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미영의 예술기행]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케냐

만년설의 킬리만자로·국립공원…아름다운 자연과 야생동물 천국
아라비카 커피, 산미'과일향 자랑

케냐의 나라 새(國鳥), 분홍가슴파랑새가 날개를 활짝펴고 하늘을 날고 있다.
케냐의 나라 새(國鳥), 분홍가슴파랑새가 날개를 활짝펴고 하늘을 날고 있다.

◆아름답구나, 아프리카!

케냐의 나라 새(國鳥)는 분홍가슴파랑새다. 조류도감을 뒤져 찾아보니 분홍색 가슴과 하늘색 몸통에 녹색 꼬리를 가진 아주 예쁘고 작은 파랑새다. 파랑새목(目). 파랑새과(科)로 학명은 Coracias caudata, 이웃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밀레니엄 기념우표로도 제작했다. 사진만으로도 어찌나 아름다운지 조류도감 속 나뭇가지에 앉은 새도, 날개를 펴 날고 있는 새도 오래 눈을 떼지 못하겠다. 아프리카 동남부 사바나에서 주로 서식한다고. 아종(亞種)으로 파랑가슴파랑새도 있다. 사진처럼 기억엔 없으나 나이바샤호수에서 독수리, 펠리컨, 플라밍고를 비롯한 수많은 새들을 보았으니 분명히 이 새도 그때 보았을 것이다.

암보셀리공원에서 코끼리.암보셀리국립공원은 킬리만자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야생동물 수렵금지 구역이다
암보셀리공원에서 코끼리.암보셀리국립공원은 킬리만자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야생동물 수렵금지 구역이다

만년설이 뒤덮인 킬리만자로, 이곳에서 사냥을 하며 헤밍웨이가 소설을 썼다던가. 암보셀리국립공원과 그레이트 벨리를 지나 나꾸르국립공원을 지나자 누군가 탄성을 지른다. 무리 지은 플라밍고 떼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선홍색 꽃들이 연푸른 하늘에 환하게 피어오르는 광경, 세계 최대 조류 서식지, 새들의 낙원이란 말이 활짝 피어 각인되는 순간이다. 몇 시간 전 초승달 모양 크레센트섬을 건너다 낡은 배의 모터가 멈춰버렸던 공포가 삽시간에 잊힌다. 아름답구나, 탄성도 지르지 못하고 넋을 놓는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아프리카'라 했지만 나는 이제부터 '아름다우니까 아프리카'라 찬양할 테다.

케냐 마사이족들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춤을 추고 있다.
케냐 마사이족들이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춤을 추고 있다.

케냐는 사람과 새 그리고 모든 동물들이 아름다웠다. 마사이족들과 함께 공중으로 뛰어오르던 춤도 좋았다. 그리고 또 '케냐' 하면 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커피다. 몇 년 전 회사에서 직영 커피숍 운영프로젝트가 있어 아주 비싼 커피부터 맛으로 소문난 체인점 커피까지 온갖 것을 다 마셔볼 기회가 있었는데, 특히 그 해 콘테스트에서 2등을 한 커피를 회사에서 구입해 기차처럼 생긴 로스팅기에 볶아 내려 마신 것이 기억에 남는다.(나중에 알게 된 그 커피콩의 어마어마한 가격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기온이 서늘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킬리만자로산맥 동쪽 고지대에서 재배되는 커피는 밝고 강렬한 산미와 과일향 그리고 묵직한 느낌의 이곳 케냐 아라비카였다.

◆Out Of Africa, 카렌 블릭센, 영혼의 안식처

'만약 내가 아프리카의 노래를 안다면, 기린들과 그 등 위에 떠 있는 달과 땀에 젖은 얼굴들의 노래를 안다면, 아프리카는 나의 노래를 알까. 내가 걸었던 길 위에 나 같은 그림자를 드리워줄까. 아니면 응공 언덕의 독수리가 나를 찾아 헤매어줄까.' 카렌 블릭센은 자신의 책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1937년)'에서 이렇게 아프리카 대륙을 읽어내려 간다.

1885년 덴마크 출신으로 1913년 남편과 함께 나이로비 인근 느공산 자락에 커피 농장을 열고 키쿠유족을 고용하여 경영한다. 이후 남편과의 별거, 사냥꾼 데니스 핀치히턴과의 사랑과 그의 죽음, 커피 농장의 불황을 겪으며 아프리카를 떠날 때까지 17년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1985년 메릴 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으로 시드니 폴락 감독이 만들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포함 7개 부분을 석권했다.

