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세독촉 하면 자살소동"⋯'1평 방 40개' 고시원 총무의 하루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대구고립보고서] 대학가 담장 밖에 갇힌 고시원 사람들
고시낭인의 고립…"친구들 결혼하니 못 봐…어쩔 수 없는 벽"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고시원촌 일대 골목 전경.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고시원촌 일대 골목 전경.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방문한 달서구 신당동의 A 고시원은 덜 마른 빨래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입구부터 배달 음식 용기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서면 꽉 차는 좁은 복도를 따라 몇 걸음 더 가면 부엌이 보인다. 대형 밥솥과 가스레인지가 구비돼 있다. 벽엔 '구토 행위 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박지훈(49·가명) 씨는 이 고시원의 총무다. 총무를 맡은 지 3년 정도 됐다. 방세를 걷고, 밥을 짓고, 청소를 한다. 신규 입주자가 있으면 방을 안내하고 규칙을 설명하는 역할도 한다. 대신 월세와 밥값이 면제된다.

"크게 하는 일은 없어요. 사람들 관리하는 게 힘들지, 가끔 월세 안 내고 도망치는 사람도 있는데 답이 없어요"

지훈 씨는 후줄근한 티셔츠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밖에 나가는 날이 씻을 이유도 사라졌다.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한 남성전용 고시원 내부 모습.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난달 4일 대구 달서구 신당동 한 남성전용 고시원 내부 모습.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지훈 씨가 관리하는 고시원은 약 40개의 방이 있고, 이 중 90%는 차 있다. 세간은 소형 냉장고와 서랍장, 책상 그리고 침대가 전부다. 창문이 없어 해가 들지않아 일명 '먹방'으로 불리는 방은 몇만 원 더 싸다.

입주자의 절반은 외국인 노동자다. 나머지 절반은 사업이 망하거나, 이혼한 중장년층 한국인 남성들이다. 간혹 대학생이 입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3개월 안에 방을 뺀다.

고시원 총무를 한다는 건 온갖 궂은 상황과 사건·사고에 엮이는 것이다. 총무로 일하며 환갑도 안 된 남성이 심장마비로 숨진 모습을 봐야 했다. 방값을 독촉했다는 이유로 입주자가 자살 소동을 벌이는 일에 휘말리기도 했다. 지난달에만 경찰이 출동한 날이 족히 열흘은 넘었다.

"경찰이 출동하면 무조건 저한테 연락이 와요. 문을 따줘야 하거든"

지훈 씨는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형사가 한 2명 정도 오면 입주자가 가족들에게 '자살한다'고 전화를 했거나 사소한 시비에 휘말린 사건이에요. 우르르 몰려오잖아요? 십중팔구는 범죄 용의자예요"

지훈 씨는 고시원 입주민들끼리 친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함께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우는 등 행위가 빈번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이잖아요. 친해져서 별일 없으면 상관없는데... 보통은 '별일'이 생기더라고요"

고시원 총무 박지훈 씨의 방. 지훈 씨는 1평 남짓한 방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신중언 기자
고시원 총무 박지훈 씨의 방. 지훈 씨는 1평 남짓한 방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신중언 기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1평 남짓한 방 안에서 혼자 보낸다. 유튜브나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는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그와 멀어졌다.

"친했던 동생들도 이제 40대 중반이에요. 다 결혼하고 자식도 있는데, 이젠 전화하기도 어렵죠. 대화 주제도 다르고, 어쩔 수 없는 벽이 있어요"

그의 고시원 생활은 15년 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작됐다. 팔공산 기슭의 고시원이었다. 딱히 공직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공무원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원래는 독일로 가고 싶었어요. 철학 공부하려고요"

지훈 씨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그는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모아 유학을 가려고 했다. 서른다섯 무렵, 문득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서야 공무원 시험 책을 폈지만 원하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지훈 씨도 끝내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훈 씨는 자신을 '고립사 위험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스스로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혼자 있는 걸 워낙 좋아해서요. 저는 좀 덜한 편이에요. 주변에 보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매일 마주치는 고시원 사람들의 모습은 지훈 씨에게 어떤 위안이 됐다. 꿈이나 미래 같은 거창한 것을 좇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술병이 나뒹구는 좁은 방에서 꾀죄죄한 이불을 덮어쓴 채 스마트폰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고 했다.

"30대에 고시원에 들어와 머리 하얘질 때까지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내 미래도 밝지는 않죠. 답답하죠.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 받고, 그렇다고 다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 나이에도 좀 한심하기는 한데 어쩔 수가 없어요"

그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같은 사람이 알게 모르게 마음의 병이 있을지도 모르죠. 근데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아니라고 믿고 살래요"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민의힘은 9일부터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며, 내란전담재판부 및 사법 관련 법안을 '사법파괴 5대 악법'으...
iM뱅크의 차기 은행장 선임 작업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며, 19일부터 22일 사이에 최종 후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강정훈 경영기획그...
대구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칼로 찌른 20대 남성이 체포되었으며, 피해자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어 대전에서는 30대가 대리운전 기사를 차량...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