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음악과 체제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최근에 당해 국가에서 볼 때는 진지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이없는 뉴스가 여러 나라의 미디어를 통해 전해졌다.

러시아의 타스통신을 참조한 뉴스로서, 러시아연방의 자치공화국인 체첸의 수장 카디로프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느리다고 판단되는 음악을 금지하며, 자세하게는 모든 기악, 성악, 무용음악의 박자는 분당 80~116비트 사이여야 하고, 다른 민족의 음악을 빌려와서도 안 된다는 결정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슬림을 오염시키는 서양 음악의 침입을 막고, 체첸인의 도덕적, 윤리적 삶의 기준에 맞는 문화유산을 보존하여 국민과 미래 세대에 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실 카디로프는 이전부터 자신에 대해 반대하는 모든 인사를 탄압해 왔으며, 미국 국제종교자유위원회에 의해 자신의 권좌를 지키고자 종교와 문화를 이용한다는 평가를 받은지라 이 결정이 새삼스럽진 않다.

서양 음악에 대한 금지령은 이보다 이전에 이슬람 국가에서 있어왔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젊은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모든 음악을 금지하고 악기를 압수해 불태우기도 했다. 이란은 이보다 앞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서양 음악을 불법화했다. 만약 서양 음악을 듣다가 적발되면 투옥되거나 큰 액수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또 악마 추종자들의 음악을 듣는 부도적한 자이거나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불온한 자들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혁명의 열정이 식으면서 이란 라디오와 TV에서 가벼운 클래식 음악이 허용됐고, 특히 1997년부터 개혁주의자인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에는 이러한 규제가 더 완화됐다. 하지만 2005년에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는데, 강경한 보수주의자인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영 라디오와 TV 방송에서 모든 형태의 서양 음악을 다시 금지한 것이다. 그러자 테헤란 교향악단의 지휘자 알리 라바리는 항의의 표시로 사임을 발표하고, 고별연주회에서 1979년 혁명 이후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지휘했으며, 기타리스트였던 리아히푸르는 이 결정이 대통령의 지식과 경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체제에 반대했다고는 볼 수 없다. 2012년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인 아지디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체제에 반대하고자 지하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렇다"라고 했다. 2013년에는 온건파인 로하니가 대통령이 된 이후부터 음악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었다. 요즘 팝송을 비롯해 힙합이나 록밴드가 이란에서 인기를 누린다곤 하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에 이들 중 일부는 공개적으로 콘서트를 열 수 있었다고 한다.

올해 6월부터 시행되는 체첸의 새로운 기준을 다시 살펴보면, 대개 분당 116비트가 넘는 서양의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나 최근에 가장 많이 팔린 팝송은 앞으로 체첸에서 금지된다. 영국 공영방송인 BBC에 의하면, 베스트셀러(2020년) 팝송 상위 20곡의 평균 템포는 분당 122비트라고 한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힙합이라 하더라도 기준에 맞으면 허용되고, 러시아군 합창단이 녹음한 분당 69비트의 러시아 국가는 체첸에서 틀 수 없다는 말인데, 푸틴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카디로프로서는 곤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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