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정화식] 이런 결혼식 어떠세요?

전 대구대 교수

정화식(전 대구대 교수)
정화식(전 대구대 교수)

나는 웬만한 결혼식에는 불참한다. 소란스러운 예식장의 혼잡도, 줄 서서 기다리다 서로 부딪쳐 가면서 음식을 담는 뷔페식당도 싫고, 값비싼 웨딩드레스, 굽 높은 구두, 턱시도로 옥죄어 꼭두각시 같은 피사체 신랑 신부의 억압이 답답해서다.

지난 주말 초대받은 'LEEKEEM PUDDING'은 서울 근교 용산 가족공원이어서 참석했다. 흐리던 날씨는 도착 무렵 때맞춰 화창해졌다. 공원은 이름처럼 수많은 가족 나들이로 화려하다. 초록 잔디밭엔 텐트와 매트가 물감처럼 뿌려져 있고 아이들은 깔깔댄다.

한 달 전쯤 내가 받은 결혼식 청첩 노트 타이틀은 'LEEKEEM PUDDING'이었다. 뭐지? 디저트? 레스토랑? 손안에 쏙 들어오는 쪼그마한 이 노트 앞면에는 기타를 든 예쁜 예비 신랑 신부가 별 모양의 무늬 안에 앉아 있고, 그 밑에 LEEKEEM PUDDING이 적혀 있다. 기발하다. 자신들의 결혼을 각자의 성을 딴 푸딩이라니! 푸딩이란 두세 가지 식재료를 혼합하여 부드럽고 따뜻하게, 혹은 차게 해서 먹는 케이크 비슷한 후식이다.

둘의 결합이 초래할 부드럽고 따스한 푸딩 같은 미래의 삶이 예견된다. 뒤표지에는 깨알 글씨로 일시와 장소를 비롯한 알뜰 정보가 적혀 있다. 푸딩 같은 '말랑한 것이 결국 승리한다', 그리고 점심은 먹고 오라는 뜻으로 '밥은 안 주고 공연만 한다, 네요' '축의금과 화환 대신 축하하는 마음만 가득 가져와주세요'. 기존의 청첩장과는 차별적이다. 귀엽고 톡톡 튀는 재미와 정감이 묻은 청첩 노트였다.

가족공원 수양버드나무 두 그루에 흰 베일을 늘어뜨린 식장은 단출하고 아름다웠다. 새신랑 신부는 사랑의 메시지와 작은 반지를 주고받고, 양가 어머니들의 덕담 후, 예쁜 색의 기타를 둘러메고 공연을 시작한다. 웨딩 콘서트, 혹은 록 페스티벌인 셈이다. 신랑이 기타를, 신부가 베이스를 맡아 하객들의 흥을 돋운다.

MZ세대들이 개성적이고 새로운 결혼식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장점도 많지만 이것 역시 정착되기도 전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예식장을 정해 놓고 함께 쏘다니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에 열중하고, 2차 프러포즈를 위해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가방을 마련하고, 거액을 들여 특급 호텔을 예약한다거나, 축의금을 부모님이 아닌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며 '축의금은 키오스크로'라든지, 예식장에서 큰 가방을 들고 축의금을 받아들이는 신부의 절친 '가방순이'의 등장도 그 몇몇 예다.

바흐찐은 카니발을 창조적인 파괴 정신과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으로 보았다. 인간을 억압하는 금기와 규칙을 깨고 불편부당한 인습을 타파하고 자유를 모색하며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고도 보았다. 이들 부부는 전통적인 결혼식을 파괴하는 창조 정신과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화환이나 축의금 대신 축하하는 마음만 가득 담아'란 말로 빈 지갑의 동료들을 더 많이 부담 없이 초청하여 잠시나마 초개인적 공동체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런 카니발리즘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새로운 힘을 준다. 환경 공해를 피해 부부의 입장 길을 장식했던 꽃들을 즉석에서 자그마한 다발로 만들어 하객들의 손에 일일이 정답게 건넸다. LeeKeem Pudding과 같은 색다른 웨딩의 확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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