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동상'이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이미지는 서울 광화문광장의 이순신 장군 동상일 것이다. 6.5m 높이로 세계적 규모의 동상과 견주기 어렵다. 하지만 크기는 위대함과 존경심의 척도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난 극복을 상징하는 인물로 국민 대다수가 공감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특정 공간에 그 공간을 대표하는 인물의 동상이 서는 건 자연스럽다. 경북 상주의 효자 정재수 기념관에 정재수 어린이상(像)이 마땅하듯 강원 평창 이승복 기념관에 선 반공 소년 이승복 동상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대구삼성창조캠퍼스의 호암 이병철 동상은 말할 것도 없다. 지탄의 목소리가 나오기는커녕 그 앞에서 기도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말부터 대구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산업화 영웅인 그의 동상을 건립해 그 정신을 후대에 물려주자는 바람이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달 초 소셜미디어로 건립 의지를 드러냈다. 그에게 영감을 준 곳 중에 광주가 있었다. 그는 "달빛철도 축하 행사차 광주에 가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 대구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이 보이지 않아 참 유감스러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흔적은 전남 지역에도 적잖이 보인다. 특히 '새천년'이라는 표현이 많다. 목포 '새천년 시민의 종'의 현판, '市民鐘閣'(시민종각)을 김 전 대통령이 썼다. 고향 하의도 하의초교에도 그가 쓴 '새천년의 꿈' 기념비가 있다. 암태도와 압해도를 잇는 연륙교도 '새천년대교'였다. 지금은 '천사대교'로 이름을 바꿨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에 '새천년민주당'도 있었다.
대구에서 박 전 대통령의 흔적을 품고 있는 곳 중 하나는 영남대다. 총장실 접빈 공간 정중앙에 박 전 대통령 초상화가 걸려 있다. 새마을운동과 그 정신을 학문으로 승화해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역할도 이어가는 중이다. 반대로 모교인 대구사범학교의 후신, 경북대에서는 흔적을 찾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게 옛 사범대 로비에 있던 흉상 부조상이었다. 2022년 지상 8층짜리 새로운 사범대학 건물이 들어서는 사이 자취를 감췄다.
1971년부터 반백 년 동안 있으면서도 부조상의 운명은 평탄치 못했다. 1980년대 민주화 바람을 타고 철거 요구는 반복됐다. 반민주 독재의 표상으로 인식된 탓이었다. 철거 요구 대자보도 꾸준히 붙었다. 결국 옛 사범대 건물 해체와 함께 부조상은 갈 곳을 잃고 현재 경북대 박물관 제2수장고라 불리지만 실제로는 창고인 곳에 있다. 가로세로 1.5m 크기로 웬만한 장정이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 둔중함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부조상이 사라진 그해 경북대 사회과학대 공원에는 흉상 하나가 섰다. 1974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고 1981년 옥중 사망한 정치외교학과 54학번 이재문 동문의 흉상이다. 그를 기억하려는 민주동문회 등 인사들이 나서 사회과학대 앞 공원에 세운 것이다. 이 공원의 이름도 '여정남 공원'이다. 역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 때 사형당한 인물이다.
홍준표 시장이 11일 동대구역과 대구도서관 공원(대명동 미군기지 반환 부지에 건립 중)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라고 지시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역사적 평가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단군 이래 오천 년 역사에서 '보릿고개'라는 단어를 현실에서 지운 박정희를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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