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20년 넘게 영국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금발·벽안의 그레엄 넬슨(44) 전 주한 영국대사관 정치참사관은 이름난 친한파다. 한국인 부인과 사이에서 두 아이를 둔 그는 한국어 일간지를 어렵지 않게 읽고, 일상 대화에서도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약 5년 2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다 현재는 영국으로 돌아가 외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멀리 영국에 있으면서도 그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한국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약 2주 동안의 한국 방문을 통해 그는 자선활동 자문 그룹인 '알비온 이스트'를 출범시킨 것도 이를 방증한다.
동아시아에 전문성을 갖춘 자문 그룹 알비온 이스트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개발도상국의 취약계층과 사회문제 해결을 돕는 데 헌신하고자 한다. 지난 31일 여의도 소재 매일신문 서울지사에서 그와 만나 자세한 얘기를 나눴다.
-말라리아 퇴치 운동을 하는 AMF 한국지부 임원으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외교관이 되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로 우간다에 한 달 정도 다녀온 적이 있다. 우간다는 말라리아 발병률이 매우 높은 곳이다. 세계적으로 매분마다 한 아이가 말라리아로 죽고 있는데 한 생명을 보호하는 데 드는 비용은 4천원 정도다. 또 외교관으로서 국제 문제들은 더 안전하고 건강하며 번영하는 세상이 된다면 예방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봤다.
또 외교관으로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세계적인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았다.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기부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20년 전 외교관이 된 것도 세상을 좀 더 공정하게 만들고 취약한 공동체를 돕기 위해서였다. 사회적 약자들이나 개발도상국 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해 왔다. AMF(Against Malaria Foundation)는 전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단체다.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는?
▶특히 아동 백신 접종과 납 중독 완화와 같은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납 중독의 경우 전 세계 어린이 3명 중 1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간과된 '조용한 팬데믹'이나, 저비용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함이 입증되고 있다.
-함께 알비온 이스트를 창립한 헨리 헤거드 전 참사관과 의기투합했다.
▶우리는 20년 넘게 한국을 오가며 깊은 인연을 맺었다. 각자 영국, 미국대사관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일했다. 헨리도 나처럼 한국에 대한 사랑이 커서 함께 협력하고 있다. 한국을 떠난 뒤에도 계속 한국과 연결되고 싶어 했고, 국제 개발 문제에 대해 많이 얘기하다 알비온 이스트를 창립하기에 이르렀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의 친구들에게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조언을 전하고 싶다.
-알비온 이스트의 역할은?
▶세계 어느 나라든 자금 문제로 어려워하고 있기에,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특히 "최대 효과를 내려면 이렇게 하는 게 좋다"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다. 백신, 말라리아, 혹은 더 무시받는 문제들, 일테면 납 중독처럼 중요한 영역들이 있다. HIV 감염에 따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 등에 들어가는 비용과 납 중독 대응에 드는 비용을 비교하면 납 중독 치료가 훨씬 저렴하지만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국이 가진 독특한 경험을 살려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주도할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이제는 해외에 더 많이 베푸는 나라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에 무엇을 하라고 말할 위치는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많고 어느 한 나라가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부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더 많이, 더 효과적으로 기부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점에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당위성이 있지 않나?
▶한국의 고유한 성장 스토리와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기부국으로 완전히 전환한 유일한 나라이기도하다. 한국은 세계적 보건 문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이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신 접종, GAVI(세계 백신 면역 연합), 글로벌 펀드 같은 다자기구가 매우 효과적인 생명 구제 활동을 한다. 한국은 국제백신연구소(IVI) 본부가 서울대학교에 있고, 제약산업과 고도로 교육받은 인력이 많아 이런 국제 백신 사업에 대한 투자가 한국 기업으로도 돌아온다. 세계의 이익이자 한국의 이익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나 상대적으로 국내 기부에 더 열려 있다고 느낀다.
▶최고의 자선단체들은 한국에 지부가 없어 세금 혜택을 받기도 어렵고, 많은 한국인 친구들도 기부에 대해 회의적이기도 했다. 제대로 쓰이지 않을 거라는 의심도 있었다. 다만 만약 길가에서 아이가 물에 빠져 있다면 우리가 비싼 옷을 입었어도 주저하지 않고 구할 거다. 돈을 써서 생명을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직접 아이를 보지 못하니 주저하는 거다. 기부금이 확실히 영향력을 가진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더 많은 사람이 기꺼이 참여할 거라 믿는다.
-한국 기업들의 역할이나 자선활동 참여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 기업들은 현재 주로 국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해외 기부나 국제 지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좀 더 글로벌 관점에서 생각해 보길 권유하고 싶다. 해외 기부는 더 큰 영향력이 있고, 투자 대비 10배, 100배, 심지어 1000배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고 얘기하고 싶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글로벌 리더십을 보이길 기대한다.
-알비온 이스트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나?
▶현재 다섯 명 정도 소규모 팀이고, 같은 미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열려 있다. 나와 헨리 이외 나머지 팀원들은 연구, 커뮤니케이션, 업무 지원, 한국·일본·중국 등 아시아 이해를 돕고 있다. 같은 목표를 가진 분들이 함께하는 걸 환영한다.
-알비온 이스트의 이름은 어디서 온 건가?
▶영국의 옛 명칭인 '알비온'에 동아시아의 '이스트'를 더했다. 제 실제 고향은 영국이지만 마음속 두 번째 고향으로 한국과 동아시아를 생각하며 두 지역 간 가교 역할을 하려는 희망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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