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로와 남성로가 교차하는 곳에서부터 약 800m가량 길게 늘어진 골목. 골목 양쪽의 상가는 대부분 약업사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가게 내부에는 뿌리가 보이는 약재와 동물 박제가 가득하다. 가게 상단에 걸린 간판은 세월의 영향으로 빛이 바랬다.
가게를 하나둘 지나치자 코끝에 쓴 향이 스며든다. 동성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냄새는 한층 짙어진다. 골목 곳곳에 쌓아둔 한약재와 가게 안 찜기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뒤섞여,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가장 빛나던 시기
낡은 간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약령시의 역사는 길고도 방대하다. 1658년, 효종 9년 시기 현재의 북성로 인근에 약령시가 개설됐다. 경상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성행해 '객사 시대'라고 부른다. 당시에는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0일~1개월씩 정기적으로 장이 열렸다.
당시 약령시는 세계적인 한약 유통의 거점이었다. 이곳의 한약은 일본과 중국, 만주, 러시아 등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유통량이 상당해, 1년 치 약재를 한 번에 사가는 외지인이나 궁중의 요구도 수용할 정도였다.
대구읍성이 사라진 1908년에는 현 위치로 시장이 옮겨졌다. 약령시에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여관과 식당도 들어서고, 대구시의 인구도 점차 증가하면서 덩치를 불렸다.
약령시의 전성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재밌는 설화가 있다. 전국의 약령시를 모두 돌아보
는 일을 뜻하는 '영 바람 쐰다'는 말이 있었다. 그 중 대구 약령시가 가장 유명하다보니, '대구 영 바람을 쐬지 않으면 약효가 없다'거나 '영남대로는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첨언이 나오기도 했다.
◆ 저항의 상징들이 모이다
사람과 돈이 모이는 중심이다 보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그 흔적은 아직도 약령시 곳곳에 남아있다. 과거 대구제일교회 맞은편에는 대구 구 교남YMCA 회관이 있다. 지금은 박물관인 이곳은 신간회 대구지회가 활동한 장소로, 대구3.1운동의 주역들이 드나들었다.
일제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민족 문화를 말살하고 전통 의학을 폄훼하는 한편, 서양의학을 확산시키려는 정책을 펼쳐 약령시를 괴롭혔다. 결국 1941년, 약령시가 전의를 약화한다는 이유로 장은 완전히 사라졌다. 해방 이후 잠시 명맥을 되찾는 듯했지만, 6.25 전쟁의 여파로 재차 사라졌다. 지금의 약령시는 전쟁 이후 다시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약령시 사람들, 이어온 시간
약령시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쳐준 이들이 있었기에, 약령시는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양익순은 1923년 대구한약업자조합 회장으로서 대구영시진흥동맹회를 창립했다. 약령시 구성원들의 단결을 도모하고, 거래 질서를 확립해 시장 생태를 개선했다. 그의 지도력 덕분에 약령시는 놀라운 매출을 자랑하게 됐다.
김홍조는 일제강점기에 약령시에 정착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건재약방을 대성시켰고, 일본과 대만 등 해외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성장 거점인 약령시가 일제에 의해 위기를 맞자, 김홍조는 강제 폐쇄된 약령시를 복구시키는 준비위원회와 영시진흥위원회 위원장을 도맡았다.
지금의 약령시는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빼곡하게 들어찬 한의원과 약방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섰다. 한약 냄새는 점차 옅어지고, 약재를 찾는 이들도 줄고 있다.
그럼에도 약령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여전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약령길 네거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정순(82·가명)씨가 그중 하나다. 한의원을 하는 남편에게 시집온 뒤 줄곧 한약방을 도맡아왔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약재를 꼼꼼히 받아 정리하고, 되팔다보니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한약재와 항상 함께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장성한 딸과 아들은 모두 한방 의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장사가 잘되지 않는 지금도 약방 운영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자녀들이다. 김씨는 "매출이 줄어 소일거리 수준에 그치지만,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약령시의 역사를 알고 다시 이 골목을 걸으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 300년 전에는 어떤 약방이 있었을지,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상점이 들어섰다 사라졌을지를 짐작하며 골목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든 자리라는 점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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