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강은경] 같은 하늘, 같은 염원

강은경 사회부 기자
강은경 사회부 기자

군 공항(K2)과 민간 공항을 통합 이전하는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 사업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 도심에 위치한 K2에서 발생하는 전투기 소음으로 피해를 견디다 못한 대구 동·북구 주민들이 'K2 이전 주민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며 본격적으로 이전을 요구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K2는 공군 주력 부대인 제11전투비행단을 비롯해 공군 군수사령부, 공중전투사령부, 미 공군이 주둔하는 국내 최대 군 공항이다. 이곳에서 연간 7만 회 넘게 이·착륙하는 군용기 소음은 대구공항을 전국 공항 중 평균 소음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만들었다. 소음 피해뿐 아니라 고도 제한에 따른 도시 발전 저해, 재산권 침해, 인근 학교 청소년들의 학습권 피해도 수십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흔히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만이 그 깊이를 알고, 지나간 자국을 밟아 본 사람만이 그 길의 상처를 안다고 한다. K2 인근 주민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같은 피해를 감내해 온 광주 군 공항(K-57) 인근 주민들일 것이다.

오랜 세월 같은 하늘을 견뎌 온 대구와 광주 시민의 공통된 염원은 결국 국회를 움직였다. 2023년 국회 통과조차 불투명하던 TK신공항 건설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이 동시에 통과되며, '달빛동맹'의 연대와 상생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광주 군 공항 이전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하고 대통령실 직속 태스크포스(TF) 설치와 국가 주도 방침을 공식화하자, K2 인근 주민들의 표정에는 허탈감이 가득하다. 군 공항 이전이라는 동일한 숙원을 안고도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구는 광주, 경기 수원(K-13) 등 지자체 3곳 가운데 2020년 이전지 선정까지 마친 가장 앞선 사례이지만, 지금은 11조5천억원에 달하는 재원 조달이라는 최대 난관 앞에 답보 상태다.

문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맞물리며 TK신공항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다 정부와 여당이 지방선거에 맞춰 '선거용'으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른 시간 끌기가 현실화한다면, 2030년 개항이라는 시간표는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최대 현안 위기와 대구시장 공백 속에서 지역 정치권에 거는 시민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인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대구 민주당도 지역 현안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민주당 불모지인 대구에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벽치기 유세'와 같은 진정성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때부터 청중 없는 아파트 아래에서 베란다와 벽을 향해 홀로 연설하던 그의 모습을 보고 주민들이 붙여 준 유세 이름이었다. "고작 이 정도 표 주면서 대구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 하느냐"고 원망하기에 앞서 얼마나 진심을 담아 다가섰는지를 묻는 시민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매일신문 인터뷰에서 "가덕도신공항도 지원해 주는데 광주와 대구는 놔두고 있어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대구시에 이어 수원시도 정부에 TF 확대를 공식 건의한다고 한다. 이제 그 형평성의 원칙이 같은 하늘, 같은 염원에 실현돼야 할 때다. 수십 년 고통의 세월이 정치 논리에 휘말려서는 안 될 일이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