마사이라마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에 함께한 일행들
마사이라마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에 함께한 일행들

나이로비에서 남서쪽으로 15㎞, 카렌 블릭센의 이름을 딴 도시 '카렌'에 박물관이 있다. 그녀가 살던 곳을 영화를 찍기 위해 영국 식민지풍으로 재현한 그곳이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자 케냐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녀가 묘사한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과 커피 농장 그리고 드넓은 초원과 파란 하늘을 보니 그토록 아프리카를 사랑한 이유를 알듯도 하다. 촬영이 금지된 집 내부는 노벨문학상 유력후보로 두 번 오른 작가답게(헤밍웨이와 까뮈에게 밀렸다.) 책장엔 두꺼운 장정을 한 책이 가득하고, 연인 데니스가 그녀의 머리를 감겨줄 때 썼을 흰 물주전자, 희미한 윤곽의 사진들, 우아한 식탁과 코펜하겐 접시들로 겹겹 쌓여있다.

하루 뒤 그녀가 데니스와 함께 경비행기로 내려다보던 마사이라마의 물소 떼들을 열기구에서 내려다 볼 땐 연분홍과 보랏빛 아침 해가 말갛게 떠올랐다. 열기구 그림자가 동동 초원을 누비는 곳으로 임팔라와 얼룩말들 그리고 멀리 코끼리와 기린이 햇살을 받으며 뛰거나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다. 경비행기 사고로 연인 데니스가 죽자 커피농장 언덕에 그를 묻던 영화 장면과 한때 대치했던 사자가 그곳을 찾아와 한참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륜구동 짚차로 초원을 달려 일행들이 나눠 탔던 우리의 그 경비행기도 같은 기종이었을까, 아프리카스럽지 않은 생각도 잠시 한다.

마사이라마 국립공원에서 만난 얼룩말
마사이라마 국립공원에서 만난 얼룩말

◆얼룩말 무리와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나이로비

한 무리 얼룩말 뒤로 신기루처럼 떠 있는 고층빌딩이 보이는 곳에 케냐 수도 나이로비가 있다. 사람과 야생동물이 거의 이웃인 도시의 도로엔 차들과 인파가 늘 뒤섞여 있다. 동아프리카 최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이 없는 탓이다. 이집트에서 이주해왔다는 마사이(Masai)족과 원주민인 키쿠유(Kikuyu), 루오(Luo)족이 주요 종족인데 1963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 식민지배를 받은 탓에 영어와 스와힐리어를 사용한다. 빌딩이 즐비하고 도로마다 온 세계 유수의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이 현대적인 도시 한켠으로 긴 창을 들고 빨강과 초록, 원색 의상을 입은 마사이족이 인파 속에서 맨발로 당당하게 걸어간다. 마찬가지로 국기를 닮은 화려한 옷을 입을 수많은 아프리칸들이 택시 호객을 하거나 도떼기시장처럼 물건을 판다.

마사이라마 국립공원 코끼리
마사이라마 국립공원 코끼리

'안녕하세요, 환영해요, 케냐는 아무 문제 없어요(Jambo, Jambo bwana … Kenya yetu)', 노래는 곳곳에서 흘러 나오고,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를 입에 익힌 관광객들은 잇몸을 환히 드러내며 손바닥이 하얀 그들과 하이 파이브를 하며 지나간다. 바리케이트가 쳐진 호텔 입구와 상점마다 기관총을 든 경비병들을 수시로 보던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과는 다르게 나이로비 시내는 혼돈스럽지만 이렇게나 즐겁다.(하지만 우범지대도 많다. 조심해야 한다!)

악어, 타조, 얼룩말, 누 등 야생동물 바베큐와 사파리 캣츠쇼로 유명한 나이로비 사파리 파크 호텔은 우리나라 파라다이스그룹이 운영했었다고 한다. 마침 숙소로 정해져 산책을 나갔는데 4만평 규모라 며칠 묵지 않으면 다 둘러볼 수 없이 거대하다. 디너 파티는 역시 흥겹고 무용수들의 공연도 화려해 흥겹기 짝이 없다.

사파리 파크 호텔 캣츠쇼
사파리 파크 호텔 캣츠쇼

코끼리가 좋아하는 열매 마룰라로 만든 술 아마룰라가 잔에 넘치고 산지 와인과 각종 과일, 소스들의 독특한 냄새가 흥청거리지만 샤슬릭처럼 꼬챙이에 꿰어져 쉐프가 식탁마다 다니며 썰어주는 야마초마는 아무래도 익숙치 않다. 자꾸 마사이족 아이들 그릇에 담겨져 있던 옥수수 우갈리와 '어두운 교실 바닥에 따개비처럼 붙어 책을 읽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는 나이로비의 밤이었다.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대구문학관 기획실장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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