은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조국혁신당에 입당했다. 사법 체계의 근간을 세우고,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선 정당이 범죄 혐의자들의 도피처로 악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은 깨어 있는 현명한 유권자의 의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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