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기획, 제작한 책 <지상대구>를 통해 옛 지도와 주요 시설 도면 자료를 통해 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추적한다. ▷교통과 인프라 ▷경제와 산업 현장 ▷문화와 휴식 공간의 조성 등 대구 발전의 궤적을 총 4부로 소개한다. 연재를 여는 1부에서는 도시의 뼈대에 해당하는 행정시설의 변천사와 함께, 확장되는 도시 구역을 다룬다.〈편집자 주〉
1922년. 대구부(현 대구)는 서문시장 이전 계획을 성공시켰다. 25년 뒤, 인구 15만 대도시로 성장할 대구(Great Daegu)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릴 준비를 마쳤다고 봤다. 대구부청의 최고 책임자였던 일본인 마츠이 신스케는 그 해 대구도시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한다.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100년 전 계획임에도, 촘촘했다. 지역을 ▷주거 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혼합지역 ▷예비지역 5종으로 나눴다. 철도와 도로의 위치, 위생과 보안 시설, 공공과 사회적 시설, 경제, 재원 상황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대구의 심장부였던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25분 내외'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도시의 경계로 설정됐다. 계획이 발표됐던 당시보다 2배 넓은 면적이었다. 동쪽은 신천, 북쪽은 금호강을 접했다. 서쪽 경계는 달성공원, 남쪽 경계는 수도배수지 인근에 그려졌다.
대구역과 경상감영 등 주요 장소를 오갈 수 있는 전차의 선로는 12.8㎞였다. 선로 위에는 왕복 전차 24개 5분 단위로 운영하고, 운행을 쉬는 전차는 원대동에 두려 했다. 도심과 동촌유원지를 잇는 교외 전차도 계획했다. 단 14분 만에 두 지역을 오갈 수 있도록 하는 구상이었다.
1922년 발표된 계획안은 수많은 반대에 부딪혀 실행되지 못했지만, 이후 제정된 도시 계획의 토대가 됐다.
시간이 흐른 뒤, 도로 계획은 1937년에 이르러 구체화된다. 도로는 폭이 24m인 대로의 배치를 중심으로 짜였다. 경부철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쪼개진 도시를 연결하는 점을 잊지 않았다. 또 대구 중심부를 둘러싸는 넓은 도로를 구획하고, 기존 도로를 연결해 '블록' 형태가 반복되도록 했다.
이때 만들어진 도시의 틀은 1960년대까지 유효했지만, 인구 성장과 도시화로 급격히 성장하게 되면서 새 국면을 맞게 된다. 토지구획정리사업법, 도시공원법 등 도시를 다루는 각종 법안이 나온 것도 영향을 끼쳤다. 1965년 도시계획재정비를 거치면서, 바야흐로 '현대 도시'로의 도약이 시작된다. (5회에 계속)































댓글 많은 뉴스
유승민 "경기도지사 생각 전혀 없다…보수 유튜버, 당 간섭 말라"
조국 "李대통령 부동산 개혁, 내 토지공개념과 일치"
"모든 게 예상보다 빠르게 제자리 찾아"…李대통령 설 인사
[인터뷰] 장동혁에게 "이게 지금 숙청인가?" 물었더니
李대통령 "'다주택 팔라' 날세운적 없어…투기 부추기는 세력 책임져야"